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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史庫) 실록(實錄)은 궁내부 비서감 종부사 규장각 계승한 고궁박물관이 관리해야
 김민수_
 2013-11-23 20:48:59  |   조회: 2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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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史庫) 실록(實錄)은 궁내부 비서감 종부사 규장각 계승한 고궁박물관이 관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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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3년 8월 26일 춘추관(春秋館)에서 아뢰기를, “전주(全州)의 새로 만든 사고(史庫)에 전후(前後) 실록(實錄)을 지금 모두 옮겨 놓도록 하소서. 무릇 지방의 외사고(外史庫)는 늘 3년마다 한 번씩 바람을 쐬고 볕에 말리는 포쇄(曝曬)함이 상례입니다. 매년 장마철에 비가 샐까 염려되니, 사궤(史匱)는 열고 닫을 수가 없는 것이지만 비가 새는 곳은 그 도(道)의 감사(監司)로 하여금 매년 장마가 끝난 뒤 살피어 계문하도록 하소서.”하니 성종이 그대로 따랐다. 1474년 8월 13일 춘추관(春秋館)에서 아뢰기를, “금년은 외사고(外史庫)의 포쇄(曝曬)에 당하였으니 기사관(記事官) 강거효(姜居孝)를 성주(星州)에, 안팽명(安彭命)을 충주에, 표연말(表沿沫)을 전주에 파견하게 하소서.”하니, 성종이 승정원(承政院)에 묻기를, “한림(翰林)만 파견할 수 있고 5, 6품 사관(史官)은 파견할 수 없는가?”하니, 승지(承旨)들이 아뢰기를, “구례(舊例)에는 한림을 파견하였으나 춘추관(春秋館)에 벼슬을 띤 자는 비록 한림이 아니더라도 파견할 수 있습니다.”하니, 성종이 명하여 수찬(修撰) 이명숭(李命崇)을 성주에, 교리(校理) 최한정(崔漢禎)을 충주에, 응교(應敎) 이맹현(李孟賢)을 전주에 파견하게 하였다.1643년 5월 22일 이조 판서 이경증(李景曾)이 아뢰기를, “선조(先朝)의 실록을 개수하는 일은 계속 지연시킬 수 없습니다. 만약 원로 대신과 두세 명의 사관을 잃어버린다면 끝내 개수할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검열 심세정(沈世鼎)이 이 번에 적상산(赤裳山) 사고에 포쇄(曝晒)하기 위해 가는 걸음이 있으니 대제학 이식(李植)으로 하여금 함께 내려가 살펴보고 와서 사국(史局)을 설치하여 찬수하게 하소서.”하니, 인조가 따랐다. 1728년 10월 29일 기사관(記事官) 이종백(李宗白)이 영조에게 아뢰기를, “신이 오대산(五臺山) 사고의 포쇄(曝曬) 때에 보니 문종실록(文宗實錄)의 신미년인 1451(문종 원)년 10월 이후 임신년 2월 이전이 빠져 있었으므로 감히 아룁니다마는, 인쇄한 종이가 얇고 나쁘며 또 주필(朱筆)한 흔적이 있었으니, 찬수(纂修)할 때의 중초(中草)일 듯합니다.”하였다.









1869년 2월 5일 별겸춘추(別兼春秋) 조속하(趙肅夏)가 아뢰기를, “네 곳의 외사고(外史庫)에 있는 열성조(列聖朝)들의 실록(實錄)을 포쇄(曝曬)해야 하는데 올해가 해당 연도입니다. 모두 함께 택일하여 거행하소서.”하니, 윤허하였다. 1871년 8월 5일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사고(史庫)를 포쇄(曝曬)하는 일은 지난 번에 이미 택일(擇日)하여 계하(啓下) 받았습니다. 선원각(璿源閣)의 포쇄도 이번에 겸하여 행하는 것이 또한 사체(事體)에 합당합니다. 별겸(別兼) 중에서 종친부 정(宗親府 正)을 가설(加設)하여 차하(差下)하여 4곳으로 나누어 보내되, 무주(茂州)와 봉화(奉化)는 이들로 하여금 겸하여 나아가게 하고, 강릉(江陵)은 북평사(北評事)가 내려갈 때 거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비록 승품(陞品)해 주지 않았더라도 구애받지 말고 겸하여 차임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백성들과 고을에서 주전(廚傳)의 폐단을 입게 되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친부 당상(堂上)이 나아가는 것은 지금 우선 그만두어야 할 것입니다. 선원각의 포쇄는 10년에 한번씩 하도록 정해져 있으니, 사고의 포쇄도 이에 따라 정식을 만들어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윤허하였다. 1897년 7월 15일 의정부(議政府)에서 ‘참정(參政) 남정철(南廷哲)이 아뢴 강화부(江華府), 양주(楊州), 강릉(江陵), 봉화(奉化), 무주군(茂朱郡)의 사고(史庫)를 오늘부터 의정부에서 담당하여 지키는 일에 대해 토의를 거쳐 상주합니다.’라고 아뢰었다. 고조 광무제가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재가(裁可)한다. 청의대로 시행하되 궁내부(宮內府)로 하여금 전담하도록 하라.”하였다.1900년 7월 17일 궁내부 대신 서리 협판(宮內府 大臣 署理 協辦) 윤정구(尹定求)가 아뢰기를, “방금 강화부(江華府) 정족산성사고(鼎足山城史庫)에 봉안한 실록(實錄)을 햇볕에 말린 비서원 낭(秘書院 郎) 이병소(李秉韶)의 서주(書奏)를 보니, 인조조(仁祖朝) 정축년(1637)의 실록 2책(冊)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실록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런데 이와 같이 잃어버렸으니 놀랍고도 황공한 마음 금할 수가 없습니다. 등서(謄書)하여 채워 봉안하는 일을 조금도 늦춰서는 안 되니,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리고 잃어버린 연도(年度)를 지금 밝혀낼 수는 없지만 연전(年前)에 햇볕에 말릴 때의 비서원 낭이었던 이우만(李愚萬)과 전 강화 부윤(江華府尹) 이해창(李海昌)으로 말하더라도 애초에 이 사실에 대한 문건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 형지안(形止案)을 규례대로 만들어 올렸으니, 사체로 헤아려 볼 때 경솔하기 그지없습니다. 또 연전에 실록을 조사할 때에 내려간 겸장례(兼掌禮) 김태제(金台濟)와 비서원 낭 김덕한(金德漢)으로 말하면 심상하게 처리해서는 안 되니, 모두 법부(法部)로 하여금 조사하여 징계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였다.











 고조 광무제가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아뢴 대로 하라. 실록(實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런데 어느 해에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있으니 어찌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지금 실록을 햇볕에 말리러 간 관리들은 장차 무엇 하러 갔는가? 애초에 권질(卷帙)을 점검하지도 않았으니 직무를 수행하지 못한 것이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 놀랍고도 통탄스러워 차라리 말하고 싶지도 않다. 등서하여 채워 봉안하는 일을 조금도 늦출 수 없으니 시급히 집행하게 하라. 사고의 참봉(參奉)과 승도(僧徒)로 말하더라도 어찌 감히 모른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계속 나간다면 각처(各處)의 사고에 책이 하나도 남지 못하고 말 것이니, 관련자마다 응당 신문해야 할 것이다. 지방관으로 하여금 엄격히 조사하여 찾아내도록 훈령(訓令)을 내려 신칙하게 하라.”하였다. 8월 26일 궁내부 대신 서리 협판(宮內府 大臣 署理 協辦) 윤정구(尹定求)가 아뢰기를, “강화부(江華府) 정족산성(鼎足山城) 사고(史庫)에 보관되어 있는 인조실록(仁祖實錄) 2책(冊)을 등서(謄書)하여 보충하는 절차를 속히 시행할 것을 명하였으나 끌어댈 만한 전례가 없습니다. 강릉(江陵), 봉화(奉化), 무주(茂朱) 세 곳에 보관되어 있는 실록 중에서 편리한 대로 등서하여 보충하는 것이 사의(事宜)에 맞을 듯하나, 아래에서 감히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겠습니까?”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겸장례(兼掌禮), 비서원 랑(祕書院 郞)을 각각 한 사람씩 강릉 사고에 보내어 거행하게 하라.”하였다. 9월 30일 이우만(李愚萬)과 이해창(李海昌)을 유형(流刑) 3년에 처하고, 김태제(金台濟)와 김덕한(金德漢)을 유형 1년에 처하여 모두 고군산(古羣山)에 귀양 보내라고 명하였다. 강화도(江華島) 정족산성(鼎足山城) 사고(史庫)의 실록(實錄) 2책을 잃어버렸는데 이우만은 비서 랑(祕書 郞)으로, 이해창은 강화 부윤(江華府尹)으로서 무술년(1898) 4월에 함께 포쇄(曝曬)하였으며, 김태제는 겸장례(兼掌禮)로서, 김덕한은 비서 랑으로서 기해년(1899) 12월에 함께 가서 조사하였는데 모두 잃어버린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아무 일 없는 것으로 복명하였다. 법부(法部)에서 칙령(勅令)을 받들어 ‘주사불이실률(奏事不以實律)’로 조율하여 처결할 것을 상주(上奏)하여 이런 명이 있었다.









10월 24일 궁내부 대신 임시서리(宮內府大臣 臨時署理) 민종묵(閔鍾默)이 아뢰기를, “지난 번에 강화부(江華府) 정족산성(鼎足山城) 사고(史庫)에 보관된 실록(實錄)을 포쇄(曝曬)한 비서원 낭(秘書院 朗) 이병소(李秉韶)가 서주(書奏)할 때에 인조조(仁祖朝)의 정축년(1637)의 실록 2책이 없다고 한 것과 관련하여 전후로 포쇄하고 조사하는 일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비서원 낭 이우만(李愚萬), 전 강화 부윤(江華府尹) 이해창(李海昌), 겸장례(兼掌禮) 김태제(金台濟), 비서원 낭 김덕한(金德漢)을 모두 법부(法部)로 하여금 조사하여 유배시키도록 한 일까지 있었습니다. 이번에 실록을 조사한 비서원 낭 최병철(崔炳哲)이 복명할 때 아뢴 것을 들으니 전에 잃어버린 인조조 정축년의 실록 2책이 39번째 궤 안에 있으므로 지금 이미 찾아다가 40번째 궤 안에 도로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포쇄는 얼마나 신중히 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전에 포쇄한 비서원 낭 이병소는 애초에 자세히 점검하지도 않고 경솔하게 입주(入奏)하여 그 동안 일을 번거롭게 하였으니 사체로 헤아려 볼 때 참으로 놀랍습니다. 전혀 다르게 아뢴 잘못을 피하기 어려운 만큼 심상하게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법부로 하여금 사핵하여 징계하게 해야 합니다.유배한 이우만 등 4인은 죄가 없다는 것이 한결같이 밝혀졌으므로 이미 시행한 형률에 대해서는 참작하여 용서해주는 은전이 있어야 하겠으니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리고 실록 2책은 지금 다행히 도로 봉안하였으니, 등서(謄書)하여 채워 봉안하는 일은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아뢴 대로 하되 유배한 이우만 등은 이미 죄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모두 용서하여 방송(放送)하라.”하였다.1906년 4월 17일 궁내부 대신(宮內府大臣) 이재극(李載克)이 아뢰기를, “강화(江華)의 정족산성(鼎足山城), 강릉(江陵)의 오대산(五臺山), 무주(茂朱)의 적상산성(赤裳山城), 봉화(奉化)의 태백산(太白山) 등 외사고(外史庫)에 있는 열성조(列聖朝)의 실록(實錄)을 포쇄(曝曬)하는 절차대로 따라 행해야 할 것입니다. 사고를 열 길일을 택해 거행해야 하겠는데 현임(現任) 비서감(祕書監)의 낭관(郎官)은 함부로 자리를 뜨기 곤란하니 이 일을 해본 사람들 중에서 따로 2원(員)을 선발하여 그가 가서 추이(推移)하여 포쇄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고조 광무제가 윤허하였다.






일본군국주의는 청일전쟁을 승리하였지만 러시아·독일·프랑스가 일본이 얻은 이권을 내놓게 한 3국간섭으로 조선국에서의 지위도 흔들렸다. 이토 히로부미 일본 총리의 명령을 받은 주한 일본 공사 미우라가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일본군을 동원하여 1895년 8월 20일 건청궁(乾淸宮) 곤녕합(坤寧閤)으로 침입하였다. 미야모토 다케타로가 지휘한 20여 명의 일본군은 친일 훈련대 대대장,친일 상궁의 협조를 받아 명성황후의 코와 두 귀를 베어내고 살해하여 시신을 녹원(鹿苑)으로 옮겨 불태웠다. 이는 을미독립운동의 계기가 되었고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러시아공사관으로 이어(移御)하였다.1904년 2월 갑진늑약(甲辰勒約:한일의정서)을 불법 늑결(勒結)하고 한반도(韓半島:Korean Peninsula),간도(間島)에서 러일전쟁을 도발하여 승리한 일본군국주의는 대한제국(1897-1919)의 국방 및 재정의 실권 장악, 외교의 감독과 조약 체결권의 제약을 통한 대한제국(Daehan Empire)에 대한 군국주의 침략을 노골화했고 1905년 7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8월 영일동맹(英日同盟)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9월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대한국(大韓國)의 독점지배에 대한 승인을 얻어 대한국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1897-1919)에게 을사늑약(乙巳勒約) 불법 늑결(勒結)을 강요했다. 일본 군국주의는 을사늑약(乙巳勒約)의 불법 늑결(勒結)을 위해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에게 협박을 거듭했으나 불응하였고 1905년 11월 18일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가 불참한 회의(會議)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하자 이토 히로부미 일본 군국주의 통감은 을사5적(乙巳五賊)만으로 회의를 다시 열고 을사늑약(乙巳勒約)을 불법 늑결(勒結)하였고 1906년 설치된 일본 군국주의 통감부(統監府: 1906-1910년 총독부 전신)는 대한국 황실 궁내부(宮內府)가 관리한 사본,판본,활자본인 전적(典籍),사경·어필·명가필적·고필·묵적·편액·현판·주련인 서적(書籍),고문서(古文書)를 일본 군국주의 총독부,경성제국대학으로 불법 이관하고 일본으로 불법 반출하여 대한국(大韓國) 황실 궁내부(宮內府)가 소유,관리하던 국유문화재(國有文化財)인 황실문화재(皇室文化財)를 국내의 교육기관,연구기관,문화기관과 외국에서 불법 소장중이다.





문화재청은 경복궁(景福宮) 궐외각사(闕外閣司)인 종친부(宗親府) 경근당(敬近堂) 이승당(貳丞堂) 옥첩당(玉牒堂) 문화재보호구역을 지정하고 일본군국주의 통감부가 불법 매각한 국유문화재인 경복궁(景福宮) 건춘문(建春門) 앞에 있는 대한제국 황실 가례 거행하는 별궁인 안동궁(安洞宮),관직 및 법령 서경, 간쟁하는 사간원(司諫院),어진(御眞)·어제(御製)·어필(御筆)·인장(印章)·어화(御畫)·고명(顧命)·유고(遺誥)·밀교(密敎)와 선보(璿譜)·세보(世譜)·보감(寶鑑)·장지(狀誌)를 봉안하는 규장각(奎章閣),도교의 초제를 주관하는 소격서(昭格署),국무(國巫)가 왕실의 복을 빌고 재앙을 물리치는 기은(祈恩)을 관장한 성수청(星宿廳), 도교의 태청(太淸), 상청(上淸), 옥청(玉淸) 3위(位)를 모신 삼청전(三淸殿), 공신(功臣)의 화상(畫像)과 동원비기(東園秘器)를 보관하던 장생전(長生殿),녹찬(錄撰)과 종실(宗室) 사무와 왕실 족보를 연구,어첩(御牒) 수정(修正)하는 종부시(宗簿寺),국왕의 계보,의복 관리, 어진 봉안한 종친부(宗親府),궁중의 정원·화초·과실 관리하는 장원서(掌苑署),총포(銃砲) 제작을 관장한 화기도감(火器都監), 기기국(機器局)의 무기고인 번사창(飜莎廠) 터는 문화부 회계로부터 무상으로 국유재산의 관리권을 이관받는 관리환을 하여야 하며 종친부(宗親府) 경근당(敬近堂) 이승당(貳丞堂) 옥첩당(玉牒堂) 앞 관직 및 법령 서경, 간쟁하는 사간원(司諫院),어진(御眞)·어제(御製)·어필(御筆)·인장(印章)·어화(御畫)·고명(顧命)·유고(遺誥)·밀교(密敎)와 선보(璿譜)·세보(世譜)·보감(寶鑑)·장지(狀誌)를 봉안하는 규장각(奎章閣),공신(功臣)의 화상(畫像)과 동원비기(東園秘器)를 보관하던 장생전(長生殿),녹찬(錄撰)과 종실(宗室) 사무와 왕실 족보를 연구,어첩(御牒) 수정(修正)하는 종부시(宗簿寺) 터 앞에 궁내부 종부사 규장각 비서감 내장원을 계승한 국립고궁박물관 분관 대한제국역사박물관(Imperial Museum)을 개관하고 사고(史庫) 실록(實錄)을 비롯한 사본,판본,활자본인 전적(典籍),사경·어필·명가필적·고필·묵적·편액·현판·주련인 서적(書籍),고문서(古文書) 등 황실문화재(皇室文化財)를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국가 귀속하여 전시,교육홍보하여야 한다.






대한제국(Daehan Empire) 황실 미술공예품은 1909년 11월 1일 일본 군국주의 통감부(統監府: 1906-1910년 총독부 전신)가 창경궁(昌慶宮)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을 개관하여 일반에 공개하였고 일본 군국주의 총독부에 의해 대한국 문화재 조사 수집 또는 강제 기탁 불교문화재, 도굴한 장물과 함께 총독부박물관으로 불법 이관되어 불법 반출 또는 중앙박물관이 임시 소장중이므로 문화부는 불교문화재는 불교법인으로 이관하고 대한제국 제실박물관을 계승하는 국립고궁박물관은 대한제국역사박물관(Imperial Museum) 개관,경복궁(景福宮) 궐외각사(闕外閣司)인 종친부(宗親府) 경근당(敬近堂) 이승당(貳丞堂) 옥첩당(玉牒堂) 앞 국유문화재(국가 귀속)인 규장각(奎章閣) 사간원(司諫院) 종부시 장생전 성수청 안국동별궁 터 앞에 고궁박물관 분관 대한제국역사박물관(Imperial Museum)을 개관하고 사본,판본,활자본인 전적(典籍),사경·어필·명가필적·고필·묵적·편액·현판·주련인 서적(書籍),고문서(古文書),미술공예품인 황실문화재(皇室文化財)를 이관,국가귀속하여 전시,교육홍보하여야 한다. 대한국(大韓國) 최초로 개관한 창경궁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을 계승하는 국립고궁박물관은 외국으로 불법 반출 후 환수하였거나 불법 이관되어 교육기관·문화기관이 임시 소장중인 COREA KOREA(고례)·태극기(太極旗)·애국가·대한국국제·국새·어보·칙령(勅令)·실록·의궤·일기·등록·법전·어찰·훈민정음· 도자기 ·갑주(甲胄)·무기(武器)·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독도(獨島)·간도(間島)·녹둔도(鹿屯島)·해삼위(海參威) 조선국,대한제국지도 및 도성도,궁궐도·대한국 황실 및 궁궐 유리원판 사진,관면의상(冠冕衣裳) 등 대한 황실의 역사·문화를 대표하는 황실문화재를 이관·국가귀속하여야 하며 대외관계실을 신설하고 통치체제실을 확대개편하여야 한다. 문화재청은 국립고궁박물관을 황실문화재 관리청으로 지정하고 국립고궁박물관은 대한국(大韓國)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COREA KOREA(고례),대한국국제,태극기(太極旗),애국가,국새,어보,칙령,실록,의궤,일기,등록,법전,어찰,훈민정음,도자기,갑주(甲胄),무기(武器),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독도(獨島),간도(間島),북해(北海:백두산-온성-녹둔도),녹둔도(鹿屯島),해삼위(海參威) 조선국,대한제국지도,도성도,궁궐도, 궁궐 및 대한국 황실 유리원판 사진,관면의상(冠冕衣裳),황실의례,관제(官制)를 적극적으로 전시 홍보하여야 하며 역사성·안전성·접근성이 탁월하므로 황실문화재 관리청으로서 이관·국가귀속한 국보급 황실문화재를 안전 관리하고 전문가 및 문화향유층 일반에 공개하여 황실문화의 보급·선양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2013-11-23 20:4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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