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은 '서른 즈음에 떠난 여행'이라는 글로서 자신의 외롭고도 자유로운 여행소식을 전하고 있으며, 또 어떤 분은 '한 겨울, 겁 없이 떠나는 유럽여행'이라며 유럽의 뒷골목을 체험하겠다는 각오를 전하고 있다.
예전엔 아무렇지도 않은 이런 얘기들이 왜 나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걸까? 왠지모를 피해의식도 들고, 쉽게 떨쳐버리고 떠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못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도대체 왜 그럴까?
'아내가 없고, 딸아이가 없다면 나도 그렇게 훌쩍 떠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함에 못내 아쉽기만 하다. 삶의 권태라고 하기엔 아직 삶의 끈이 짧아 함부로 내뱉지 못하겠고, 철이 없어 오는 방황이라고 하기엔 현실이 너무 빡빡하기만 하다.
머지 않아 다가올 서른 즈음엔 나도 훌쩍 떠날 수 있을까? 그때는 더 많은 삶의 가지들이 날 현실속에 꽁꽁 묶어둘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걱정이 지금의 허탈함을 더해주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필자에게 일탈로 다가오는 현실에서 그 일탈을 꿈꾸는 것이 사치는 아닌가 싶어 또 걱정이다. 상대적 허탈함에, 현실적 아쉬움, 그리고 철없는 사치스러움에 대한 걱정까지 들고 보니 여행을 간다하다러도 배낭조차 제대로 꾸려갈까 또 걱정이다.
예전 한 교수님은 휴일에도 학교에 간다며 집에서 나와서는 혼자 조용히 낚시를 하러 간다고 하셨다.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하신다. 가족을 놔두고 어찌 그럴 수 있냐던 일전의 생각은 지금, 충분한 이해와 함께 부러움으로 바뀌어버렸다.
남자라는 동물이 겉으론 강한 체 하고, 잘 떠들어대고 어울려도 그 내면엔 혼자 있고 싶은, 그래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방랑벽이 조금씩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언제든 돌아올 보금자리가 있어서 그러는지도 모를 일이다.
남자의 계절이라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또 한번 내가 남자임을 확인한다. 현실을 너무나 충실히 살아가는 아내에겐 또 철없는 사람이라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탈에 대한 동경이 지금은 상대적인 허탈감으로 다가올지라도 언젠가 나도 떠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주기에 원망만 해서는 안되겠다. 대리 만족이라도 하며 다시 삶의 치열함에 채찍질을 가해야 겠다. 그러지 않고선 나의 눈과 귀는 자꾸 일탈로 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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