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둑놈들, 요즘엔 손을 씻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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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둑놈들, 요즘엔 손을 씻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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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여식은 곧잘 도서 대여점에 가서 만화를 빌려다 본다. 오늘도 빌려온 만화를 보면서 연신 키득거리는 녀석을 보고 지청구를 했다.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허구한 날 만화만 보냐?" 그러나 딸내미는 얼굴색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럼 아빤 제 나이만 할 때 만화는 안 보고 오로지 줄기차게 초지일관 공부만 하셨나요?"라며 외려 반격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처럼 만화에 몰입하는 여식을 보노라니 지난 30여년 전 만화에 대한 어떤 징그런(!) 기억이 반추된다. 그 때가 아마도 4학년 1학기 때이든가 ..... 평소 공부엔 관심이 도통 없고 같은 반의 여자급우(級友)들을 괴롭히는 일엔 일가견이 있는 친구가 있었다. 녀석은 학교에 와서도 당시에 가장 인기 높았던 만화인 '우주소년 아톰' 외에도 이런저런 만화를 선생님 몰래 꺼내서 보는 것이 생의 낙이었다. 당시에 나는 학생회장이었기에 그 직위(?)에 편승하여 그 녀석의 만화를 훔쳐보고 싶은 욕심에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그 녀석에게 다가갔다.

"야~ 너만 보지 말구 나도 좀 보여주라~!" 하지만 그 녀석은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약만 올리는 녀석에게 순순히 말을 해서는 도무지 들어줄 것 같지 않기에 그래서 나는 비겁하지만 학생회장의 프리미엄인 전가의 보도(寶刀)를 꺼냈다. "너, 내 말 안 들으면 수업시간에 교과서 대신에 만화책 봤다고 이따 선생님께 이를껴!" 그러자 녀석은 그제서야 만화책을 한 권 슬쩍 건네주는 것이었다. 그처럼 공짜로 보는 만화는 역시(!) 그 재미가 참으로 쏠쏠했다.

만화 한 권을 얼른 다 보고 나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 친구에게서 빌렸던 만화를 건네주며 "다음 편 한 권 만 더 보자~"고 사정을 했지만 그 녀석은 이제 수업도 끝나서 선생님께 들킬 염려도 없으니 "웃기지 마~"라며 배짱을 부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궁여지책으로 수업이 끝나고 학교를 나와 학교 앞 문방구에서 당시에 대히트했던 스낵종류의 하나였던 <라면 땅>을 하나 사서 그 친구에게 줬다. 그제서야 그 녀석은 못 이기는 채 아까 봤던 만화의 다음 편을 가방 안에서 찾아서 꺼내주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광석화처럼 그 만화를 다 보았는데 하지만 지독한 갈증처럼 또 그 다음편의 만화 내용이 하염없이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안절부절 일요일을 쉬고 월요일 날 학교에 가니 그 녀석은 역시 변함없이 가방에서 이런저런 만화를 마치 당시에 유행했던 '줄줄이 사탕'처럼 꺼내는 것이 그렇게도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호기심이 잔뜩 발동한 나는 그 친구에게 "넌 대체 무슨 돈이 그리도 많아서 만화를 그렇게도 많이 갖고 다니냐?" 고 물었지만 그 친구는 입을 닫은 반면 대신에 그 친구와 평소에 엿처럼 찰싹 짝처럼 붙어 다니던 한 친구가 넌즈시 귀뜸을 해 주었다.

"다 방법이 있지~!" 그래서 나는 그 친구들에게 이젠 아예 애걸복걸을 했다. "나도 니들처럼 맨날 만화를 원 없이 많이 볼 수 있게 해 주라! 그럼 이따 또 '줄줄이 사탕' 사 줄게~" 그러자 두 녀석은 이내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주고 받더니 "그럼 이따 수업이 끝나면 우릴 따라 오라"는 것이었다. 이윽고 수업이 끝나서 가방 안에 있던 책을 모두 빼고 빈 가방만 가지고 녀석들의 뒤를 쫄랑쫄랑 따라간 곳은 이런저런 과자와 사탕들을 팔면서 만화도 함께 볼 수 있게 꾸며놓은 어떤 조그만 만화가게였다.

만화가게 주인아저씨는 내가 처음 보기에도 조금은 어수룩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녀석들은 시도 때도 없이 그 가게에 빈가방을 가지고 들어가서 만화를 보는 척 하면서 주인아저씨가 딴 눈을 팔 때 번개처럼 만화를 훔쳐서 자기들 가방 안에 숨겨 가지고 오곤 했던 것이었다. 두 녀석은 만화를 보는 척 하더니 어느새 빈가방에 만화책을 가득히 담고는 내게도 눈짓으로 "너도 얼른 담아!"라는 무언(無言)의 메시지를 자꾸만 보내는 것이었다.

경험이 없기는 했지만 만화책을 잔뜩 공짜로 볼 수 있다는 부푼 설레임에 그만 나 역시도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움직여 가지고 갔던 빈가방안에 만화를 훔쳐서 대 여섯권이나 구겨 넣었던가 보았다. 그 녀석들이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나길레 나도 따라서 엉거주춤 따라 일어나 만화가게 밖으로 나가려는데 순간...! 주인아저씨가 내 손목을 꽉 잡는 것이었다. 순간 공포의 전율이 짜르르~ 엄습했다.

"왜.. 왜 이러세유?" "니 가방 좀 열어보자!" "시.. 싫어유! 남의 가방은 왜 본대유?" 하지만 아저씨는 사정없이 내 가방을 까 열었고 그러자 내 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그 많은 만화책들은 꼼짝없는 도둑놈의 '현장 물증'이었다. "요새 만화책이 하도 많이 없어져서 내가 도둑놈을 잡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너 잘 걸렸다! 그동안 훔쳐간 만화책 값 다 물어내, 이 못된 만화책 도둑놈아!" "아녀유~! 저는 오늘이 진짜루 첨이어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고 눈물로서 하소연했지만 하지만 아저씨의 귀에 나의 하소연은 마이동풍일 따름이었다.

결국 가방을 맡기고 내 이름과 학년 반을 적은 쪽지를 건네 드리곤 이튿날 어찌어찌 당시로서는 거금이었던 5백원을 마련하여 갖다드리는 것으로 해결을 했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나는 그 후 만화라면 이가 갈려서 잘 읽지 않게 되었다. 그때 만화가게를 전문적으로 털었던(?) 그 두 녀석들은 지금은 어찌 살고있는지 불현듯 보고 싶다. 그 두 친구들도 이제는 세월이 흘러서 진작에 나처럼 결혼을 했을 것이고 또한 자식들을 키우면서 40대 중반의 언덕을 넘고 있겠지? 근데 이제는 만화방 도둑질에서 손을 씻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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