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맞이하기 위한 홍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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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맞이하기 위한 홍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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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힘든 시기를 지나야 하는가 보다

나의 좋은 친구인 임 형은 이번 해에 술을 무지 많이 마셨다. 하긴 내가 그렇게 말할 자격이 별로 없기는 하다. 그가 마신 술자리의 거의 절반가량은 나와 함께 했었고, 내가 그보다 결코 적게 마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면 우리가 엄청나게 술을 마셔대는 대단한 주당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나와 김 형 그리고 임 형의 세 가족은 서로 알게 된 후 너무 친해져서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매일같이 몇 번씩 통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매일 같은 학교에서 만나고 주말이면 교회에서 만나면서도 매일같이 “오늘은 안 만나?”라고 물어보는 것이 일과이기 때문이다.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만나지 않으면 도무지 성이 차지 않는 것이 세가족의 일과가 되었다.

그러니 세 남자가 모여서 술을 마신다고 하여도 아이들을 포함해서 온 가족이 눈을 뻔쩍 뜨고 있는 앞에서 마시는 것이고, 결코 이차를 가는 법이 없으니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음주습관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워낙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교회에 가면 기도부터 하는 것처럼 만나면 술잔부터 부딪히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이다.

그런데 임 형은 올해 초 회사를 옮긴 후부터 부쩍 술을 마시는 횟수가 많아졌다. 세 가족의 대부분은 가족모임이 아닌 경우엔 술을 마시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고, 마셔도 절제를 잘 하는 편인데 회사를 옮긴 후에는 술을 마시는 횟수나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지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세 여자들의 전화를 통한 소식은 어젯밤 어느 집의 반찬이 무엇이었는지까지 다 알 정도이니, 임 형이 마시는 술의 양을 추정하는 것은 어렵지가 않았다.

직감이 빠른 나는 대번에 임 형이 스트레스를 엄청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임 형은 한사코 부인하기만 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이 핑계, 내 일은 저 핑계를 대며 나의 인생 카운슬링을 자꾸만 빠져나가려고 했다. 나중엔 나도 그냥 보고 있기로 했다. 스스로가 원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해서 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임 형은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도 또한 자신의 몸 관리에 엄청나게 신경을 썼다. 밤 10시나 되어서야 퇴근을 하면 저녁을 먹자마자 집 마당에서, 뜀뛰기며 윗몸 일으키며 오리걸음 등 운동 강도가 상당히 높아 보이는 운동들을 한 시간 가량이나 하고야 집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곤 또 밤늦게까지 회사에서 가져온 일거리들을 꺼내서 일을 하다가 잠에 들거나, 밤늦게 까지 TV를 보는 등 도무지 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벌써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나 또한 한때 그런 시절을 겪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그런 경험들이 임 형에게 도움이 될 수는 없었다. 스스로가 홍역을 앓고 있는 동안에는 주위의 어떤 조언들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 나 스스로가 경험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임 형과 임 형을 걱정하는 임 형네 부인의 모습을 위태위태하게 바라보면서 근 한 해를 지나왔다.^

얼마 전 임 형이 우리 병원을 찾았다. 표정이 자못 심각했다. 벌써 임 형의 부인에게서 전화로 연락을 받아서 찾아온 용건을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이 말할 때까지 나는 기다렸다. 주저하던 그가 꺼내는 말은 “온 몸에 열이 나고 피로감이 너무 심해 깨어있어도 현실감이 없고, 자고 있는지 깨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로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지만 뭔가 심각한 증상인 듯 했다.

진찰을 해 본 결과 우상복부를 누를 때 심한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 금새 느껴졌다. 자세히 만져보니 힘 형의 간이 부어있는 것이 만져졌다. 오른쪽 갈비뼈의 아랫부분을 두드릴 때도 통증을 느끼는 것이, 자신이 말한 증상과 합쳐보면 틀림없는 간의 이상이었다. 당장 초음파 검사와 혈액검사를 해보았다. 결과는 다행히도 지방간이었다. 다른 이상은 없었다.

긴장해 있는 임 형에게 그 결과를 설명해주며 안심하라고 일러주었다. 물론 이번에는 지나친 음주와 스트레스 업무에 대한 과도한 몰두가 원인이 된다는 것과, 옆에서 지켜보기에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임 형이 지나치게 그런 것들에 매달리는 것 같더라는 말까지 덧붙여주었다. 임 형은 그날은 부인하지 않으며 고개를 끄떡거리면서 진지하게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곤 돌아가기에 앞서 초음파 사진을 담은 봉투에다 연필로 커다랗게 ‘사십대를 맞기 위한 홍역’이라고 써넣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마흔을 맞을 때의 느낌을 써서 인터넷에 올렸던 글을 읽었던 기억에 관해 이야기 하다가 돌아갔다. 술을 끊고 간장약을 먹으면서 며칠을 지낸 후 임 형의 증상은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아마도 그가 앓고 있는 홍역도 조금은 나아졌을 것이다.

당분간은 우리 세가족의 모임에서 술은 사라질 전망이다. 임 형은 말할 것도 없고, 나 또한 얼마 전부터 심한 종기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수술을 하면 금새 좋아질 것도 같은데, 왠지 칼을 대지 않고 버텨보고 싶은 미련한 마음 때문이다. 아내는 나보고 ‘마흔 다섯을 맞이하기 위한 홍역’이라며 나의 미련함을 놀린다. 그래 나도 이 겨울에 왠지 모르는 홍역을 앓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이 종기를 이렇게 방치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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