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변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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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변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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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작고도 큰 한걸음을 내딛자

^^^▲ 주인 되는 세상을 향해 우리 모두 작고도 큰 한걸음을 내딛자
ⓒ 뉴스타운 자료사진^^^

한때 주변인이란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상황의 어려움에 떠밀려서 방황하는 삶의 모습을 표현하는 단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용하는 개념들이 많이 바뀌면서 자연히 단어들도 많이 바뀌었다. 요즘은 주변인이란 단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자연히 주변인이란 개념도 잘 사용되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런가? 정말 주변인이란 개념이 요즘의 시대를 정의하고, 헤쳐 나가기 위한 노력에서 별다른 효용이 없는 폐기된 단어인가? 내 머리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며칠간 그에 대해 잠깐씩 생각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아직도 주변인이란 개념은 여전히 유용한 개념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요즘 우리나라는 참 어렵다.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적인 입장에서도 우리는 대단히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다. 우리의 운명을 우리스스로가 결정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의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또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의 나라에 우리의 군대를 파병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스스로 우리나라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는 주변인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도하라운드 등 어려가지 국제협약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협상테이블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이익을 지켜내지 못한다. 우리에게 강한 경제적 영향력을 미치는 강국들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레 입장을 펼칠 수 있을 뿐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소중한 한 농민의 목숨을 잃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그들이 자살이 아니라 사회제도적인 환경 때문에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므로, 사회적 타살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죽음으로 내 몰린 것이라 본다면 주변인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러나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들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내 놓음으로써 무엇을 이루고자 했다면,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의 삶을 지켜나가기 위한 최후의 무기인 생명을 내놓은 것이라면 그들은 결코 주변인이 아니다. 나는 죽음을 방관하지도 찬양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주변인의 위치에서 벗어나고자 애쓴 그들의 그 강한 의지를 찬양한다.

우리를 슬픔으로, 고통으로, 암울함으로 또 때로는 경제적 고통으로 혹은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남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죽음의 장소로 내 모는 힘들이 있다. 그 힘은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슬픔에 빠지게 하고 많은 사람들을 주변인으로 만들어가다. 그리고 철저히 그들을 파괴한다. 실의에 빠지게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주변인으로 머물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루하루를 긍정하며 열심히 오늘을 버티고 살아간다. 그리고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는지 알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고통을 만든 존재에 대해 약한 힘을 다해서 반항하기도 한다.

나는 반세계화 시위에서 목숨을 읽은 농민에 대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분신에 대해서, 이라크 전 파병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에게서, 단식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미 대사관 옆에서 기도회를 벌이다 경찰에 해산된 종교인들에게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지난한 노력을 발견 한다.

그들의 슬픔에, 그들의 분노에, 그들의 여리디 여린 저항의 몸짓에서 그들은 비로소 자기 자신의 존엄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 약하고 여리고 용기가 없어 뒷전에 있는 우리에게 용기를 부어 줄 것이다. 지난날 우리가 그 힘든 역사를 일구어 왔던 것처럼,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 간단하지 않은 커다란 괴물과 싸우는 것은 힘든 만큼이나 보람된 일일 것이다. 스스로 포기하고 스스로 주변인의 존재로 남아 있는 것보다, 그 힘든 싸움을 감히 시작하는 것은 얼마나 보람된 일일 것인가. 한 끼의 금식으로 자신의 신에 대한 기도로, 한번의 시위에 동참하는 것으로, 인터넷세계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것으로 우리는 스스로의 주변인 됨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 우리가 주인 되는 세상을 향한 작고도 큰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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