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의 역사 (고구려/발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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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의 역사 (고구려/발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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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 고대사 학술대회 참관기 (글 학술 마을지기 순천님)

최근 중국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 혹은 지방의 역사로 규정, 자의적으로 왜곡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17개 역사관련 학회들이 고구려사와 발해사의 중국사 편입 기도를 강력히 규탄하고 우리의 역사인 고구려사와 발해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을 결의하는 학술 모임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중국측의 자의적인 고구려사 및 발해사에 대한 자의적인 왜곡 주장에 맞서 각 분야에 걸쳐 여러 자료와 사료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주장을 조목 조목 반박하며 고구려와 발해사가 우리의 역사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 (그 반박 내용은 아래 별도로 정리해 놓은 것과 같다.)

사실 이번 중국 역사 왜곡 시도는 80년대부터 시도되고 있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큰 기치 아래 변경에 있던 소수민족을 정치적인 목적에서 끌어들일 요량으로 인접 역사에 대한 자의적인 왜곡이라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고, 특히 얼마전 있었던 북한내의 고구려의 고분군에 대한 세계 문화 유산 등재 신청을 계기로 동북쪽 변경지방인 고구려 및 발해의 역사에 대한 본격적인 왜곡 작업을 벌이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지난 해부터 약 5년여 동안 추진 중인 이른 바 '동북공정(東北工程)' 이라는 국책 프로젝트다.

이 사업을 통해 중국은 종래의 한국사였던 고구려사를 사실상 자신들의 역사라고 강변하는 한편, 고구려의 활동무대였던 한반도 북부까지 중국의 고유영토였다고 억지를 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고조선 역사의 불인정은 물론이고, 발해사 또한 중국 지방정권으로의 일방적인 편입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이런 계획을 꾸며가며 고구려사와 발해사의 자의적인 왜곡을 시도하는데도 그동안 우리 학자들은 고구려나 발해에 대한 연구나 관심이 백제나 신라의 그것보다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 사실이다. 그렇게까지 되기에는 과거 군사정권의 엄격한 사회주의권 국가와의 교류 통제에 의한 각종 자료 수집 미비도 한 몫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 스스로의 지연 및 학벌에 의한 백제, 신라, 가야에 대한 나눠먹기 중심의 연구가 상대적으로 고구려나 발해사 연구의 무관심으로 이어져 온 큰 원인이 아닐까 한다.

어쨌든 이번 일을 계기로 고구려와 발해사 연구에 소흘히 했던 우리 역사학계가 비록 뒤늦은 감은 있지만 이번 모임을 계기로 고구려사와 발해사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연구가 이뤄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이번 회의를 지켜본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인 고구려와 발해사인 만큼.. 같은 한 핏줄인 북한과 공조해서 중국의 자의적 역사 왜곡에 당당히 맞서는 모습 보여줘야겠다는 생각 아울러 가져 본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 스스로 지켜야지 남에게 지켜달라고 해서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고구려사와 발해사는 우리의 역사이지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는 절대 아니다. 이러한 우리의 역사를 스스로 지켜내지 못한다면 정말 우리는 후세에게 부끄러운 조상들로 인식될 것이다.

고구려사 왜곡대책 학술회의 주요 내용 ( 발표회 자료집 및 신문기사 -동아일보- 내용 편집 정리 )

고구려의 조상은 고이족의 고양씨(高陽氏)?

1990년대 전반기 중국 학계는 고구려의 족원(族源)을 예맥족으로 보고 중국 동북의 소수민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구려사를 한국사에서 분리하기 위해 고조선이나 부여와 같은 예맥족이 아닌 별개 민족으로 설정할 필요가 생겼다. 최근에는 주나라 역사서인 ‘일주서(逸周書)’ ‘왕회편(王會篇)’에 나오는 고이(高夷)를 고구려의 조상으로 설정해 ‘고구려가 신하국가로서 서주(西周)에 조공을 바쳤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고이를 중국 전설상의 인물인 고양씨(高陽氏)의 후예로 본다.

그러나 일주서는 신뢰할 만한 사료가 아닌 데다 고양씨는 기원전 3000년에 등장하는 전설상의 인물일 뿐이다. 고구려 건국세력은 압록강 중류 일대에서 농경생활을 하던 예맥계(濊貊系) 주민집단이다. (여호규 한국외국어대 사학과 교수)

조공은 외교행위 아니면 지방정부의 의무?

중국은 고구려의 왕들이 한대(漢代) 이래로 중원(中原) 왕조의 책봉(冊封)을 받는 대신 중국 황제에게 공물을 바치며 중국의 지방정권을 자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책봉과 조공제도를 중앙정부와 지방관아 사이의 내부적 정치질서로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한나라 때 생긴 이 제도는 한나라가 팽창해감에 따라 나라 밖으로 확장돼 나라간에도 조공과 책봉 형태가 나타났다.

조공과 책봉은 전근대 동아시아의 외교형식이었을 뿐이다. 중국의 논리대로라면 중국에 조공을 바친 신라 백제 일본의 역사도 중국사가 된다. (임기환 한신대 학술원 연구원)

평양 천도 후 고구려사는 어디의 것인가?

중국 학자들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따라 중국을 구성하는 56개 민족의 역사,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서 이뤄진 역사는 모두 중국사의 범주로 간주한다. 이 논리를 따를 경우 북한 영토 내에 있는 평양 천도 이후의 고구려사는 한국사가 된다.

그러나 중국은 ‘동북공정’에서 논리를 바꾸어 과거 중국의 영토 내에 존재했던 나라의 역사도 중국사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평양이 한나라의 낙랑군 경내에 존재했으므로 평양 천도 이후의 고구려사까지 중국사라는 주장이다. 이는 현재 영토를 기준으로 하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스스로 폐기하는 모순을 일으키는 것이다. (공석구 한밭대 교양학부 교수)

고구려와 수(隋) 당(唐) 전쟁은 내전? 국제전?

1990년대 이후 중국 학계는 수나라 문제나 양제의 조서(詔書), 당나라 태종의 조서를 근거로 고구려에 대한 수·당의 정벌은 국가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이는 중원 통일정권이 변강 소수민족 할거세력을 통제하던 과정으로 결코 침략이 아니며 중국의 고유 영토를 회복해 중국을 통일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고구려 대 수·당의 70년 전쟁(598∼668년)은 동북아 일대에서의 독자적 생존권 보전 및 패권을 추구하던 고구려의 대륙정책과 동아시아를 중국 중심의 일원적 질서로 재편하려던 수·당제국의 세계 정책이 정면충돌한 동아시아 국제전쟁이었다. (박경철 강남대 교양학부 교수)

고구려 멸망 후 유민의 거취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에 따르면 고구려 멸망 후 총 69만7000호 가운데 중국으로 들어간 유민은 2만8000호였다. 중국 북송(北宋) 때 사마광이 편찬한 역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3만8000호로 나와 있다.

이들 중 다수가 왕족이나 귀족들이었는데 중국은 이를 근거로 고구려 유민들이 중국으로 대거 이주해 한족과 융화됐으므로 고구려사가 중국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진해서 간 것이 아니라 당나라에 의해 강제 이주당한 것이다. 이외에 다수의 고구려 유민이 신라로 흘러들거나 발해 건국에 참여하기도 하고 돌궐 등 유목민에 편입됐다. (김현숙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연구원)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적 연계성

중국은 고구려와 고려의 건국 시기에 차이가 있음을 근거로 두 나라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고구려가 한국사인 고려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고려는 나라 이름을 고구려에서 따올 정도로 정신적으로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이다.

또 북진정책을 추진해 개경과 함께 서경(평양)을 양대 수도로 삼을 정도로 실제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였다. 발해도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였는데 발해 멸망 후 고려는 발해의 유민들을 고구려의 후예들이라며 받아주었다. (안병우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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