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뿐만 아니라 이제는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빚. 사실 주위도 아니다. 자신부터도 빚을 가지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그중 특히 카드 빚. 이 것에 얽힌 각종 이야기들을 심심치 않게 듣고 경헙한다. 게다가 그러한 이야기 중에 마음 따뜻해지는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요즘 일만이 아니었다. 필자가 그러한 시절을 살아 보지 않아서 새로워 보일 수도 있지만 불과 몇십년전 만해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단다.
장리(長利).
요즘 세대들은 이 단어에 대해서 매우 낯설게 느껴 질 것이다.
농사가 주업일 당시 있었던 개념이다. 뜻은 빌린 돈이나 곡식의 50%를 덧붙여 갚는 것을 말한다. 봄에 씨 뿌릴 때 빌려 가을에 나락 거둘 때 갚는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이자가 50%란 소리다. '완전 도둑놈'이란 소릴 듣기 딱 좋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었던 시절이 있었단다.
먹을게 적었던 시절, 뿌릴 씨앗이 없어 부자 집에서 한 종지정도 빌리면 가을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곡식을 갚아야 했다. 대부분의 농사꾼들은 모자라는 곡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장리를 썼고 속은 쓰리지만 갚아야 했다. 그러니 가난한 자는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씨앗을 빌려주는 부자들은 더욱더 부자가 됐다.
몇십년전의 일이지만 지금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도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부익부 빈익빈'
어떤 이는 이것을 자본주의의 일반적인 풍경이라 한다.
이런 상황 속에는 지구 건너편에서부터 '공산주의'라는 게 혁명처럼 일어나 한반도에까지 들어왔다. 그래서 '다 똑같이 나누자', '가난한 자의 피를 말리는 자본가를 때려잡자'라는 구호가 대중들에게 먹혀들어 간 것이다.
하지만 한 세기에 걸쳐 실험된 이 혁명은 실패로 결판났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게 있다. 그 당시에 이 것은 기존 체제를 무너트리는 혁명이었다는 것. 결국 '빈익빈 부익부'의 극단은 체제 붕괴를 가져왔다는 교훈을 남기는 문제이다.
여기에서 생각해 본다.
지금과 같이 빚에 쪄 들어 사는 서민의 모습,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불만. 몇십년간 계속되고 반복되었던 세월이 앞으로 얼마나 계속될지 의문스럽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 악화된다면 고통을 수반한 변화가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비극의 역사가 없길 바란다. 별 고통 없이 현실문제들이 해결됐으면 한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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