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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Gojo Gwangmooje:1897-1919)실록, 순종 융희제(1919.1- )실록 편찬해야
 김민수_
 2014-02-04 18:07:25  |   조회: 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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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Gojo Gwangmooje:1897-1919)실록, 순종 융희제(1919.1- )실록 편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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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은 조선국 1대 국왕 태조조부터 25대 국왕 철종조까지 조선시대 25대 국왕 472년간(1393-1863)의 조선국 왕실의 역사를 편년체로 축약하여 기록한 역사서이며 국왕의 공식 일정, 국가의 공식행사, 주요 정치적 사건, 천재지변 등을 기록하였다. 사관(史官)은 국왕으로부터 사초(史草) 작성의 독립성과 사초(史草)에 대한 비밀을 보장받았으나 특정 국왕의 실록에서 특정 일에 특정 사건이 집중 기사화하거나 특정 사건에 대한 선왕 실록의 기사와 전혀 다른 후왕 실록 기사를 보면 사관(史官)의 사초(史草) 기록 및 실록찬수청(實錄纂修廳)의 사초 수집,실록(實錄) 편수,감수의 중립성은 의구심이 든다. 실록(實錄)을 편찬할 때에는 춘추관(春秋館) 내에 임시로 실록찬수청(實錄纂修廳)을 설치하고 영의정이나 좌의정·우의정을 총재관(摠裁官)으로 삼고 대제학과 문필로 이름 있는 사람을 선발하여 도청(都廳) 및 각 방(房)의 당상(堂上)으로 임명했다. 실록을 축약,편찬하는 기본 사료는 춘추관(春秋館)에서 매일 공문서를 종합,기록한 시정기(時政記)와 사관(史官)의 사초(史草)이며 사관(史官)의 사초(史草)는 취사선택되어 모두 실록에 기사화되지는 않아 기사가 없는 날도 많다. 해당 국왕의 재위기간 동안 각 관청의 기록인 각사등록(各司謄錄)·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등 각 개인의 일기·문집도 편찬 자료로 이용되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일성록(日省錄)도 사료(史料)로 사용됐다. 각 방의 당상과 낭청(郞廳)은 사관(史官)의 사초(史草) 등 사료(史料)를 수집하여 연·월·일순으로 분류한 다음 편년체 형식의 실록 초초(初草)를 작성하여 도청에 넘긴다. 도청에서는 낭청에서 작성한 초초 가운데 오류를 수정하거나 보충하여 2차 원고인 중초(中草)를 작성한다. 중초를 바탕으로 총재관과 도청(都廳) 당상(堂上)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고치는 교열(校閱)하여 문장과 체제를 통일하고, 최종적으로 수정· 더 쓸 것은 쓰고 지울 것은 지워 버리는 필삭(筆削)하여 정초(正草)를 만들고 실록을 인쇄한다. 사초(史草)나 초초·중초·정초는 모두 물에 씻어 없애는 것을 세초(洗草)라고 하며 이는 실록 편찬에 많은 종이가 소요되기 때문에 종이를 다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조선국(1393-1897) 정부는 실록(實錄)이 완성된 후에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에 보관했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사고의 실록들이 소실되기도 하여 그 때마다 재출간하거나 보수하여 대한제국 시대(1897- )까지 궁내부 및 경기도 강화의 정족산, 경상도 봉화의 태백산, 전라도 무주의 적상산,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의 5대 사고에 각각 1부씩 보관했다. 태종실록을 편찬할 때까지 한성에 내사고(內史庫), 외사고(外史庫)로는 충주사고(忠州史庫)를 두었다. 세종 21년(1439)에 경상도 성주(星州)와 전라도 전주(全州)에 사고를 더 지어 실록을 보관하게 함으로써 내사고인 춘추관 실록각(春秋館 實錄閣)과 외사고인 충주 ㆍ전주ㆍ성주사고가 정비되어 4사고가 운영했다. 임진왜란으로 춘추관, 충주, 성주 사고가 불타고 전쟁의 화를 면한 전주 사고본 실록은 정읍(井邑)의 내장산, 묘향산 보현사별전(普賢寺別殿),영변객사(寧邊容含)로 옮겨 보관하였는데, 1603년 등서(謄書)를 위해 강화도로 옮겼다. 1606년 재인(再印)되어 춘추관 사고, 외사고인 정족산, 묘향산, 태백산, 오대산의 5사고에 보관했다. 춘추관 사고(春秋館 史庫)는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 병자호란 때 불타 없어지고 4사고만 내려오다가 오대산 사고본은 일본군국주의에 의해 일본 동경제대로 불법 반출되어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소실되고 일부는 환수했으며 창경궁 장서각에 보관되었던 적상산 사고본은 북한으로, 정족산 사고, 태백산 사고본은 일본군국주의가 경성제대로 불법 이관하였으므로 문화재청은 교육기관,문화기관,기록관리기관,북한에서 소장중인 조선왕조실록을 고궁박물관으로 이관,국가귀속하여 전시홍보해야 한다.













일본군국주의 총독부(1910-1945)가 1930년대에 편찬한 고종실록은 대한국(大韓國:1897- ) 초대 황제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Gojo Gwangmooje:1897-1919)의 조선국 국왕 즉위년인 1863년에서 광무 11년인 1907년(대한국 고조 광무제의 치세(治世)는 1897년부터 1919년 붕어 시까지)까지 45년간의 역사를 조선국 역대 실록의 체재에 준해 사실(史實)을 연(年), 월(月), 일(日) 순서로 기록하는 편년체(編年體)로 편찬한 실록이며 대한시대(大韓時代) 대한광복운동기(大韓光復運動期)인 1927년 4월 1일부터 1935년 3월 31일까지 만 8년에 걸쳐 일본군국주의 총독부 의 주관 하에 통감부,총독부, 일본 왕실,일본군 기사를 중심으로 편찬, 간행되었다. 고종실록은 대한국(大韓國) 초대 황제 고조 광무제의 조선국 국왕 즉위년인 1863년에서 광무 11년인 1907년까지 45년간의 편년 기사 48권 48책과 목록 4권 4책을 합쳐 52권 52책으로 되어 있다. 편찬한 정부본(正副本)은 영사본 40부와 같이 이왕직 도서관에 소장되었고, 잔여 160부의 영사본은 관계기관에 반포되었다. 일본군국주의 총독부 산하 대한국 황실 궁내부가 격하된 이왕직(李王職)의 주관 하에 편찬, 간행한 74권 60책 3,781장으로 된 고종실록은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의 영사본을 대본으로 하여 1970년 탐구당(探求堂)에서 상ㆍ중ㆍ하 3권으로 원본을 복사하여 인쇄하는 영인(影印), 책의 원형(原形)을 크기만 줄여 인쇄하는 축쇄(縮刷)한 것이며 이에는 실록에 없는 총색인 1권을 별책부록으로 붙였고 매 권마다 목차를 만들어 권초에 붙였으며 구두점을 찍어 이용자가 편리하도록 하였다. 편찬 계획에는 1년 기사를 1권 1책에 수록할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고종실록의 경우 조선국 국왕 즉위년인 1863년을 원년으로 통합하고 1894년과 1897년(광무 1)ㆍ1898년ㆍ1905년은 기사의 양이 많아 분책하여 전 48권 48책이 되었다. 일본군국주의 총독부(1910-1945)가 대한국을 불법 통치한 대한시대 대한광복운동기인 1927년 4월 일본군국주의 총독부는 대한국 고조 광무제,순종 융희제의 묘호(廟號), 제호(帝號)를 대한제국의 황제 추존 시 묘호, 제호 올리는 예로 잘못 올리고 실록 또한 조선국 역대 실록의 예에 따라 고종순종실록을 편찬하였다. 준비실을 설치해 임시 고용원 10명과 필생(筆生) 26명을 배치하고 실록 편찬에 필요한 사료를 총독부 경성제국대학에서 빌려 자료를 추출, 등사하기 시작하였다. 1930년 3월까지 만 3년에 일성록ㆍ승정원일기 등 각종 기록 2,455책을 이용하여 총계 24만 5356매를 등사하였다.











일본군국주의 총독부(1910-1945)가 1930년대에 편찬한 고종순종실록 편찬에 필요한 자료의 등사가 끝나자 이왕직에 편찬실을 설치하고 1930년 4월 편찬위원을 임명, 배치하여 고종순종실록 찬술작업을 착수하였다. 초대 위원장에는 일본인 이왕직 차관 시노다가 취임하였다. 1932년 7월 시노다가 이왕직 장관에 서임되자 부위원장 직제를 신설하여 이왕직의 예식과장(禮式課長)이던 이항구(李恒九)를 차관으로 승격시켜 부위원장직을 맡겨 실록 찬술의 책임을 지도록 하였으나 실제적 총책임은 1930년 4월 감수위원으로 임명된 오다 경성제국대학 교수가 맡았다. 편찬실에는 위원장ㆍ부위원장 아래에 편찬에 필요한 공ㆍ사의 문서를 수집하며 사적(史蹟)의 조사 및 관계자로부터의 사실 청취의 일을 맡는 사료수집부, 각 사료(史料)에 기초하고 역대 실록에 준하여 편년체의 실록 편찬을 담당하는 편수부, 편집된 원고에 대하여 사실(史實)의 정확을 기하고, 문자 장구(章句)를 정리하여 실록 원고를 작성하고 간행할 때 교정하는 일을 맡는 감수부의 3부서를 두었다. 그리고 편집부만은 다시 1ㆍ2ㆍ3반의 세 반으로 나누었다. 각 부에는 위원ㆍ보조위원ㆍ서기를 두었고 위원장 직할 하에 서무위원ㆍ회계위원을 배치하고 편찬실 서무는 보조위원 서기가 담당하였다. 일본군국주의 총독부(1910-1945)가 1930년대에 편찬한 고종순종실록 편찬위원(編纂委員)은 위원장(委員長)은 이왕직 장관(李王職 長官) 법학박사(法學 博士) 시노다 지사쿠이며 감수위원(監修委員)은 경성제국대학 교수(京城帝國大學 敎授) 오다 쇼고, 이왕직 촉탁(李王職 囑託) 나리타 세키나이이며 사료수집위원(史料蒐集委員)은 대륙통신사 사장(大陸通信社 社長) 기쿠치 겐조이며 서무위원(庶務委員)은 이왕직 사무관 스에마쓰 구마히코, 이왕직 사무관 시가 노부미쓰이며 회계위원(會計委員)은 이왕직 사무관 사토 아키미치이며 감수 보조위원 총독부 이사관(總督府 理事官) 에하라 젠쓰이이며 편찬 보조위원(編纂補助委員)은 총독부 도경시(總督府 道警視) 하마노 쇼타로, 총독부 군서기(總督府 郡書記) 미즈바시 후쿠히코이며 사료수집 보조위원(史料蒐集補助委員)은 경성고등상업학교 촉탁(京城高等商業學校 囑託) 기타지마 고조이다.













편찬위원들은 기술(記述)ㆍ체재ㆍ편책을 역대 실록, 특히 철종실록의 예에 따른다는 원칙을 세웠으며 고종순종실록은 목록을 작성, 그 일자 아래에 중요 기사를 요약, 수록하고 날짜를 간지 대신 숫자로 표현하며 갑오유신 이후의 조칙ㆍ약조 등을 원문 그대로 전재한 것이 조선국의 역대 실록과 달랐다. 편찬에 활용된 사료는 승정원일기가 주된 것이었고, 일성록ㆍ계제사일기(稽制司日記) 등도 이용되었으며 각 사(司)의 등록(謄錄)ㆍ일기ㆍ계록(啓錄)ㆍ존안류(存案類)ㆍ문집류와 준비실에서 등사한 사료 및 사료수집위원들이 수집한 각종 사료가 모두 이용되어 각국과의 여러 약장, 관제의 개폐, 관직의 차제(差除), 각사각영(各司各營)의 회계부, 폐단과 질고, 재변(災變), 진대(賑貸)의 기사가 충실하며 1894년 갑오유신 이후의 조서ㆍ칙령ㆍ법률ㆍ각령(閣令)ㆍ부령(部令) 등을 거의 총망라하고 있어 대한시대 역사 연구에 주요 사료로 활용할 수 있으며 통감부,총독부,일본 왕실,일본군 기사를 삭제하고 대한제국 황실 기사만으로 고조 광무제 실록을 편찬하여야 한다. 일본군국주의 총독부(1910-1945)가 1930년대에 편찬한 고종순종실록은 일본군국주의 총독부가 대한국을 불법 통치한 대한시대 대한광복운동기에 통감부,총독부,일본 왕실,일본군 기사를 중심으로 편수(編修),감수(監修)하여 편찬한 것이며 각 반 위원에 의해 편찬된 고서(稿書)는 반드시 감수부의 총책임자인 경성제국대학 교수에 의해 감책(監冊)ㆍ감증(監增) 등의 손질이 가해졌으며 실록 원고는 위원장인 일본인 이왕직 장관의 결재를 얻어 간행되는 등 일본인들이 적극적으로 편수(編修),감수(監修)에 참여하여 실록이 편찬되어져 일본군국주의 식민사관에 의거하여 대한제국 황실의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었다. 정부는 일본군국주의 총독부가 대한국을 불법 통치한 대한시대 대한광복운동기에 대한국 고조 광무제, 순종 융희제의 묘호(廟號), 제호(帝號)를 황제 추존 시 묘호, 제호 올리는 예로 잘못 올렸으므로 대한국(大韓國)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Gojo Gwangmooje),순종 융희제(純宗 隆熙帝)의 묘호(廟號), 제호(帝號)를 개상(改上)하고 대한국 고조 광무제(1897-1919) 실록과 부록(순종 융희제(1919.1- ) 실록)을 편찬하여 일본군국주의 총독부에 의해 왜곡(1907년 이후 창덕궁 황태자의 대리청정 기간은 고조 광무제의 치세(治世), 1919년 고조 광무제 붕어 후 순종 융희제 2대 황제 등극, 황태제 의친왕의 3대 황제 추존)된 대한시대 역사를 바로세워야 한다.
2014-02-04 1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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