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익어가는 산간마을의 시린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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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익어가는 산간마을의 시린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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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 횡계리 황태마을

 
   
  ^^^▲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익어가는 황태
ⓒ 강원도^^^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기를 기다리는 산간마을이 있다. 그 산간마을의 쓸쓸한 기다림만큼이나 함박눈을 애타게 기다리며 애간장을 태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밤이면 아이 주먹만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시베리아 벌판처럼 춥고, 낮이면 이른 봄날처럼 포근한 그런 날씨가 이어지기를 기다린다.

그래, 이곳 산간마을에서는 함박눈이 방앗간에서 쏟아지는 하얀 쌀처럼 그렇게 소복이 쌓여 있어야 긴 한숨을 감춘다. 이곳 산간마을에서는 내뿜는 입김이 그대로 얼어붙어 서릿발처럼 햇살에 반짝거려야 비로소 얼어붙은 마음이 풀어진다. 그래야 산간마을 사람들의 야무지고 시린 꿈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저기 매달린 저게 황태의 사촌이야"

지금,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산간마을에는 명태떼들로 우글거린다. 강원도 산간의 오지마을에 우리가 모르는 그런 넓은 바다라도 펼쳐져 있단 말인가. 웬 명태떼들? 하지만 분명 주렁주렁 매달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저것들은 분명 명태떼들이다. 아니, 황태로 물들고 있는 명태들의 숲이다.

황태는 매서운 눈보라와 강추위에 얼어붙은 명태를, 금방이라도 개나리가 피어날 것만 같은 포근한 봄볕 속에서 말린 것을 말한다. 하지만 명태가 황태로 변하기까지 걸어가야 하는 길은 말처럼 그리 수월치만은 않다. 날씨가 너무 추워도 안되고, 그렇다고 날씨가 너무 포근해도 황태의 영화를 누릴 수가 없다.

"저게 황태인가요?"
"저기 매달린 저건 명태야. 아니 몇 번 얼다 녹다 했으니까 황태의 사촌쯤 되었다고 봐야겠지. 명태가 황태가 되기까지는 그리 쉽지 않아. 마치 우리 같은 서민이 왕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힘든 일이지"
"네에~"

 

 
   
  ^^^▲ ▲ 나는 명태도 황태도 아니로소이다
ⓒ 강원도^^^
 
 

이곳 황태덕장마을은 낮에는 제법 따스한 것 같지만 겨울밤이 오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단다. 또한 그 매서운 추위 땜에 명태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가 낮이 오면 또 저렇게 조금씩 녹는다고 한다. 그렇게 '얼다 녹다'를 서너 달을 반복해야 속살이 노오란 그 맛있는 황태로 변한단다. 그러니까 저 덕장에서 지금부터 내년 4월까지 이러한 일은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

횡계리 황태덕장마을은 산 속에서 출렁거리고 있는 또 하나의 바다다. 수만 평의 대지 위에 마련된 덕장에 지금도 주문진에서 달려오는 명태가 빼곡히 매달리고 있는 모습을 넋나간 듯이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육지 속의 바다, 그 바다의 속내를 환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하다.

황태덕장마을은 이곳 대관령 횡계리 외에도 인근에 몇 군데 더 있다. 진부령 아래의 인제군 북면 용대리와 고성군 거진항 주변에도 횡계리 못지 않게 큰 황태덕장마을이 있다. 하지만 이곳 횡계리에 황태덕장이 가장 먼저 들어섰다고 한다. 말 그대로 황태마을의 원조가 이곳 횡계리인 셈이다.

"명태는 언제부터 말리기 시작하나요?"
"아, 황태농사는 지금부터 시작이지. 요즈음에는 지난 해 썼던 덕장을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지만, 예전에는 해마다 11월말쯤이면 통나무를 이어붙여 덕장을 만들었지. 그리고 이듬해 1월초부터 주문진에서 갓 잡아올린 명태를 이곳 덕장에 걸어 말리기 시작했지. 하지만 요즈음은 조금 달라. 예전처럼 명태가 때 맞춰 그렇게 많이 잡히는 게 아니거든"

명태가 보다 질 좋은 황태로 변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겨울 추위와 봄바람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황태 또한 하늘에서 내린 귀한 음식이므로, 인위적으로 만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황태가 되기 위해서는 명태가 꽁꽁 얼어붙은 상태에서 15일에서 20일을 유지해야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명태가 잡힌다고 해서 어느 때나 황태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는 얘기다.

 

 
   
  ^^^▲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 강원도^^^
 
 

이곳 횡계리 황태덕장은 해마다 이맘때면 대략 1백만 마리의 명태를 이곳 덕장에 널어 말린다. 눈이 희끗희끗한 산마루에서 흘러내리는 실개천 주변에는 제법 널찍한 구릉지대가 펼쳐져 있다. 바로 그 구릉지대에 덕장이 설치되어 있다. 아니, 덕장이 아니라 온통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명태들의 반란이 일어나는 장소 같기도 하다. 금방이라도 명태들의 구호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예전에는 주문진에서 갓 건져올린 명태를 이곳으로 싣고 와 저기 송천에서 내장을 빼고 씻었지. 하지만 한 7년전부턴가, 명태 때문에 환경이 오염된다고 말이 많았었지. 그래서 그때부터는 아예 갓 잡은 명태를 그 바닷가에서 씻어가지고 오지. 그러니까 이곳에서는 명태를 말리는 작업만 하고 있다 이 말이야."

최근 황태덕장마을로 들어오는 명태는 주문진에서 내장을 빼고 아예 코까지 꿴 채 세척까지 마치고 들어온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명태를 따로 손질할 필요가 없다. 그냥 덕대에 걸기만 하면 된다. 명태는 아낙네들이 새벽 2시부터 주문진항에서 명태 다듬기 작업을 시작, 화물차에 실리는 시각은 대략 새벽 5시이며 횡계리에 도착하면 새벽 6시쯤이라고 한다. 이후부터 오전 11시까지 명태를 덕대에 거는 작업이 계속된다.

횡계리 황태덕장마을에는 1리부터 13리까지, 모두 13개의 마을이 있다. 하지만 해마다 덕장이 들어서는 곳은 5리와 8리뿐이다. 이곳에 있는 덕장의 수는 모두 스무 개 정도지만 해마다 줄어드는 명태 어획고 때문에 그밖의 마을은 해마다 사정이 달라진다고 한다. 또 날이 갈수록 이 지역이 개발이 되기 시작하면서 덕장의 면적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 강원도^^^
 
 

명태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아주 맛있고도 훌륭한 건강식이다. 또한 그에 걸맞게 이름이 너무나 많다. 처음 잡아 올린 것은 명태라고 부르지만, 냉동실에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이내 그 이름은 제 각각 달라진다.

얼어붙은 것은 동태, 반쯤 말린 것은 코다리, 바싹 말린 것은 북어, 황태를 만들다가 날이 추워서 하얗게 변한 것은 백태, 날이 따뜻해서 검게 된 것은 먹태, 몸통이 잘린 것은 파태, 머리가 없어진 것은 무두태... 이 가운데 파태나 무두태는 잘게 찢겨져 또 한번 황태채라는 이름표를 바꿔 단다.

황태는 우선 색깔이 노르스름해야 하며, 몸체가 타원형을 그리면서 통통한 것이 상품(上品)이다. 또 황태덕장도 마치 소작농처럼 덕장 주인과 황태 주인이 각각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이때 부르는 이름은 그 글자 앞자 한 자를 그대로 따서 덕장 주인은 '덕주', 황태 주인은 '화주'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 덕대(덕목)에 명태를 거는 작업을 '상덕'이라고 하며, 상품화 단계에서 싸리나무로 코를 꿰는 작업은 '관태'라고 한다. 몸집이 큰 황태는 한번에 10마리씩, 작은 황태는 20마리씩 묶는다. 황태 1두름(20마리)의 값은 상품이 3만원, 중품이 2만5천원, 하품이 2만원 정도.

횡계리에서 황태덕장도 구경하고 황태도 살 수 있는 곳으로는 횡계리 도로변의 평남건어물(033-335-3821)과 부산상회(033-336-4027) 등이다. 또 이곳 외에도 이곳 횡계리에 오면 황태를 파는 집은 덕장에 걸린 명태처럼 지천으로 널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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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외버스/횡계리-용평스키장 방면-횡계교 다리-대관령 횡계리 황태덕장마을
평창(진부 횡계 경유) 강릉행 시외버스 하루 18회.
동서울-강릉행 버스-횡계 하차.
☞자가용/영동고속도로 횡계IC-대관령호텔-횡계교-황태덕장마을

☞둘러볼 만한 곳/용평스키장, 대관령 옛길, 대관령박물관, 대관령스키박물관, 삼양대관령목장, 월정사와 성보박물관 상원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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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일 2003-12-17 10:49:55
평창 횡계를 다녀 가셨군요, 겨울철에는 "황태덕장"으로 횡계의 역사가 스키와 함께 시작됩니다. 시간이 남았으면 진부령쪽의 황태덕장도 장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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