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그러냐고 물으니 목욕탕에서 기분이 상했다며 자초지종을 털어놓습니다. 사연인 즉, 오후 6시가 넘어 목욕탕에 간 아내는 딸아이까지 씻기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수부실에 언제 문 닫느냐고 확인을 했답니다. 주인 아줌마는 시간은 충분하니까 걱정말고 들어가라며 돈을 넙쭉 받았답니다.
7시 반쯤 되어 여탕 직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갑자기 청소를 시작하더랍니다. 세재를 푼 물을 아내에게 보란 듯이 뿌려대며 그것도 모자라 아내의 굼뜬 행동을 탓하더랍니다.
딸아이는 다 씻겼지만 아직 자신의 몸은 덜 씻은 상태라 시간이 더 필요한데 직원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청소에 아내가 방해된다며 빨리 나가달라는 말까지 했답니다.
평소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또 욕먹을 짓 하지 않고 살던 아내의 가장 큰 무기는 바른 말 하기입니다. 돈없고 빽없지만 꿀릴 것이 없기에 바른 말 잘하는 아내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얼른 몸을 헹구고 그냥 나왔답니다.
그말을 듣는 순간 제 얼굴이 확 달아올랐습니다. 괜히 성질이 나는 것이 왜 그냥 나왔냐고 오히려 아내를 나무랐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공부방을 운영하기에 안좋은 소문 날까봐 그랬다며 혼자 분을 삭히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손님한테 그럴 수가 있냐며 제가 더 흥분하자 아내는 다음부턴 다른 목욕탕을 이용하겠다며 벌써 평정을 되찾았습니다.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재작년에 목욕탕 청소하던 일이 생각나서입니다.
복학해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밤에는 목욕탕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 열달 가량을 일했으니 아르바이트로는 꽤 오래 일한 셈이지요. 저녁 7시 반에 출근해서 남탕, 여탕을 청소하고 나면 10시 반쯤 됩니다. 물론 청소가 빨리 끝나면 퇴근시간도 당겨지겠죠.
제가 일하던 목욕탕의 지배구조(?)는 주인아저씨가 현관 카운터를 맡고 남탕, 여탕에 직원 1명씩, 그리고 저와 같이 청소하는 사람이 두명, 청소를 관리, 감독하는 주인집 아들이 있습니다.
청소를 하는 사람과 입구에서 손님을 받는 사람이 다르다보니 아내가 당했던 것과 같은 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주인되는 사람이야 손님을 더 받을수록 좋은 것이고 청소하는 사람은 빨리 청소가 끝날수록 득이 되기에 마감시간 전에 일찌감치 서두르는 것이지요.
제가 일하던 당시에도 손님이 뜸하다 싶으면 7시 조금 넘어서도 청소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냐하면 조금 일찍 시작할수록 가속이 붙어 더 일찍 일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딴에는 남은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조심 한다고 했는데 지금와 생각해보니 아내가 당했던 물리적 압박과는 다르지만 심리적인 압박을 주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볼 일입니다. 손님된 입장에서는 돈내고 들어간 목욕탕이다보니 '절수'에 대한 개념도 없어지고 수건 담는 통이 옆에 버젓이 있는데도 나몰라라하고 내팽개치고 가는 이가 많습니다. 의자며 비누, 각종 쓰레기까지 모두 제자리가 있는데 원래 손님은 그냥 쓰고 나가는 사람으로 생각하나 봅니다.
또한 직원된 입장에서도 빨리 일을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 이해는 되지만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목욕을 즐기는 손님에게 물리적, 심리적 압박은 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학연, 혈연, 지연이 아니고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온라인에서 익명성을 이용한 타인에게 피해주기도 문제지만 오프라인에서도 나를 모르고, 내가 모르는 사람앞에서 막 행동하지는 않는지 반성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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