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르포] 내몰리는 인생, 흔들리는 노숙자들
스크롤 이동 상태바
[현장 르포] 내몰리는 인생, 흔들리는 노숙자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공근로 등 노숙자 자립 도울 취업자리 턱없이 부족

 
   
  ^^^ⓒ 다음노숙자카페^^^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갈 곳은 없고...그저 막막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서울 도심과 전북 부안에서 시위대와 경찰 간에 격렬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던 19일 밤 서울역 지하보도. 노숙자 50여 명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소줏잔을 기울이며 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이 곳에서 노숙생활을 시작한 지 대부분 3개월 안팎인 이들은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은 채 추위와 싸우는 중이었다.

"추운 것보다는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진 것이 더 안타깝습니다."

지난 98년 IMF 이후 노숙을 하다 올 봄 서울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하면서 노숙생활을 정리했던 이 모씨(31). 그러나 그는 최근 건설경기의 침체와 다니던 건설사의 부도로 일자리를 잃은 후 다시 노숙을 시작했다.

노숙을 시작한 지난달 이후 줄곧 술로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그는 "알코올 중독과 만신창이가 된 몸 때문에 지금은 얻을 만한 직장도 없다는 것이 제일 안타깝다"며 말머리를 흐렸다.

방 모씨(36)는 한때는 잘 나가는 사장님이었다. 경기도 부천에서 가내공업을 경영했던 그는 그러나 사업부진 속에 진 빚을 갚지 못하고 결국 노숙자의 길을 택했다. "부모와 떨어져 살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할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는 방 씨는 "자포자기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몸과 마음 망가진 게 추위보다 더 힘들어..
떨어져 사는 아이들 생각할 때 가장 가슴 아프다"

밤이 깊어가면서 이 곳으로 모여드는 노숙자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오후에는 용산역과 을지로 지하상가를 전전하다가 밤이 되면 서울역을 찾는다는 김 모씨(46)는 "최근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노숙자들과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정보(?)까지 기자에게 제공해 주고는 얇은 신문지 몇 장에 몸을 맡긴 채 잠을 청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하게 내린 20일 낮, 서울 영등포역 지하출입구. 대낮인데도 5∼6명의 사람들이 침낭 속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요새 젊은 노숙자들이 많이 모인다는 이 곳에서 만난 성 모씨(28)는 "올해 초 지방 소재 모 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한 후 수십 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아직 면접 한번 보지 못했다"고 했다.

"낮에는 도서관과 서점 등에서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취업정보를 얻거나 이력서를 넣은 후 저녁에 영등포역으로 와 노숙생활을 합니다. 어떤 때는 서울역이나 을지로, 종로 등 서울 시내를 하루종일 헤매고 돌아다닌 적도 있습니다."

성 씨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미칠 것만 같다"며 씁슬한 웃음을 지었다.

날씨가 차가워지면서 서울 시내에 노숙자들의 수가 점점 늘고 있다. 최근 경기 침체와 취업 대란 등을 반영하듯 일자리를 잃은 직장인들이, 또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다시 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2~30대 젊은이들도 상당수..IMF 전후와 다른 양상

이 중에는 2·30대 젊은이들이 상당수를 차지, 40∼50대가 대부분이었던 IMF 사태 전후와는 또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노동능력은 갖추고 있으나 일거리가 없어 임시 노숙자가 된 사람들이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03년 11월 현재 우리나라 전체 노숙자의 수는 4천 276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01년 조사된 5천 349명보다 다소 줄어든 수치. 그러나 이 숫자만으로 노숙자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바로 쉼터에 입소하지 않고 있는 거리 노숙자의 수가 2001년의 694명에서 872명으로 크게 늘어난 데다 최근 유입되는 노숙자들 대부분이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거나 지방 출신, 그리고 젊은이들이기 때문.

현재 전국에는 서울 74개소를 비롯, 부산 9개소, 대구 5개소 등 모두 114곳의 노숙자 쉼터가 있다. 그러나 서울과 부산을 제외한 다른 곳은 정원이 50명을 넘지 않는다. 이처럼 노숙자들을 위한 많은 시설이 마련돼 있음에도 정작 노숙자들은 보호시설에 입소하기를 꺼리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해 "거리 노숙자들은 보통 집단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쉼터 이용을 기피한다"며 "앞으로 날씨가 더 추워지면 쉼터 이용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노숙자들은 이들 대부분의 보호시설에 재활프로그램이 없어 입소를 하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강 모씨(38)는 "현재의 쉼터는 노숙자들의 어려움을 잠시 덜어주는, 단순한 수용 공간에 머물러 있다"며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면서 재사회화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과감한 시설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공근로 등 노숙자 자립 도와야 할 취업자리 턱없이 부족

문제는 이들을 다시 사회로 되돌아오게 하는 뚜렷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것.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신규채용은 물론, 임시 취업이나 재취업, 공공근로 등 노숙자들의 자립을 도와주어야 할 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들이 대부분 일용직이거나 갓 사회에 발을 내딛는 초년생들이기 때문에 고정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고, 기업들 역시 경력이 많은 전문직 종사자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하다보니 취업난에 허덕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 어디 재취업할 수나 있겠습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지도 모를 일이고. 희망을 버리지 않기 위해 직장을 알아보고는 있는데, 갈수록 이 생활에 젖어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이 들면 안될텐데..."

한 노숙자의 자조 섞인 넋두리 속에서 현재의 체감경기가 얼마나 나쁜지, 또 노숙자들이 스스로 생활할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리기 전에 이들의 자활을 도울 정책적 지혜와 정책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차가운 겨울철이 다가오면서 이들을 따뜻하게 인도할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것은 아닐지. 예년보다 일찍 찾아 온 추위 속에서 노숙자들의 매서운 겨울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중이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정화영 2003-11-22 14:21:53
참 이거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선은 그 사람들 스스로도 "이 나라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살 수 있는 희망이 보인다" 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할진데 문제는 사회 전체가 제대로 추스려지고 있지 못하기에 썩어빠진 위정자들의 책임이 막대하다 아니할 수 없군요~

고영일 기자님 좋은 기사 고맙게 봤구요.. 날도 계속 추워질 터인데 계속 심층기사
기대 해도 되겠습니까? 수고 부탁드려요~~^^*




오오호 2003-11-22 22:20:04
저도 노숙 해본적 있어염.. 새벽 6시 30분까지 시내서 놀다가 1시간 가량 역에서 자고 바로 학교로... ㅋㅋ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