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제의 "물 좀 주소"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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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제의 "물 좀 주소"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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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게 공감하며 사는 거다

과묵한 나는 동생과 놀 때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대학을 다녔어도 집에서는 물론 학교에서도 마주치는 일도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잦지가 않았다. 밥을 먹을 때 그저 일상적인 대화 몇 마디를 나누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린 둘 다 무뚝뚝했고 지나치게 서로를 닮았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평소 서로 간에 거의 대화가 없이 살아가다가도 어쩌다 한번 말이 터지면 우리는 참 대화가 잘 통하는 형제였었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둘 다 가수 한대수를 참 좋아했었다. 그의 노래를 좋아한 사람들이 우리 형제뿐이었겠는가. 하지만 가끔씩 집에서 둘이서 노래라도 부르게 되면 꼭 그의 노래를 빠뜨리지 않았다.

잘 알려진 노래에서부터 시작해서 어지간히 그를 좋아하지 않으면 잘 알지 못하는 노래까지 우리 형제들은 눈을 지그시 감고 그의 노래를 줄줄 외우다시피 부르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그의 유명한 노래 ‘물 좀 주소’를 부르게 되었다. 동생은 흥이 나서 싸리 빗자루를 마치 기타처럼 잡고 손으로 빗자루를 쓰다듬으며 노래에 도취되어 그 노래를 불렀었다.

그 노래의 특징은 다들 알듯이 도입부에 나오는 “물 좀- 주소~~”를 비틀린 목소리의 고음으로 괴성을 내는 것이었다. 우리는 잘 나오지 않는 고음을 목에 있는 대로 힘을 주고, 얼굴을 기괴하게 찡그리며 정말 괴성을 질러대며 불렀었다. 그 괴성이 얼마나 엄청났는지 방안에서 문을 닫고 부르는 노래가 부엌에 계시던 어머니의 귀에도 들렸는가 보았다.

그 힘든 노래를 익숙하게 부르려고 몇 번씩 되풀이 연습을 해가며 그 “물 좀- 주소~~”를 연발하고 있는데 갑자가 방문이 열리는 것이었다. 놀란 우리의 눈앞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어머니의 얼굴이 나타났다. 우리는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어머니가 왜 갑자기 화가 났는지 잘 알 수가 없어서 서로를 쳐다보며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때 한동안 화가 나서 붉어진 얼굴로 우리를 노려보고 계시던 어머님의 입에서 우리들의 의문에 대한 정답이 튀어 나왔다. “내가 지금 김장하고 있는 거 안 보이나. 물 같은 거는 느거가(너희들이) 좀 떠먹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시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배를 잡고 한참동안을 웃어댔다. 어머니는 야단을 치는데 웃는 아이들을 보고 어리둥절해 하셨다. 우리는 그게 더 우스워서 또 한참을 웃어야만 했었다.

요즘 아이들이 뭐라고 한다. “그게 뭐라고?” 하고 물으면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막 웃는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웃고 나서 우리에게 그 뜻을 설명을 한다. 저희들이 사용하는 말로 무어라고 한 것인데 부모들이 알아듣지 못하니까 웃긴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를 당할 때마다 우리 부부는 우리 집안의 유명한 일화가 된 ‘물 좀 주소’를 생각하며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더욱 분한 것은 아이들에게서 그런 무시 아닌 무시를 당할 때에는 꼭 써놓아야 되겠다고 머릿속에 분명히 새겨 놓곤 하는데, 지금 이렇게 글을 쓸려고 않아 있으면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젠 나도 한물이 간 것이다. 세태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나, 그렇게 망신을 당한 것을 기억을 못하는 것이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또 다른 세대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고, 우리들의 후손은 우리가 부른 노래와는 다른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다. 나와 동생이 서로 간에 대화가 없었어도 어쩌다 의기가 투합 되면 거의 같은 생각과 행동에서 일치를 보이듯이, 나의 아이들도 그러할 것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평소엔 우리와 대화도 잘 통하지 않는 전혀 다른 아이들 같이 보이지만,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바로 그 순간이 닥쳐오면 나의 아버지가 걸었던 길. 그리고 나와 내 형제들이 걸었던 그 길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아이들 보다 한층 약해보이는 그들의 몸매에서도, 약은 친구들에게 속아서 속상해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또 우리가 그들에게 가르치는 기본교육에서도 느낄 수 있다.

최소한 우리의 아이들은 남들이 다 찬성을 하는 일이라도 불의 앞에서는 최소한 찬성은 하지 않을 것이고, 때로 커다란 불의를 만나는 경우에는 나약한 아빠처럼 두려움에 떨면서도 조그만 목소리로 ‘아니다.’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이면 되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지혜도 용기도 건강도 그 모든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을 추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다.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조금이라도 참여할 수 있는 삶.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조그만 힘이라도 보탤 수 있는 삶. 그리고 최소한 불의에는 동참하지 않을 수 있는 삶. 내가 나의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목마른 이에게 물을 떠다줄 수 있는 삶까지는 아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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