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령의 사랑> 표지^^^ | ||
작가는 이 소설에서 사회주의 비조라 할 수 있는 마르크스 '유령'을 불러내어 오늘날 그 이념의 유효성을 다시 되묻는다.
마르크스 사상을 단단하게 박제화시켜 놓고 그의 말을 공식처럼 외우며 골동품 취급하는 현실, 아니 이제는 그런 자리조차 마련되지 않는 현실에서 작가는 마르크스의 유령을 재등장시킨다.
작가는 마르크스 유령의 부활을 통해 마르크스 사상과 인물 그 자체를 사람들에게 재인식시키는 통로를 마련하고자 한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불러내고 있는 마르크스는 노동자와 예비노동자인 대학생들이 손짓하면 다가올 것만 같은 인정 많은 아저씨의 모습이다.
더 이상 지식으로 사회 속에서만 살아 숨쉬는, 우리와는 다소 거리가 먼 마르크스가 아니라 21세기 노동자와도 충분히 대화 가능한 '인간'으로서 마르크스가 다시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유령의 사랑'은 공산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대한 치열한 반성을 담고 있다.
또한 소설은 마르크스의 인간적 결함으로 치부돼 온 하녀 헬레네와의 사랑,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하인리히와의 관계 등을 재조명하고 있다.
^^^ⓒ 일러스트-최인수^^^ | ||
오히려 마르크스와 하녀의 사랑을 지고지순한 프롤레타리아적 연애로 몰고 간다. 대신 아들인 하인리히가 헬레네를 통해 프롤레타리아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을 통해 마르크스의 유령 즉, 혁명이념이 시대 초월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이 죽었단다. 우울한 진단이다"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영상매체에 떠밀려 힘을 잃어가고 있는 활자 매체의 운명, 여기서 비롯된 사회주의 이념의 쇠퇴와 전망부재 현실을 동일선상에 놓고 이야기를 펼쳐간다.
또한 소설 밑바닥에는 마르크스 사상이 숨 쉴 공간을 허용하지 않았던 한국사회의 이념적 편향, 보수언론의 '색깔론' 등에 대한 비판의식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작가는 '개혁'이 만능이 되어버린 요즘 시대에 "무릇 모든 위대한 운동은 느리게 이뤄지게 마련이다"라고 말하며 '혁명'의 화두를 긴 안목에서 놓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사회주의로 대변되는 마르크스 사상과 인간 마르크스의 드러나지 않은 이면적 사랑, 이 둘 사이의 화해는 이 소설이 노리고 있는 또 다른 혁명의 화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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