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고서에 따르면 모든 후보가 문화의 사회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에 대한 철학과 이념은 매우 빈곤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문화는 지원하면 좋은 것'이라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문화단체들은 "이는 정치, 경제와 관련된 정책에 있어서 후보자들이 강조하는 자신과 소속 정당의 철학 및 이념에 비추어 보았을 때 문화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과 이해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또 대선 후보들은 이번 평가에서 사회변화에 따른 문화정책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매우 추상적일 뿐 아니라 형식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21세기는 문화의 세기', '문화가 새로운 국가정책의 중심 매개'라는 큰 흐름에는 동의하였으나 사회 변화에 따른 문화정책의 중요성과 그 상관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나 정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보고서에서는 "문화에 대한 자기 철학과 이념, 사회 변화에 대한 둔감함은 문화정책의 구체성, 전문성, 실현가능성 등의 부족함을 드러낸 것"이라며 "특히 구체적인 문화정책에 대한 질의의 경우 질의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매우 원칙적인 수준에서의 답변을 되풀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지적하고 "이는 문화정책에 대한 후보자들의 전문성, 구체성 등이 매우 떨어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적인 문화예술진흥 정책을 내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후보는 "문화의 다양성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경제강대국의 일방적인 대중문화 유입으로 우리문화가 훼손되고 획일화되는 것을 경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회창 후보가 제시한 문화정책 개혁과제로는 △정부의 양허요청안 제출 재고, 세계문화장관회의(INCP) 참여 긍정검토 △언론 및 방송의 공공성강화와 시청자 주권 확대방향으로의 통합 방송법 개정 △문예진흥기금 지속적 확충(임기 내 1조원마련) △문화유산 보존 및 관리 방안 마련 △국민의 문화향수권 확대를 위한 지원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문화를 "인간다움의 조건이자 삶의 질을 가늠하는 척도, 민주주의 사회를 가능케 하는 자양분"으로 보고 문화의 창조적 다양성을 강조했다. 노 후보는 이를 위해 "활기찬 문화예술 창작 및 향유풍토를 만드는 것이 문화정책의 최우선 과제"라고 지적했다.
노무현 후보가 제시한 구체적 정책대안으로는 △문화분야의 자율성, 다양성 확대 △문화예산 1.5~2.0% 확보 △양허요청안 재조정 및 문화부장관회의 참여 △언론 및 방송의 공공성강화와 시청자 주권확대 △표현의 자유 보장과 문화예술 분야 세제개혁 △남북문화예술교류 정례화 및 강화 등 정책에 있어서 비교적 선명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문화에 대해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화폐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문화의 고유성에 주목했다. 권 후보는 이런 관점에서 "이제까지의 문화정책이 알맹이 없이 문화를 수단화 하는데 그쳤다"고 진단하고 "국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삶의 질을 더 높이는데 이바지하는 것"으로 문화정책을 규정했다.
권영길 후보가 제시한 문화정책 공약으로는 △사회문화분야 부총리제 도입 △부유세 신설, 국방비 감축을 통한 문화예산 2% 확보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 양허요청안 철회 및 세계문화장관회의 참여 △방송언론의 공공성 강화와 시청자주권 강화 △표현의 자유 보장과 문화예술분야 세제개혁 △남북문화교류 강화 등 타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는 문화부처의 위상제고와 표현의 자유 확보를 위한 형법 개정 및 선택등급제 도입에는 부정적이거나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권영길 후보는 문화예술인의 생존권 보장과 문예진흥기금 확대와 재원확보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이번 평가에서 문화단체들은 권영길 후보에 대해 "문화적 인식이나 소수 문화발전에 대한 의지, 문화복지, 문화적 권리 확대 등에 있어서는 타후보에 비해 우수한 공약들을 내걸었으나, 문화분야 조직 및 기구운영, 문화예술 진흥, 체육, 문화유산, 관광정책 등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아직까지 준비가 충분하지는 못하다는 느낌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또 노무현 후보에 대해서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비교적 구체적인 답변을 했고 문화적 인식도 높은 편이었지만, 유력후보군에 속해 있는 데다 복잡한 당 내부 사정을 감안해야 했기 때문인지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하는 부분도 적지 않아 보였다"며 "문화예산, 표현의 자유, 문화부 위상강화와 같은 다른 부처와의 갈등소지가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한 답변을 피했다"고 소개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 대해 문화단체들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WTO 양허요청안을 철회하고 세계문화부장관회의(INCP)에 참석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모두 긍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며 "문화분야 조직 개편, 문화기반 시설 확충 등과 관련한 질의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동의의 뜻을 표했지만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나 방안을 제시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평가와 관련 문화연대 관계자는 "21개 문화예술단체와 함께 지난 11월 4일 각 후보자들에게 문화정책에 관한 공개 질의서를 발송하였으며, 11월 22일 이에 대한 후보자들의 정책 답변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밝히고 "후보자들이 문화와 문화정책의 사회적 중요성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화민주주의와 문화사회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이번 선거에 임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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