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배달부의 새벽일기> 눈 온 날의 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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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배달부의 새벽일기> 눈 온 날의 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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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고향기위해 생사를 걸고 배달했습니다.

남들은 올겨울 '눈'이 전에처럼 내리지 않아 '계절의 운치'가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저희 배달원들에게는 올겨울은 마치 '하늘의 축복' 같았습니다.

지난 여름, 무수히도 많은 비를 맞으면서 갖은 고생을 다한지라 올 겨울만큼은 제발 눈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들어지는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1년에 딱 2번있는 연휴 3일(신문은 보통 공휴일은 관계없이 일요일만 휴무이며, 추석과 설날에만 3일연휴를 가집니다) 바로 앞에 가장 강력한 '계절의 적'이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어제 저녁부터 내린 눈과(게다가 그만저 아예 많은 양때문에 2-3일은 눈때문에 차마 미끄럽지는 않은 그런 상황이 아닌) 갑자기 하강한 온도때문에 눈이 얼기전에 얼른 배달하는 그러한 술수도 통하지 않는(보통 그날의 최저기온은 새벽 5시-6시사이입니다. 오히려 3-5시에는 조금 덜 추운편인죠) 완벽한 조건(?)이 힙겹게 살아가는 배달의 기수들에게 시작 전부터 주눅이 들게 합니다.

저희 지국에는 작업공간에 화이트보드를 하나 배치시켜놓고 그날그날의 주의사항이 전달됩니다. 구역별로 신규독자와 거절독자가 전달되기도 하고 애매한 날씨때에는 지국장의 경험적 판단하에 비닐포장을 해 갈것인가(보통 오전 강우예상확률이 30%이상일때는 어지간해서는 비가 옵니다)를 공지하는 그런 게시판이죠.

그런데 오늘은 'Good Luck!'이라는 글귀만이 우리를 반기고 있습니다.

제각기 오토바이를 한번 제정비 합니다.
그리고 최대한 신문을 견고하게 오토바이 짐바리에 쌓아 올립니다.
보통보다 시간이 더 걸릴것을 대비해 아예 기름도 채워 놓습니다.

그러나 시동부터가 난적입니다.
오늘 최저기온이 영하 11도이니 오토바이 엔진이 잘 돌아갈리 만무합니다.

'부릉부릉'
다들 출발하기전부터 무슨 폭주족이나 된 것처럼 표정이 다부집니다.
하지만 오늘만 끝나면 고항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때문인지 상기된 얼굴 또한 감추지 못합니다.

다들 하늘의 운에 맡기고 오늘의 승부수를 띄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게시판에 걸어가서 뭐라고 적습니다.
'Good Luck'이라는 글자 밑에 '살아서 고향가자!' 라는 의미심장한 글귀입니다.

"누가 제일 먼저 살아 오는지 내기 할까? 지는 사람 라면 끓이기!"
배달원 최고참이 살짝 미소를 띄운채 먼저 출발합니다.

그러나 지국의 난간을 내려가자 마저 오토바이는 보기좋게 미끄러집니다.최고참 때문에 적어도 절대로 가서는 안될 길 하나는 발견하였습니다.

"내가 너희들 살릴라고 미리 알아본거 아이가"
떨어진 신문을 모으면서 최고참은 계속 우리를 위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다들 그렇게 출발했습니다.
저도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기도를 하느님께 바치고 힘껏, 그러나 너무나 천천히 오토바이를 몰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빙판길의 특성을 파악해야 합니다.
빙판길에서는 무엇보다고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균형만 잡힌다면 평소와 거의 같은 속도로 운전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커브를 틀거나 후진을 하거나 세울곳을 찾거나, 아니면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타거나 할때 그 미묘한 균형의 차이가 오토바이를 가차없이 땅에 박아버립니다.

그래서 이럴때는 아예 두 다리를 거의 땅에 붙인채로 균형감각을 유지할려고 합니다. 운동화는 빙판눈에 마찰을 일으키며 그나마 균형을 잡아줍니다.

하지만 내리막길에서는 한쪽발이 브레이크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해집니다. 출발할때 직원들은 아예 위험하면 내리막길을 걸어서 돌리고 시간이 걸려도 최대한 돌아서 오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다가는 하루종일 배달할 판입니다.

모든것은 '배달의 신'에게 의지한 채 위태위태 내리막길을 내려갑니다. 너무 손과 발에 힘을 주어서 근육이 땡기기 시작합니다.

앞바퀴와 뒷바퀴는 내가 원하는 길로 가기를 거부합니다.

방향이 한번 틀어지면 그때는 제대로 목표지점에 가는것을 빨리 포기해야 합니다. 우선 넘어지지 않는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그재그 쇼를 하다가 오토바이는 전봇대 지주사이에서 일단 넘어지지는 않고 불시정차를 합니다.

이러쿵, 저러쿵 넘어지지 않고 목표지점까지 가면 이제 계단올라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선 신발이 문제입니다. 눈으로 수북하게 쌓여있는 신발은 아예 얼음밑에서 계단 올라가는 수준입니다. 게다가 건물 안에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흘린 눈들이 녹아 어설픈 물이 되어있기 때문에 또 다른 미끄럼틀입니다.

발 앞쪽에 온갖 힘들 다하고 손은 난간을 잡은채 추운날씨에 대비해 여러겹 입은 옷들 때문에 둔해버린 몸의 감각을 최대한 이용하여 3층, 4층 올라갑니다.

독자의 기쁨(사실 이 독자가 어제 저녁에 고향갔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러면 오늘의 고생을 누가 알아주는것도 아니고 돌아와서 신문이 쌓여서 범죄의 대상이 되었다면서 오히려 질타하시는 분도 계십니다)을 생각하며 창문밖으로 세상을 봅니다.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눈덩이들이지만 높은곳에서 보니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하얀색'이라는 색깔로 온 세상을 통일시키니 그렇게 아름다울수가 없습니다. 지극히도 규격화되지 못한 한국의 건물미학위에 눈이라는 공통의 색깔을 입히니 참으로 볼만합니다.

저 밑에서는 어떤 연인들이 그 시간에 '음주눈싸움'이 한창입니다. 위생상 '러브스토리'같이 눈 위에서 뒹굴면서 서로 먹여주지는 못할지라도 '설날 특별 눈싸움'한판이 참으로 정답게 보여집니다.

마음을 비우고 사람걷는 속도보다 조금 빠르게 운전을 하며 세상의 운치를 느껴 봅니다.

조금씩 새벽이 되자 고향길을 떠날려는 가족들을 봅니다. 선물을 차에 싣고 아이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머나먼 여정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타이어를 점검하고 어머니는 트렁크 정리를 다시한번 하십니다.

어제 출발한 차들이 아직도 고속도로에서 낑낑대고 있는것을 생각해보면 이들의 이번 설날 새벽침투 계획은 아무래도 빗나간것 같지만 그래도 민족의 명절이 이들의 걱정을 들어주는것 같습니다.

1,2차 통들어 평소에 3시간 10분걸리는 시간이 오늘은 5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국에 돌아오니 먼저 들어온 배달원들이 오늘의 활약상을 애기하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스키장에 비유하는 사람, 눈썰매에 비유하는 사람 등 그래도 다들 재미있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도 다치지 않고 '살아서 고향갈수 있음에' 서로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라면은 제가 끓였습니다.
최고참은 어디서 소주한병을 구해옵니다.
그리고 한마디 합니다.

"배달의 신께서 수고했다면서 주시더군.우리들은 결코 죽지 않는데"

그렇습니다.
열심히 사는것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생사를 넘어선 오늘의 경험이
고향가는길을 편하게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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