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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이후 대한제국 일본(日本) 통감(統監), 총독(總督)이 통치
 김민수_
 2013-08-10 18:22:44  |   조회: 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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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이후 대한제국 일본(日本) 통감(統監), 총독(總督)이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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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2월 1일 일본군국주의는 을사늑약(乙巳勒約) 3조에 의거하여 대한제국 한성에 통감부(統監府)를 설치하였다. 이토 히로부미가 1905년 12월 21일 통감으로 임용되었으나 아직 부임하지 않았다. 이 날 임시 통감 대리 육군 대장(臨時 統監 代理 陸軍 大將)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통감부 개청식을 진행하였다. 2월 2일 일본 공사(日本 公使) 하야시 곤노스께 이하 관원(館員)과 통감부 총무 장관(統監府 總務長官) 쯔루하라 사다커치 이하 직원들을 접견하였다. 3월 9일 고조 광무제가 경운궁 수옥헌(漱玉軒)에 나아가 황태자가 시좌(侍座)한 상태에서 통감(統監) 이토 히로부미를 접견하였다.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3월 2일에 착임(着任)하였다. 이 날 해군 중장(海軍中將) 이노우에 요시토모 등 16인과 함께 폐하를 알현하였다. 4월 18일 수옥헌(漱玉軒)에 나아가 황태자가 시좌(侍座)한 상태에서 통감(統監) 이토 히로부미와 군 사령관(軍司令官) 하세가와 요시미치를 접견하였다. 1907년 7월 24일 정미늑약(丁未勒約)이 늑결되었다.







1910년 8월 15일 일본(日本) 통감(統監)은 완흥군(完興君) 이재면(李載冕)을 특별히 흥왕(興王)으로 봉(封)하고 완흥군부인 이씨(李氏)는 흥왕비(興王妃)에 봉하였다. 8월 17일 일본(日本) 통감(統監)은 흥왕(興王)의 전처인 고(故) 정경부인(貞敬夫人) 홍씨(洪氏)를 흥왕비(興王妃)로 추봉(追封)하였다. 8월 22일 한일합병조약안(韓日倂合條約案)에 대하여 국무대신(國務大臣) 외에 황족(皇族) 대표자 및 문무 원로의 대표자들이 회동(會同)하여 어전회의(御前會議)를 열었다. 일본(日本) 통감(統監)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내각 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을 대한제국 전권위원(全權委員)으로 임명하였다. 8월 28일 일본(日本) 통감(統監)은 흥왕(興王) 이희(李熹)의 책봉식(冊封式)을 행하였다. 8월 29일 일본(日本) 국왕이 조서(詔書)에 “항상 한국(韓國)이 화란(禍亂)의 근원됨을 돌아보아 한국을 일본의 보호 하에 두어서 화의 근원을 두절(杜絶)하고 한국 시정(施政)이 완전하게 하는 데에 충분하지 못하니 이에 영구히 한국을 일본에 병합한다. 한국에 일본(日本) 총독(總督)을 두고 육해군(陸海軍)을 통솔하며 제반 정무(政務)를 모두 관할케 하노라.”하였다. 9월 30일 일본(日本) 국왕이 총독부관제(總督府官制), 총독부 중추원 관제(總督府 中樞院官制), 총독부 취조국 관제(總督府 取調局官制), 총독부 지방관 관제(總督府 地方官官制), 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관제(總督府 臨時土地調査局官制)를 모두 공포하였다.10월 26일 1907년 이후 대리청정하는 황태자(1919년 황제 등극한 순종 융희제)가 뚝섬인 둑도(纛島) 원예모범장(園藝模範場)에 행계(行啓)하여 관람하였다. 황태자비도 함께 왕림하였다고 직원 일동에게 주효료(酒肴料) 50원(圓)을 하사하였다.







1911년 2월 20일 일본군국주의 총독부(總督府)는 황단(皇壇), 사직서(社稷署)의 건물(建物)과 부지(敷地)를 모두 인수하였다. 1911년 3월 3일 일본군국주의 총독부(總督府)는 차관(次官) 고미야 미호마쓰가 가지고 있는 대한(大韓) 국새(國璽) 1과(顆), 황제의 보새(寶璽) 1과, 대원수(大元帥)의 보새 1과, 제고(制誥)의 보새 1과, 칙명(勅命)의 보새 1과, 칙령(勅令)의 보새 1과 등 대한제국 국새(國璽)와 보새(寶璽)를 인수하였다. 3월 22일 대한제국 황실 궁내부 폐지 후 실직자에 대한 특별 위로금 2만 6,947원(圓)을 예비금 중에서 급여하였다. 친임관(親任官) 1인에게 1,150원, 칙임관(勅任官) 17인에게 7,100원, 주임관(奏任官)과 같은 대우를 받는 자 36인에게 5,365원, 판임관(判任官)과 같은 대우를 받는 자 49인에게 3,692원, 고용원 310인에게 9,640원을 급여하였다. 4월 24일 장석주(張錫周)에게 서부(西部) 반송방(盤松坊)에 있는 순화궁(順和宮)의 토지와 가옥을 하사하였다. 이어 순화궁을 북부(北部) 관광방(觀光坊) 간동(諫洞)에 있는 전 호위대 영사(營舍)로 이전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앞서 1907년 11월에 유길준(兪吉濬), 조희연(趙羲淵) 장석주(張錫周)에게 주택과 부속 토지를 특별히 하사하였다. 그런데 장석주가 하사받은 북서(北署) 대동(帶洞)에 있는 범씨(范氏) 가옥은 대한의원(大韓醫院) 부지로 이미 편입되었다. 대한의원은 장석주에게 인도하지 않고 전 궁내부(宮內府) 소관의 선희궁(宣禧宮), 경리원(經理院) 영희전(永禧殿) 세 곳 가운데 대신 급여할 뜻을 탁지부(度支部)에 청원하였으나 해부(該部)가 불허하자 두 번 세 번 요청하였다. 1910년 10월 장석주는 또 구 궁내부 대신과 결탁하여 총독부에 간절히 아뢰어 이러한 명이 나올 수 있었다. 순화궁은 본래 중부에 있는 태화정(太和亭)이었는데 이윤용(李允用)이 궁내부 대신으로 재임할 때 그 집에 머물면서 반송방(盤松坊)의 택지를 순화궁의 자리와 바꿈으로써 반송방으로 옮겨 갔던 것이다.













1911년 4월 26일 일본군국주의 총독부(總督府)가 창경궁(昌慶宮) 안 박물관(博物館), 동물원(動物園), 식물원(植物苑)을 창경원(昌慶苑)으로 통칭하였다. 5월 1일 서향각(書香閣)에 양잠소(養蠶所)를 설치하고, 이 달 10일부터 농상공부 기사(農商工部 技師), 감독(監督), 잠부(蠶婦) 3명이 집무하였는데 성적이 양호하였다. 5월 17일 일본군국주의 총독부(總督府)가 경복궁(景福宮) 전체 면적 19만 8천 624평(坪) 5합(合) 6작(勺)을 인수하였다. 6월 19일 황태자비가 잠실(蠶室)에 나아가 수견식(收繭式)을 행하였다. 의친왕 이강(李堈)의 비(妃)인 의친왕비도 참석하였다. 일본군국주의 총독부(總督府) 취조국(取調局)이 전 규장각(奎章閣) 소관 도서(圖書) 일체를 인수하였다. 1911년 2월부터 6월까지 새로 구입한 서적 3,528책(冊), 또 구 궁내부(宮內府)에서 인수한 공문서와 아울러 서적 12,615책, 무주(茂朱) 적상산 사고(赤裳山史庫)와 선원각(璿源閣)에서 이송해 온 서적 4,066책을 모두 도서관에 소장하였다. 6월 26일 일본군국주의 총독부(總督府)가 경희궁(慶熙宮) 토지와 건물 전부를 인수하였다. 완친왕궁(完親王宮) 제향비(祭享費)와 궁묘(宮墓) 경비(經費) 및 궁묘 용원(傭員) 정원(定員)을 순화궁(順和宮) 경빈묘(慶嬪墓)의 예(例)대로 하도록 명하였다. 1911년 11월 9일 의친왕 이강(李堈)의 사친(私親)인 장 귀인(張 貴人)의 묘소를 남부(南部) 두모포(荳毛浦) 화양정(華陽亭) 근처로 이장(移葬)하는 데 드는 경비가 5,950여 원(圓)이었는데 그 3분의 2는 창덕궁(昌德宮)과 경운궁(慶運宮) 두 궁에서 보조하여 지급하였다. 11월 26일 장 귀인(張 貴人) 면례(緬禮) 때 찬시(贊侍) 이교영(李喬永)을 보내고 경운궁(慶運宮)에서는 찬시(贊侍) 박서양(朴敍陽)을 보내어 참렬(參列)하도록 하였다. 11월 29일 일본군국주의 총독부(總督府)는 중부(中部) 황토현(黃土峴) 기념비전, 북부(北部) 관광방(觀光坊)의 도서과(圖書課)와 부속지, 남부(南部) 둔지방(芚芝坊)의 전생서(典牲署) 기지, 중부 황토현의 기로소(耆老所) 토지 건물 등을 인수하였다. 11월 30일 일본군국주의 총독부(總督府)는 박물관 본관을 창경원의 높은 언덕 위에 새로 세워 낙성하였다. 12월 22일 묘(廟), 전(殿), 궁(宮), 능(陵), 원(園), 단(壇), 묘(墓)에 출직 재관(出直 齋官) 등의 직무에 관한 사항 및 집무 시간을 반시(頒示)하였다.
2013-08-10 18: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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