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카드 한 장이 날아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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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카드 한 장이 날아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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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은 뿌연 안개속 유년의 추억을 더듬고 있었다

^^^▲ ▲ 친구에게서 받은 소중한 카드
ⓒ 이화자^^^
보랏빛 카드가 날아온 날, 난 하루종일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픈지를 몰랐다.

이미 내 나이 오십하고도 몇 년을 훌쩍 넘었다. 그동안 생활 때문에 그리고 잡다한 일상에 쫒겨 크리스마스나 새해에 카드다운 카드 한 장 받아본 적도 보내본 적도 언제였는지 그 까마득한 기억만 가물거리는데 오늘 예쁜 보랏빛 카드와 그리고 친구가 보내준 옷.

그저 아무 생각없이 몇시간을 그냥 서성이며 아 ! 나도 세상을 살만한 인간이로구나 하는 생각과 가슴 뿌듯이 밀려오는 작은 감동.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정말 많은 이유로 살고 있고 많은 이유로 살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만 오늘같은 날 카드 한 장에 담겨진 짙은 사랑과 우정을 그냥 말없이 언제까지라도 보고만 있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주마등처럼 그 아련한 유년기의 토막 토막으로 동강난 기억을 꿰맞추면서 너무도 순수했던 그 시절의 일들과 악동처럼 개구쟁이처럼 딩굴었던 그 고향길 초입으로 내기억을 더듬고 있다.

이 친구집에는 빨간 줄장미 넝쿨이 있었고 그리고 바깥채와 안채가 분리되어 있고 마당이 넓어서 대문에서 불러낼려면 고래 고래 고함을 질러야 겨우 듣고 나오는 그런 집이었다. 할아버지께서 기성회 회장을 하시다 돌아가시자 친구 바로 위 언니는 중학생이었고 우린 초등 학생이었다. 그때 중학교에서 예술제가 막 열리는 때에 안타깝게도 할아버님께서 운명하셨던 것이다.

이 친구 언니는 노래를 참 잘 불렀다(그래서인지 후에 성악과를 졸업했다). 그때도 예술제에 나가야 했으나 할아버지 상을 당했고 게다가 봉화는 양반 고을인 터라 당연히 나오지 못 할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 친구 아버지께서 공적인 약속이 사적인 약속보다 우선이라면서 예술제에 나갈 것을 권유하여 상중이었지만 예술제에 나왔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내게 그 일은 아주 대단하고 큰 사람들만 해낼 수 있는 용기있는 일이라고 늘 혼자서 가슴에 품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사십여년 전의 일로서 그야말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도 나는 집에가면 늘 혼자였다. 아무도 같이 놀아주지 않고 대화 상대가 되어주지 않았다. 무어라 투정 부리면 그저 막내니까 먹는 것 하나 더 챙겨주고 한번 더 안아주는 걸로 어른들의 역할을 다 한 듯이 보였다. 어른들께 나는 그렇게 어린애에 불과했으나 그때쯤 벌써 내마음은 한치씩 한치씩 커가도 있었다. 혼자만의 공상속으로 곧잘 빠져들곤 했는데, 이 일은 그야말로 내 공상속에 단골로 자리를 잡았다.

그후로 친구집에 가서 보고 듣고 하는 것은 나에게 대단한 교육이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스폰지가 물을 빨아 들이듯이 친구집 가풍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정장되어 있어서 지금도 아마 이 친구보다가 내가 훨씬 더 기억을 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유년기의 교육이 50평생을 이어온 때문인지 다혈질에 급한 성격이지만 언제라도 뒤돌아서서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지에 대해 곰곰이 반성하는 습관이 생겼다.

다른 한 토막의 기억에는 동양난(蘭)이 있다. 큰 키에 흰 피부, 대가족 속에 살아온 생활로 인해 어른을 공경하고 낮은 자세로 겸손을 보이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친구의 모습. 문득 문득 친구가 생각 날때면 머리에 떠오르는 고귀한 자태의 동양란은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자주 내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미지다.

내 인생의 어려운 고비 고비 때마다 나를 외면하지 않고 늘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봐주고 무언으로 격려도 해주고 꾸짖기도 하는 그런 사람. 때론 너무 엄해서 친구지만 어렵기만 한 친구다. 몇 년전 아주 어려울 때 늘 밥은 먹었느냐, 아픈데는 없느냐면서 전화로 묻던 때 난 그냥 응~ 한마디로 전화를 끊고 눈시울을 붉히며 내 못난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어쩌면 내 인생이 아주 망가져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언제라도 그 한자리에 변함없이 서서 지켜봐주고 있는 친구가 있기에 그나마 지금처럼 인생이란 끈을 붙들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늘 미안하고 그리고 못된 내 성질머리를 탓한다. 그렇지만 못된 성질머리도 이 친구 앞에서는 언제나 그냥 유년기의 나일 뿐이다.

언제나 절제된 행동과 단아한 몸짓. 이런 분위기는 그냥 어느 한순간에 몸에 익힌 것이 아니라는 걸, 엄격한 가풍과 철저한 가정 교육의 결과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난 늘 그렇게 기억 하고 있다. 지금도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도 외출할 때나 외출에서 돌아올 때 항상 시부모님에게 먼저 머리숙여 인사하는 그 행동은 익히 몸에 배어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어느 친구는 전했다.

흔히 왕대밭에 왕대 나고 잡초밭에 잡초 난다는 말이 있다. 인물이란 본인의 품성도 중요하지만 주위 환경 또한 중요하다. 예의 범절을 따지는 집안에서 가정 교육을 첫째로 꼽고 있는 이유를 살아가면서 새삼 느끼게 된다.

오늘 난 아주 소중한 선물을 받았다. 아마 내 일생에 전무후무할 이 귀중한 선물을 좀더 바른 사람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알고 실천해가라는 그런 마음을 담은 선물이라 생각하고 마음깊이 소중히 간직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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