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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漢城) 보신루(普信樓)로 문화재 명칭 재지정해야
 김민수_
 2013-12-31 09:50:10  |   조회: 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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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漢城) 보신루(普信樓)로 문화재 명칭 재지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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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7년(고려국 문종 21)에 당시 양주(楊州)로 불리던 한성(漢城)에 남경(南京)을 설치했으며 1308년(충렬왕 34) 한양부(漢陽府)로 고쳤다.1393년 조선국(1393-1897)을 건국한 태조 이단은 하늘의 명을 받고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정당하게 세워졌음을 세상에 널리 강조하고 고려국의 도읍인 개성인 송도에 대한 정치적 불안과 풍수지리설의 영향, 민심의 쇄신을 위해 천도를 결정했다. 1394년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설치하여 새 도읍의 도시 계획을 구상했다. 1394년 11월 26일에 남쪽에 한강이 있어 교통상 조운(漕運)이 편리한 조선국이 2년 간 사용한 지명인 한양으로 천도(遷都)를 시작하였다. 태조(太祖)는 궁궐을 중심으로 좌묘우사(左廟右社), 전조후시(前朝後市) 원칙에 따라서 도읍을 건설했다. 서쪽에 사직(社稷)을 완공하고 궁궐을 세운 뒤 그 동쪽에 태묘(太廟)가 완성됐다. 태조는 고려국의 지명인 한양의 방어를 위하여 백악산(白岳山)·타락산(駝駱山)·목멱산(木覓山)·인왕산(仁王山)을 잇는 약 17km의 한성(漢城)을 쌓기 시작했다. 1395년 6월 6일 한양부(漢陽府)를 고쳐서 한성부(漢城府)로 개칭하고 한성부(漢城府)의 행정구역을 설정하였으며 한성(漢城)은 동·서·남·북·중부의 5부(五部)를 두고 그 밑에 52방(坊)을 두었다. 1396년 4월 19일 한성부로 하여금 5부(五部)의 방명표(坊名標)를 세우게 하였다. 동부 12방(坊)은 연희(燕喜)·숭교(崇敎)·천달(泉達)·창선(彰善)·건덕(建德)·덕성(德成)·서운(瑞雲)·연화(蓮花)·숭신(崇信)·인창(仁昌)·관덕(觀德)·흥성(興盛)이요, 남부 11방은 광통(廣通)·호현(好賢)·명례(明禮)·태평(太平)·훈도(熏陶)·성명(誠明)·낙선(樂善)·정심(貞心)·명철(明哲)·성신(誠身)·예성(禮成)이며, 서부 11방은 영견(永堅)·인달(仁達)·적선(積善)·여경(餘慶)·인지(仁智)·황화(皇華)·취현(聚賢)·양생(養生)·신화(神化)·반석(盤石)·반송(盤松)이고, 북부 10방은 광화(廣化)·양덕(陽德)·가회(嘉會)·안국(安國)·관광(觀光)·진정(鎭定)·순화(順化)·명통(明通)·준수(俊秀)·의통(義通)이며, 중부 8방은 정선(貞善)·경행(慶幸)·관인(寬仁)·수진(壽進)·징청(澄淸)·장통(長通)·서린(瑞麟)·견평(堅平)이었다.같은 해 9월에 한성(漢城)의 성벽과 문루(門樓)가 완성되어 한성(漢城)은 주위에 견고한 성벽이 쌓여진 성곽도시가 됐다.1398년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정종이 즉위하면서 2년동안 도읍을 송도로 환도하였으나 태종(太宗)이 즉위하자 곧 한성(漢城)으로 환도했다.


한성(漢城)은 궁궐,태묘,황단,사직단,선농단,선잠단,풍운뇌우단,산천단,우사단,영성단,선목단,마사단,마보단,마조단,사한단,영희전,궐외각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도성(都城)으로 흥인지문(興仁之門)은 조선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으며 단종 원년(1453)에 고쳐 지었고, 현 흥인지문(興仁之門)은 1869년에 새로 지은 것이며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건물로, 지붕은 다포양식의 우진각 지붕인데, 그 형태가 가늘고 약하며 지나치게 장식한 부분이 많아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고 바깥쪽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반원 모양의 옹성(甕城)을 쌓았는데, 흥인지문(興仁之門)은 한성(漢城)의 4대문 중 유일하게 옹성(甕城)을 갖추고 있다. 돈의문(敦義門)은 1396년(태조 5) 한성(漢城)의 2차 공사가 끝나고 4대문이 완성되던 때 처음 세워졌는데 석축 한 가운데에 무지개문을 크게 내고 축대 위에는 단층 우진각지붕집의 문루(門樓)를 세우고 둘레에 낮은 담을 설치했다. 돈의문(敦義門)은 1413년(태종 13) 폐쇄되고 그 북쪽에 서전문(西箭門)을 새로 지어 출입케 하였다가, 1422년(세종 4) 다시 서전문을 헐고 돈의문(敦義門)을 수리하였다. 그 뒤 돈의문(敦義門)은 보수하여 1711년(숙종 37)에 다시 지었으나, 1915년 일본군국주의 총독부가 철거하였다.


숭례문(崇禮門)은 1395년(태조 3)에 축조하기 시작하여 1398년(태조 6)에 완공되었고, 1447년(세종 29)에 개축하였으며 1479년(성종 10)에도 대규모의 보수공사가 있었다. 숭례문(崇禮門)은 중앙부에 홍예문(虹霓門) 을 낸 거대한 석축 기단인 월단 위에 섰으며, 문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 중층(重層)의 다포(多包)양식의 우진각지붕 건물이다. 석축 윗면에는 벽돌로 된 여장(女墻)을 돌려 동·서 양쪽에 협문(夾門)을 열었고, 지붕은 위·아래층이 모두 겹처마로 사래 끝에는 토수(吐首)를 달고 추녀마루에는 잡상(雜像)과 용두(龍頭), 그리고 용마루 양가에는 독수리머리 취두를 올렸다. 한성(漢城) 북대문인 홍지문(弘智門)은 창의문(彰義門) 밖 북한산(北漢山)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사천계곡(沙川溪谷)에 있고 조선 숙종 45년(1719)에 한성(漢城)을 방어하기 위해 세웠으며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 부른다. 홍지문은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이며 우진각지붕 건물이며 아치로 된 돌문 누각에는 숙종(肅宗) 친필의 홍지문(弘智門) 편액이 있고 아래에는 5간수문이 있다.


혜화문(惠化門)은 태조 4년 한성을 축조할 때에는 문 이름을 홍화문(弘化門)이라 하였으나, 성종 15년(1484)에 창경궁을 건축하고, 그 정문을 홍화문(弘化門)이라 하여 문 이름의 혼동이 일어나므로, 중종 6년(1511) 동소문을 혜화문(惠化門)으로 개칭했다. 동소문은 문종 원년에 경기 · 충청 · 전라도의 당령수군(當領水軍)을 동원하여 한성(漢城)을 수축할 때 약간 수리하고, 그 이후 동소문은 순조 16년에 중수하고, 1869년에 보수하였다. 1928년 문루가 크게 퇴락하였으므로 문루를 헐어 버리고 홍예만 남았었는데 1994년 복원했다. 소의문(昭義門)은 돈의문과 숭례문 사이 서소문동에 위치하던 서남간문(西南間門)으로 창건 당시 문 이름을 소덕문(昭德門)이라 하고,지대가 낮기 때문에 태조 때 토성을 쌓았던 곳이며, 세종 4년에 이 것은 석성으로 개축하고 영조 14년(1738)에 소덕문(昭德門)의 석문 홍예(虹霓)를 개축하고, 1744년에 문루를 건축한 뒤 문 이름을 소의문(昭義門)으로 고쳤다.소덕문(昭德門)은 영조 20년에 재건함과 동시에 문 이름을 소의문으로 고쳐 대한제국에 이르렀으나, 1914년 일본군국주의 총독부가 철거하였다.


광희문(光熙門)은 수구문(水口門)으로 태조 때에 한성(漢城)을 건축하면서 홍예(虹霓)와 문루(門樓)를 건설하는데 지대가 낮기 때문에 태조 때 토성을 쌓았던 곳이며 세종 때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광희문(光熙門)은 숙종 37년(1711) 한성(漢城)을 수축(修築)할 때 새로 홍예(虹霓)를 건축하고 1720년에 문루를 건축하고 광희문(光熙門)이란 편액을 걸었다. 광희문(光熙門)은 언제 무너졌는지 알 수 없으나 석문만 남아 있었는데, 1975년 도성 복원공사로 석문을 수리하고 문루를 재건했다. 창의문(彰義門)은 태종 13년 폐쇄하고 사람의 통행을 금하였으나, 세종 28년 어명을 받아서 출입하는 외에는 닫으라 하고,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中宗反正)이 일어나던 날 혜화문과 창의문을 닫으라는 명령을 내려 창의문은 닫지 아니하고 열어서 사람을 통행시켰고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있던 날 즉 1623년 3월 13일 밤 홍제원(洪濟院)에 집결한 의군(義軍)이 창의문을 부수고 한성(漢城)에 들어와 혁명에 성공한 것을 영조 17년(1741)에 기념하기 위하여 창의문의 성문과 초루(廊樓)를 개건하고, 인조반정 공신인 정사공신(靖社功臣)의 성명을 새겨서 문루에 걸었다.


한성(漢城)의 중앙에 위치한 많은 사람이 구름 같이 모였다 흩어지는 거리라는 뜻의 운종가(雲從街)에 종루(鐘樓)가 있었고 그 이름이 보신루(普信樓)이며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5상(五常)의 하나인 보신루(普信樓)에서 파루(罷漏:새벽 4시에 33번)와 인정(人定:밤 10시에 28번)에 종을 울려 한성(漢城)의 출입시각을 알려주었다. 보신루 동종(普信樓 銅鍾)은 1985년까지 보신루(普信樓)에서 제야(除夜)의 종을 칠 때 사용되었으며 조선 세조 14년(1468) 주조(鑄造)한 보신루 동종(普信樓 銅鍾)은 명문(銘文)이 남아있어 주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중요문화재이므로 원각사(圓覺寺),흥천사(興天寺)를 원형 복원할 때까지 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하여 전시,교육홍보하여야 한다. 보신루 동종(普信樓 銅鍾)은 돈의문(敦義門) 안 현 서울시 중구의 정릉(貞陵)에 있었던 신덕왕후의 원찰(願刹) 흥천사(興天寺)에 있었으나 흥천사가 폐사(廢寺)되자 원각사(圓覺寺)로 옮겨졌다.국가의 안녕과 국왕의 평강(平康)을 비는 원찰(願刹)·국찰(國刹)인 원각사는 1467(세조 13)년 4월 초파일 10층석탑의 완공과 함께 낙성되었고 1488년(성종 19)에 화재로 소실되어 원각사지10층석탑(圓覺寺址十層石塔)과 원각사 창건의 내력을 적은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가 남아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보신루(普信樓)에서 파루(罷漏:새벽 4시)와 인정(人定:밤 10시)에 종을 울려 한성(漢城)의 출입 시각을 알린 보신루 동종(普信樓 銅鍾)은 높이 3.18m, 무게 19.66톤의 큰 종으로 전형적인 조선시대 초기의 종 형태를 하고 있으며 음통(音筒)이 없고 2마리 용이 동종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동종(銅鍾)의 몸통에는 3줄의 굵은 띠를, 동종 입구 위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2줄의 띠를 두르고 있고 동종(銅鍾)의 연대를 알 수 있는 긴 문장의 글이 있다.


1396년 12월 7일 태조 이단이 종루(鐘樓)에 거둥하여 새로 주조(鑄造)한 종(鐘)을 보았다. 1398년 4월 15일 종루(鐘樓)에 거둥하여 종을 다는 것을 보았다. 윤5월 10일 경루(更漏)를 종루(鐘樓)에 설치하였다. 1411년 12월 17일 태종이 “궐문 밖에서 뿔피리를 부는 취각(吹角)하면 가까운 자는 먼저 듣고, 먼 자는 미치지 못한다. 이제부터는 종루(鐘樓)에서 취각(吹角)하여서 소리가 한성(漢城) 4대문(四大門)에 다달아서 듣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없게 하라.” 명령하였다.1421년 5월 5일 상왕 태종이 종루(鍾樓)에 나아가 각(角)을 불게 하니, 군사들이 즉시 달려와서 영(令)대로 진(陳)을 쳤다. 세종이 창덕궁에서 각(角)으로써 마주 응하게 하였다. 상왕이 판병조사(判兵曹事) 이원(李原)과 병조 참의 윤회(尹淮)에게 명하여 창덕궁에 가서 세종을 맞아 오도록 하였다. 세종이 이에 창덕궁에 입직(入直)한 군사를 거느리고, 검은 옷을 입고, 오대(烏帶)를 띠고 우군(右軍)의 뒤로 나아가니, 상왕이 미리 병조 참판 이명덕에 명하여 아패(牙牌)를 가지고 군문(軍門)에 나가서 영접하여 들어오도록 하였다. 세종이 즉시 말에서 내려 명을 받고, 도로 말에 올라 군문(軍門)에 들어가서 상왕과 함께 종루(鐘樓)에서 석전(石戰)을 보았다.1437년 6월 28일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국초(國初)에는 사방으로 통하는 거리에 종루(鍾樓)를 두고 의금부의 누기(漏器)를 맡은 사람으로 하여금 시각을 맞추어 밤과 새벽으로 종을 쳐서, 만백성의 집에서 밤에 자고 새벽에 일어나는 시기를 조절하게 하였으나, 그 누기가 맞지 아니하고, 또 맡은 사람의 착오로 인하여 공사간(公私間)의 출입할 때에 이르고 늦은 실수가 매우 많으므로 심히 불편하오니, 원컨대 병조 장문(兵曹 墻門)과 월차소 행랑(月差所 行廊)과 수진방(壽進坊) 동구(洞口)의 병문(屛門)에 집을 짓고 모두 금고(金鼓)를 설치하여 궁중의 자격루(自擊漏) 소리를 듣고 이 것을 전하여 종을 쳐서 의금부까지 이르게 하여 영구히 항식으로 삼게 하옵소서.”하니 세종이 그대로 따랐다.


1458년 2월 11일 새로 주조한 대종(大鐘)이 이룩되어 세조가 대종(大鐘)을 종루(鐘樓) 아래에 달았다. 1502년 11월 7일 사헌부가 아뢰기를, “근일에 종루에 방(榜)을 붙인 일은 지극히 경박한 풍습인데, 이것을 신 등이 조사하여 바루지 못했으니, 사건(事件)에서 혐의(嫌疑)가 풀릴 때까지 벼슬길에 나가지 않는 피혐(避嫌)하기를 청합니다.”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1536년 4월 9일 보루각 도제조(報漏閣 都提調) 김안로(金安老)가 중종에게 “종루(鐘樓)에 종을 달아 놓은 것은 이를 쳐서 인정(人定:밤 10시에 28번)과 파루(罷漏:새벽 4시에 33번)를 원근의 사람들에게 알려 행동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밤 10시 인정(人定)에 28회 종을 치는 것은 28수(二十八宿)의 별자리에 밤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며 새벽 4시 파루(罷漏)에 33회 종을 치는 것은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다스리는 33천(三十三天)에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종루의 종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흥인문(興仁門)과 숭례문(崇禮門)의 종각(鐘閣)에 각각 종 하나씩을 달아 친다면 종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정릉사(貞陵寺)·원각사(圓覺寺)의 종 두 개를 하나는 흥인문에 달고 하나는 숭례문에 달아서 경복궁(景福宮) 보루각(報漏閣)에서부터 종소리를 전달하여 숭례문의 종각(鐘閣)에 이르게 하고 창경궁(昌慶宮)에 새로 설치한 보루(報漏)로부터 종소리를 전달하여 흥인문의 종각(鐘閣)에 이르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아뢰었다.1554년 10월 30일 명종이 인왕산(仁王山) 아래 서울 종로구 옥류동,인왕동,청풍계,백운동에 있었던 자수궁(慈壽宮)에 종루(鐘樓)와 나한전(羅漢殿)을 지었다. 1619년 4월 25일 광종(광해군 묘호 추상)이 전교하기를, “종루(鐘樓)를 옛 터에 지을 것이니 병조의 당상과 낭청의 각 1명이 중사와 함께 서궁(西宮) 인경궁(仁慶宮), 피우처(避寓處) 경희궁(慶熙宮) 터를 잡은 풍수학(風水學)을 아는 승려인 성지(性智)에게 가서 상세히 문의하라.”하였다. 1773년 12월 10일 영조가 선전관(宣傳官)에게 명하여 종루(鍾樓)의 거지를 데려다가 선혜청(宣惠廳)에 넘겨주어 죽(粥)을 먹이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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