조선시대 냉장고- 창녕 석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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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냉장고- 창녕 석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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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녕 석빙고
ⓒ 이종찬^^^
 
 

하늘이 반쯤 흐리다. 누군가 밤을 새워 하늘을 향해 불어댄 입김이 성애로 얼어붙은 탓일까. 아니면 사랑하는 그 누군가를 밤새도록 기다리던 어떤 여인의 애타는 그리움이 빈 하늘을 밤새 떠돌다가 그대로 구름이 되어버린 것일까.

내 마음도 반쯤 흐리다. 내 마음에도 내가 모르는 그 누군가 밤을 새워 불어댄 입김이 성애로 얼어붙었는가. 그래. 그래서 바람도 밤새 성애로 얼어붙어 버렸는지 오늘 아침에는 그지없이 잠잠하기만 하다.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창녕행 버스를 탄다. 오늘은 혼자다. 혼자 떠나는 여행. 그래. 이 얼마 만이었던가. 그동안 나는 주로 고적지를 답사할 때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잘 알고 있는 분과 함께 다녔다.

그러나 오늘은 어쩌다 보니 혼자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상세한 자료를 챙기고 나섰다. 오늘은 궁금한 게 있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니, 어쩌면 그게 나의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내 어머니의 고향이자 양파의 고장 창녕. 언제 보아도 늘 편안해 보이는, 마치 어머니의 품속 같은 창녕. 이곳을 다녀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입을 모아 '작은 경주'라고 부를 정도로 역사유적과 문화유산이 가득한 창녕.

창녕은 진산 화왕산을 품에 안고 자연생태공원인 우포늪과 진흥왕 순수비, 교동고분, 관룡사, 부곡온천, 석빙고를 비롯한 수많은 볼거리가 널려 있는 곳이다. 그러나 차창 밖으로 언뜻 바라보기에는 여느 시골의 풍경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다만 다를 게 있다면 들판 곳곳이 금방이라도 모를 낸 논처럼 푸릇푸릇하다는 것이다.

"저게 양파 아닌가요?"
"그라모 그기 뭐로 보이능교? 보리밭으로 보이능교?"
"???"

 

 
   
  ^^^▲ 소나무 한 그루가 석빙고를 지키고 있다
ⓒ 이종찬^^^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송현동 288번지. 보물 제310호로 지정된 창녕 석빙고는 창녕교육청 바로 앞 개울 건너 편에 마치 왕릉처럼 볼록 솟아나 있다. 그러나 그냥 그렇게 제멋대로 솟아나 있는 것은 아니다. 창녕 석빙고는 서쪽으로 흘러내리는 이 개울과 직각이 되게 남북으로 길게 만들어져 있다.

이 석빙고를 만든 시기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다. 아직까지도 믿을만한 문헌이나 또렷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석빙고 앞에 서 있는 비석에 '조선 영조 18년 (1742) 당시의 현감 신서(申曙)가 건조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곧이 곧대로 믿으라는 그런 뜻일까.

빙실의 입구는 남쪽으로 나 있다. 하지만 들어갈 수가 없다. 까만 철제로 둘러쳐진 석빙고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입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료에 의하면 이 빙고는 좌우에 장방형의 돌을 3단식으로 쌓아 벽을 축조하고 그 위에 커다란 장대석을 올려 천정을 구성했다고 한다.

또한 경주 반월성 안에 있는 석빙고처럼 빙고의 천정에 외부로 통하는 환기공이 몇 개 뚫려 있다. 이 석빙고는 가까운 영산이나 경주, 안동, 청도의 석빙고와 내외 각부 구조가 같으나 다만 그 규모가 약간 작을 뿐이라고 한다. 길이는 11m이며, 폭은 3.6m, 높이는 3.7m.

마치 고분처럼 보이는 창녕 석빙고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6개의 석빙고 중 하나다. 또한 이 석빙고들은 모두 18세기에 제작됐으며, 대부분 경상도 지역에 몰려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에도 동빙고 서빙고가 있었으나, 돌로 만든 것이 아니라 모두 목빙고(木氷庫)였던 탓에 사라지고 말았단다.

지금의 냉장고 역할을 했던 석빙고. 그런데 대체 석빙고는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었기에 그 뜨거운 여름에도 얼음이 녹지 않고 있었을까. 석빙고의 얼음 저장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우선 석빙고에 얼음을 저장하기 전 내부를 냉각시키는 것이 1단계이고, 2단계는 얼음을 넣은 뒤 7~8개월 동안 차갑게 유지시키는 것이란다.

1단계로 석빙고를 냉각시키는 열쇠는 출입문 옆에 붙어 있는 날개 벽이라고 한다. 특히 땡겨울에 부는 찬바람은 이 날개 벽에 부딪쳐 소용돌이로 변해 석빙고 내부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게 된단다. 이는 실제 조사한 결과에서도 겨울철 지하실 온도가 평균 15℃ 인데 비해 석빙고 내부는 평균 영하 0.5~영상2도였다고 한다.

2단계는 빙고에 넣은 얼음을 어떻게 보존하는가이다. 그러나 빙고 안의 얼음이 전혀 녹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거의 미미할 정도로 녹았는데, 이는 빙고 안의 절묘한 천정구조와 천정에 설치된 환기구, 습기를 빠르게 밖으로 빼내는 배수로 때문이란다.

 

 
   
  ^^^▲ 석빙고 내부
ⓒ 창녕군^^^
 
 

특히 화강암의 천정은 1~2 미터의 간격을 두고 4~5개의 아치형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그 아치형 틈새에 움푹 들어간 빈 공간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이곳이 내부의 더운 공기를 빼내는 일종의 공기주머니 역할을 한다는 것. 또한 천정에 뚫린 환기구는 공기주머니에 갇힌 더운 공기를 밖으로 빼내는 역할을 한단다.

이는 더운 공기가 위로 뜬다는 사실을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얼음에 치명적인 물과 습기를 빠르게 밖으로 빼내는 배수로가 있다. 게다가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빗물을 막기 위해 석빙고 외부에 석회와 진흙으로 방수층까지 만들었단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얼음과 벽 및 천정 틈새에는 밀집, 왕겨, 톱밥 등을 단열재로 채워 넣어 외부열기까지 차단했고, 외부에 잔디를 심어 햇빛을 흐트러뜨려 열 전달을 방해하게 했다. 이 때문에 빙고의 온도가 한여름에도 거의 0도 안팎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저 속에 얼음을 넣어 보관하면 여름에 먹을 수 있나요?"
"그걸 내가 우째 알겠능교."

하긴 석빙고 근처에 얼쩡대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노인에게 물은 내가 잘못이다. 그랬다. 석빙고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그 노인은 '그러는 당신이나 올겨울에 저 곳에 얼음을 넣어가꼬 실험을 한번 해 보시지예'라며 비아냥거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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