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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하례(正朝 賀禮) 세화(歲畵)
 김민수_
 2014-02-04 17:40:40  |   조회: 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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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하례(正朝 賀禮) 세화(歲畵)











http://blog.naver.com/msk7613














음력 정월 초하룻날 설인 정조(正朝)는 세수(歲首)·원단(元旦)·원일(元日)·신원(新元)이라고도 하며 정월 초하룻날 원일(元日)에 백성들에게 황제를 정점으로 한 대한제국 황실의 위엄을 알리기 위해 조정으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새해를 축하하는 정조 하례(正朝 賀禮)를 해왔으며, 정조 하례가 끝나면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정초 3일 동안은 모든 관청과 시장이 문을 닫는 정조시(停朝市)하였으며, 순조(純祖) 대에 홍석모(洪錫謨)가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정대신(議政大臣)은 모든 관원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가 국왕에게 새해 문안을 드리고, 신년을 하례하는 전문(箋文)과 표리(表裏:무명 또는 흰 명주)를 바친 후 정전(正殿) 앞 전정(殿庭)으로 나가 조하(朝賀)를 올린다. 지방관도 국왕에게 새해 문안을 드리고 새해를 축하하는 전문(箋文)과 방물(方物:토산물)을 바친다고 적혀 있다.





1408년 12월 20일 태종이 정조(正朝)에 대한 중외(中外)의 하전(賀箋)과 원조(元朝)를 하례(賀禮)하는 연상시(延祥詩)를 정지하도록 명하였으니, 국상(國喪) 때문이었다. 오직 제야(除夜)에 연말에 귀신을 쫓는 구나(驅儺)를 행하는 것은 경사(慶事)를 위한 것이 아니고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것이라 하여 전대로 행하게 하였다. 1413년 7월 20일 제주(濟州)에 명하여 동지(冬至)·정조(正朝)·탄일(誕日)에 말 20필을 바치도록 하였다. 1422년 10월 23일 예조에서 세종에게 계하기를, “이제 정조(正朝) 하례(賀禮)하는 표(表)를 올릴 때에, 백관(百官)들은 경자년(庚子年) 예(例)에 따라서 조복(朝服)을 입고, 악부(樂部)는 진설하되 연주하지는 않게 하소서.”하여, 그대로 따랐다.





1774년 12월 28일 왕세손이 영조에게 상소하기를, “신년 하례는 집경당(集慶堂) 편전(便殿)에서 거행하되 종·북·피리 등 모든 악기를 예법에 맞게 갖추었는데도 정조 하례에는 악기를 법도에 맞게 갖추지 못하게 하시어 적은 정성을 펴지 못하게 하시니 답답하고 괴로운 심정이 더욱 심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신년 초하루가 단지 이틀 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호소하는 정성을 조금도 늦출 수가 없기에 짧은 글월을 두서 없이 아뢰어 우러러 존엄을 더럽힙니다. 성상께서는 특별히 윤음을 내리시어 편전에서 하례를 거행하되 헌가(軒架) 거는 것은 전례에 따라 올해의 신년 하례와 같이 하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하였다. 1804년 12월 3일 예조에서 순조에게 아뢰기를, “5례의(五禮儀)를 가져다 상고해 보았더니 정조(正朝)·동지(冬至)의 조하(朝賀) 때에는 면복(冕服)으로 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칭경(稱慶)·진하(陳賀) 때는 원유관(遠游冠)·강사포(絳紗袍)로 한다고 기록되어 있어 지금까지 준행(遵行)하고 있습니다.”하였다.





1900년 1월 31일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Gojo Gwangmooje:1897-1919)가 중화전(中和殿)에 나아가 정조 하례(正朝 賀禮)를 받았다. 황태자가 치사문(致詞文)을 올렸다. 이어 칙서(勅書)를 내려 사령(赦令)을 반포하였다. 예를 마치고 고조 광무제가 이르기를 “명헌태후(明憲太后)는 보령이 칠순(七旬)이 되었으므로 끝없이 경축하여야 하겠지만 짐(朕)이야 무슨 덕이 있기에 갑자기 이 훌륭한 칭호를 받겠는가? 과연 황태자의 효성에 나온 일이기 때문에 부득이 이렇게 한 것이다.”하였다.







세화(歲畵)는 새해를 송축(頌祝)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그린 그림이며 질병이나 재난 등의 불행을 사전에 예방하고 한 해 동안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벽사적(辟邪的)이고 기복적(祈福的)인 성격을 띠고 전개되었다. 세화(歲畵)는 새해 첫날 문짝에 붙이기 때문에 문배(門排) 또는 문화(門畫)라고도 하였으며 조선 초기부터 풍습화되었고 그림의 내용은 신라시대 이래로 역귀(疫鬼)를 쫓는 벽사신인 처용(處容)이 조선 초기에 제작되기도 하였지만 주로 중국의 도교와 관련된 문신들이 많이 그려졌다. 대궐문 양쪽에는 당나라 장군인 진숙보(秦叔寶)와 위지공(尉遲恭)에서 유래된 금(金)·갑(甲) 두 장군상을 한 길이 넘는 크기로 그려서 붙였다. 중문과 곁대문 등에는 붉은 도포에 검은 사모(紗帽)를 쓴 위정공(魏鄭公)과 종규(鍾馗)가 귀신 잡는 형상을 붙이기도 하였다.궁중에서 사용하는 세화(歲畵)는 도화서(圖畫署)에서 제작하여 12월 20일경 진상하였고 이를 우열별로 등급을 나누어 각 전(殿)과 종실, 재상과 근신들에게 내렸다. 도화서에서 매년 12월에 진상하는 세화(歲畵)의 수량은 조선 초기에는 60장 가량이었으나 연종(연산군 묘호 추상)조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여 중종 대에 이르러 신하 1인 당 20장씩을 내렸을 정도로 많은 양이 제작되었다. 임시로 고용된 차비대령(差備待令)의 화원이 각각 30장을 그렸고 도화서 산수화원들은 각기 20장씩을 그렸으며 제작 기간은 1, 2개월에서 길게는 3개월이 걸리기도 하였다.








1408년 11월 2일 태종이 도화원(圖畫院)에 명하여 국상(國喪) 3년 동안에는 세화(歲畫)를 바치지 말라고 하였다. 1456년 1월 2일 세조가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중궁(中宮)이 사(士)·농(農)·공(工)·상(商)의 연중(年中) 행사할 일들을 그린 세화4민도(歲畫四民圖)를 전벽(殿壁)에 붙여 두려 하기에 내가 이를 말렸더니, 중궁이 말하기를, ‘먹는 것이 여기서 나오고 입는 것이 여기에서 나오니, 붙여 두고 보는 것도 또한 옳지 않겠습니까?’ 하여, 드디어 붙였는데, 내 생각에도 그렇다고 여겨진다.”하니, 승지(承旨) 등이 아뢰기를, “농상(農桑)은 왕정(王政)의 근본인데, 국모(國母)께서 유의하시니 실로 생민(生民)의 복(福)입니다.”하였다. 세조가 기뻐하여 술을 내려 주었다.





1483년 11월 19일 성종이 전교하기를, “이제 승지의 말을 들으니, 바로 내 마음과 합한다. 다만 일을 행하는 즈음에 혹시 한 사람이라도 비난함이 있으면 마음이 편치 못하다. 설날에 그림을 그려서 역귀(疫鬼)를 쫓던 세화 축역(歲畫 逐疫)은 비록 음사(陰邪)를 물리치기 위한 일이나, 역시 희롱에 가까운 것인가?”하니, 승지들이 아뢰기를,“세화 축역(歲畫 逐疫)은 폐할 수 없습니다.”하였다. 1505년 12월 29일 연종(연산군 묘호 추상)이 전교하기를, “세시(歲時)에 미리 화사(畫師)가 그림을 그려 궐내에 나누어주던 세화(歲畫)는 한갓 종이와 먹만 허비할 뿐이니 이제부터는 그만 두라.”하였다.





1510년 9월 29일 정언 민수천(閔壽千)이 중종에게 아뢰기를, “세시(歲時)에 미리 화사(畫師)로 하여금 각기 화초·인물·누각(樓閣)을 그리게 하고, 그림을 아는 재상에게 명하여 그 우열(優劣)을 상하(上下)의 등급으로 매기게 하여 부록(付錄)하고, 그 그림은 골라서 내용(內用)으로 하고, 나머지는 재상과 근신들에게 하사하는 세화(歲畫)는 조종조에서는 60장을 넘지 않았습니다. 국가가 비용을 생감(省減)하고 있는 때에 종이와 채색은 말할 것도 없고 한 사람이 20장씩 받아 가지고 석 달을 그린다니, 그들을 공궤(供饋)하는 비용이 이루 다 계산할 수 없습니다. 조종조의 전례에 따라 그림의 장수를 감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하였다.
2014-02-04 17:4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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