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브란스는 소리로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예감과 같고, 흡사 땅을 울리는 조용한 진동과도 같다. 고요한 밤을 울리는 청승맞은 피리소리 같이 애잔하기도 하다. 마치 조용한 관현악곡의 선율처럼 들릴 듯 말듯, 끊어질 듯이 이어지는 그 소리는 천천히 다가온다. 그 소리는 점차 힘을 얻어가고, 조금씩 더욱 명징해지고 더욱 뚜렷해진다. 이제는 의심할 바가 없다. 그것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나의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이 맞아버린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면 나는 아직 옅은 잠 속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허리는 긴장으로 곧게 펴지기 시작한다. 심장은 더 많은 피를 뿜어내고 아드레날린을 가득 머금은 그 피는 온 몸속을 급한 걸음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나는 점점 더 긴장한다. 나의 온 몸의 신경들은 점점 팽팽하게 촉각을 곤두세운다. 결국 나는 번쩍 눈을 뜨고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냥 지나가는 경찰차였으면... 아니 소방차의 싸이렌 소리였으면...’ 그러나 나의 예민한 감각은 그런 소리들과 엠브란스의 소리를 꿈결 속에서부터 구분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것은 엠브란스 소리였다. 그래 그것이 닥쳐왔다. 나의 불길한 예감이 맞은 것이다.
마침내 엠브란스는 조용히 응급실 정문으로 들어온다. 엠브란스가 병원으로 들어오는 모습은 이미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내 의식에도 여전히 꿈결처럼 느껴진다. 깊은 밤의 멍멍한 의식에 비친 그 모습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기만 하다. 금새 엠브란스의 문이 열리고 환한 불빛이 쏟아져 나온다. 불빛을 타고 울음소리와 비명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한사람의 고통이 쏟아져 나온다. 급한 숨결과 다급한 얼굴이 나온다. 다리가 보인다.
움직인다. 그래 아직 살아있구나. 이젠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이미 나의 의식은 100% 살아서 완벽하게 움직이고 있다. 나의 몸은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면서 내 머리는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무얼까. 무슨 환자일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무엇을 먼저 살필까. 나는 그때부터 나 자신을 잊어버린다. 나는 먹이를 향해 달려가기 위해 활처럼 몸을 부풀린 맹수와 같다. 온몸의 신경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날카롭게 선다. 나의 호흡은 빨라지고 나의 숨결도 거칠어진다. 그리곤 다시 꿈결로 돌아간다.
그렇게 시작된 밤의 시간은 꿈결처럼 흘러간다. 마치 몽타쥬 영화의 장면들처럼 거친 호흡과 울음과 긴장과 시간들이 정신없이 뒤섞여서 흘러간다. 땀에 절어 자꾸만 미끄러지는 손, 급하고 간결한 대화, 빠른 판단, 간결하고 명확한 지시, 재빠른 처치...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어디에도 없다. 100%감성을 배재해버린 나의 이성만이 응급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다.
온통 긴장이 가득한 응급실에서도 시간만은 침착하게 자신의 속도를 유지하며 잠시도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얼마간의 시간이 제 호흡을 잃지 않고 지나가고 나면 마침내 안도가 찾아온다. 터질 듯 하던 긴장은 마침내 서서히 풀어진다. 팽팽하게 부풀었던 근육들도 이제 조금씩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무언가 잊은 것은 없을까. 무언가 더 해야 할 것은 없을까. 다시 한번 둘러본다. 아무런 이상은 없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잠시 후 환자는 바퀴달린 침대에 실려 병실로 올라가다. 다급했던 순간들의 뒷정리를 깨끗하게 마친 응급실은 텅 비어있고 다시 정적만이 남는다. 환한 불빛아래에 조용함만이 남아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모든 것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시계만이 시간이 지났음을 알려주고 있다. 다시 꿈결 같은 멍함이 명료하던 내 의식을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가운에 남아있는 땀 자욱이 그것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그래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나의 하룻밤의 일과는 이렇게 지나갔다. 창가에는 아직도 채 빠져나가지 못한 어둠이 조금 남아 있다. 나는 응급실 창가에 걸터앉아서 옅어져 가는 밤의 마지막 끝자락을 바라본다. 그렇다. 꿈결이다. 모든 것은 꿈결이다. 한 사람의 고통과 울음도, 응급실을 가득 채웠던 소란스러움도, 그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사라져간다. 잠시의 분주함과 긴장이 지나고 나면 정적만이 남는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날이 밝아온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에게도 그러한 날이 올 것이다. 얼마의 날들이 더 지나고 나면 나 역시 침대에 누워 응급실을 찾게 될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의 의식에 잠깐 동안 명료한 현실로 나타났다가 다시 꿈이 스러지듯이 그렇게 잊혀져버릴 것이다. 하루의 밤은 어느새 스러져 간다. 그렇듯이 내 인생도 그렇게 천천히 스러져갈 것이다. 아침에 밝아오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그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나에게 허락된 또 하루의 삶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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