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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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겨울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봄이 올 것이다. 나는 안다.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다. 겨울이 물러간 거리에 백마에 우뚝 선 개선장군처럼 따뜻한 바람을 머금고 사방에 꽃을 흩뿌린 채 봄은 그 화려한 모습을 드러내고야 말 것이다. 봄이 점령한 그 화사한 거리를 옷자락 가득히 따사로운 봄 햇살을 받으면서 걷고 싶다. 그때가 오면 나는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그때 봄 거리를 걷는 내 가슴엔 무엇이 들어있을까. 다시 세상이 밝음으로 다시 빛날 때 나도 밝음에 속할 수 있을까.

바람이 분다. 나는 귀를 열어 바람이 지나는 소리를 듣는다. 밤을 새워 우짖으며 마치 굶주린 들개처럼 울어대는 저 송곳같이 외로운 바람의 기억은 얼마나 오랫동안 남겨져 있을 것인가. 봄이 오면. 잔인할 만큼 아름다운 봄이 오면, 이렇게 사무치는 추위의 기억은 얼마나 남아져 있을 것인가. 가을에 흩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느끼던 그 알지 못하던 비해와 슬픔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해마다 찾아와 내 가슴을 긁어대던 그 고통들은 어디로 증발해 버리는 것일까.

나는 미소를 짓는다. 세상이란 곳에 나와서 난 몇 가지의 고통을 겪어 보았다. 세상의 수많은 고통 중에 쉬운 것이 어디 있으랴. 얼마 되지 않는 세월들을 지나오며 나름대로 얼마간의 기쁨과 슬픔을 겪어보았다. 무엇이 가장 가슴을 저미는 것이었을까. 가장 괴로운 것은 바로 내 삶의 일부분을 하나씩 저며 내는 것이었었다. 아름다움과 슬픔. 고통과 기쁨. 한때는 내 심장과 폐포와 영혼을 가득히 채웠던 것들이 어느새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것이었다.

영원히 잊고 싶지 않았던 추억과, 언제까지나 놓아버리고 싶지 않았던 고통의 기억들이 하나하나씩 줄을 서서 멀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먼 여행을 떠나는 열차에 차례로 올라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어릴 적. 나는 떠나가는 모든 것들이 부러웠었다. 나는 이곳에 머물러 있는데 모든 것들은 사라져가고 멀어져 갔었다. 나도 떠나가고 싶었었다. 자유로이. 이제 나는 거리에 있고 내가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것들은 차례로 사라져 가고 있다.

잠간의 인연을 맺고 사라져버리는 삶. 그런 것이라면 사귀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입을 막고, 귀를 막고, 인생이란 것과 높은 담을 쌓고, 그저 그냥 밥 먹고 잠만 자려고 하였었다. 깊은 침묵과 고독 속으로 오랫동안 빠져 들어가고 싶었었다. 그래서 평화와 안식을 누리고 싶었다. 그러나 삶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끝없는 유혹으로 삶은 나를 자신의 세계로 끌어내고야 말았다. 할 수없이 나는 다시 우직하게 하루분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면 또 고통이 남는다. 바람은 밤을 새워 우짖는 바람소리가 마음에 그치질 않는다. 나는 그 슬픔의 통곡을 나는 안다. 그것이 얼마나 깊은 것이고 얼마나 사무친 것이고 얼마나 뼈저린 것이란 것을. 새벽이 오면 물러 날 수밖에 없는 바람의 원한에 사무친 울음의 깊이를 안다. 그 소리를 오랫동안 듣고 있으면 내 가슴에도 구멍이 뚫린 것처럼 시린 바람이 새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대도 나는 지조 없는 창기처럼 다시 봄을 받아들인다.

가슴을 연다. 바람을 가득히 앉았던 내 멍든 가슴에 나는 또 다시 봄바람을 앉는다. 이유 없이 슬픔으로 가득했던 내 아픈 가슴에 따뜻함을, 포근함을 받아들인다. 눈물로 가득했던 가슴속에 환한 웃음을 덮어씌운다. 나는 모른다. 이게 단지 분장을 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정말로 웃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거두어들인다. 배신자. 그래 나는 그런 사람이다. 태생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피가 나를 움직이는 대로, 운명이 나를 이끄는 대로 그렇게 살아가는 수밖에...

봄이 올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사라져갈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거리는 다시 밝음으로 빛나고 꽃은 붉게 타오르는 태양아래 찬란하게 피어오를 것이다. 바람조차도 마치 울어본 일이 없다는 듯이 조용히 거리를 어루만지며 따뜻함에 넘쳐흐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거리에 서서 슬픔이 물러간 빈 거리를 걸으며 아픔의 추억을 반추할 것이다. 부드러운 바람에서 아픈 상처의 흔적을 어루만질 것이다.

그리고 이윽고 나는 고개를 쳐들어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 그동안 바뀌어버린 모습을. 그동안 한결 달라진 세상의 또 다른 표정을 바라볼 것이다. 그늘에서 몸을 숨기고 조용히 엎드려 있던 변온동물처럼, 따뜻한 햇살로 다시 힘을 충전할 것이다. 그리고 내 걸음은 점점 더 힘을 얻고, 점점 더 빨라질 것이다. 내 가벼운 옷자락에 가득히 햇살을 받으며 꽃이 만발하고 태양이 가득한 거리를 다시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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