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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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함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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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내 마음에 찾아올 때

“선생님, 오늘 종일토록 참 쓸쓸했습니다.”
“알고 있다. 축하한다.”
“축하한다고요? 무엇을 말입니까?”
“네가 하루 종일 쓸쓸했다는 사실을. 쓸쓸함도 너에게 온 손님이다. 지극 정성으로 대접하여라.”
“어떻게 하는 것이 쓸쓸함을 대접하는 겁니까?”
“쓸쓸한 만큼 쓸쓸하되, 그것을 떨쳐버리거나 움켜잡으려고 하지 말아라. 너에게 온 손님이니 때가 되면 떠날 것이다.”
- ‘쓸쓸함’ 중에서/지금도 쓸쓸 하냐/이 아무개 지음 -

그렇다. 나에게도 쓸쓸함이란 손님이 찾아왔다. 가을이면 항상 찾아오는 단골손님처럼. 내 마음속에 벌렁 드러누워 잠자고 있던 외로움과 그리움이란 손님들이 반갑게 마중을 나갔다. 반갑진 않았지만 워낙 오랫동안 마치 내 마음이 제집인 것처럼 버티고 있던 손들이 잠시 떠나간 자리가 횡 하다. 쓸쓸함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익숙한 것에서 멀어지는 것 같은...

그런 것이라면 나는 잘 참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외로움. 그리움. 쓸쓸함. 막막함. 그런 ‘움’이나 ‘함’으로 끝나는 수많은 다른 이름의 감정들에 대해서도 나는 상당한 면역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내가 앓아온 열병들이 도대체 얼마인가. 그것들 중에는 아마도 그런 이름을 가진 것들은 거의 다 들어있었을 것이라고. 그래서 이젠 어떤 놈이 손으로 찾아와도 당황하는 일 같은 건 없을 것이라고.

예전엔 강해지려고 했었다. 초인을 꿈꾸기도 하면서 마음을 쥐어짜는 모든 종류의 고통들에 초연해지려고 노력했었다. 서서히 세월이 지나가면서 그런 것들에 그다지 힘들어하지 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길을 걷다가 땅에 떨어진 덜 익은 잎새 하나만 발견해도 가슴이 서늘해지곤 했던 나였는데... 강함이란 자신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내 가슴에 하나씩 각인시켜주는 밥그릇 수만큼의 아픔에 비례하여 조금씩 인간은 강해져 가는가 보다.

처음엔 그것을 나의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결국은 세상을 이겨간다고 하더라도 그건 불성실함이라 생각했었다. 항상 깨어있지 못하고 감각의 날을 날카롭게 세우지 못하는 게으른 삶의 결과로 우연히 마음에 평온이 찾아온다 해도, 그것은 스스로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므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언젠가 그것을 성숙이라는 이름으로 변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생에 성실하지 못한 무책임한 변명이라고 따끔하게 야단을 쳐버리려다가, 문득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바라던 ‘강함’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조그만 일에도 눈물을 흘리곤 하는 내 모습이 너무 싫을 때가 있었다. 아침에 동이 트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감동은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삶에서 부딪히는 조그만 아픔을 감당하지 못해서 나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을 흘리고 있노라면, 연민이란 놈이 살며시 다가와서 내 어께를 감싸주는 것이 나는 너무나도 싫었었다. 나 스스로 강해져서 미동도 하지 않고 세상을 이기고 세월을 이겨내고 싶었다. 진정으로 강해져서 어지간한 일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큰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나씩. 결코 빠른 시간 안에 성취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소망했던 것들을 하나씩 이루어갔다. 나는 이제 전보다는 많이 강해졌고, 이젠 그다지 눈물을 많이 흘리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 쉬지 않고 흐르는 눈물의 강이 마른 것은 결코 아니지만, 내 눈에서 눈물을 흘리는 일은 좀처럼 없어져갔다. 어지간한 아픔이 와도 나는 얼굴의 표정도 하나 바꾸지 않는다. “그까짓 놈들. 와보라지!” 늘 왔다가 사라지는 게 바로 그런 것들이 아닌가. 그러나 아직도 힘든 것은 세월을 이기는 것이었다. 하루가 찾아올 때마다 하루씩 사라져가는 그 세월을 떠나보내는 것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어차피 어디선가 다가와서 내 곁을 잠깐 스치고는 또 어디론가 횡하니 떠나가고야말 날들이다. 결코 아무 곳에도 머물지 않고 내 삶의 향기만 살짝 묻히고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바람 같은 날들이 바로 세월이란 것이다. 언제나 떠나가는 것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나를 아프게 하였다. 그렇다고 마음을 닫아놓고 살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픔이 오면 아픔을 느끼고, 슬픔이 오면 슬픔을 느끼며 날들을 보내었다.

무수한 날들이 내 곁을 스쳐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윽고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만 같던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어느 듯 세월이 지나가는 것이 더 이상 그다지 큰 아픔으로 느껴지지 않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사라져 가는 날들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저녁이 되면 고요한 안식의 순간을 즐기는 것 보다는, 또 하루가 저물어 간다는 것이 더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쓸쓸함’을 느낀다. “제깟 것이 찾아와 봐야 수많은 손님들 중 하나일 뿐이지. 이미 내 마음에는 그다지 내 흥미를 끌지 못하는 손들이 많지 않은가.”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만추에 느끼는 쓸쓸함은 그리 녹녹하지가 않다. 온통 거리를 점령하고 있는 스산함의 기운이 쓸쓸함이란 손의 그럴듯한 등장무대를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놈은 분위기 파인가 보다. 나는 그런 것에 좀 약한 편이다.

그래. 그렇다면 내버려두자. 굳이 그놈을 잠재우려 애쓸 필요는 없다. 제 때를 맞아 기운이 성한 놈은 스스로 숨이 죽을 때까지 지긋이 내버려두면 되는 법이다. 늦가을이 더욱 깊어져서 마침내 겨울로 성숙해가고, 그래서 겨울이 몰고 다니는 자기성찰의 매서움이 닥쳐오면 쓸쓸함이란 것은 제 힘을 잃을 것이다. 강한 놈은 더 강한 것 앞에서 숨을 죽이게 마련이다. 나는 겨울을 상대하면 되는 것이다.

겨울이 가져오는 하얗고 투명한 거울 앞에 마주서서 나의 내장들을 하나씩 꺼내어 근수를 달아볼까. 내 오장육부에 깃든 슬픔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겨울과 한번 겨루어볼까. 그래서 강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삶의 무게로 세상을 받치고 있는 내 삶을 꺼내 보일까. 그러면 겨울도 빙긋이 웃으며 손을 내밀어 내 어께를 툭툭 쳐주고 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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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 2003-11-23 18:22:17
김기자 저도 쓸쓸함을 느낌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 다른 까닭에 웃고 울고 그리고 상채기를 냅니다.그런것이 인생이라면 너무 쓸쓸한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 다음엔
그무엇이 필요할까요. 분명 대접받고 지켜줘야할 자존심들을 여지없이 박살내는것은 그무엇일까요. 그것이 궁굼합니다. 분명 아끼고 소중하게 여겨줘야 할것들에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 때문이라는 이유로 천대하는건 아닌지? 울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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