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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부(宗親府) 종부시(宗簿寺) 규장각(奎章閣)
 김민수_
 2013-08-01 08:54:25  |   조회: 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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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부(宗親府) 종부시(宗簿寺) 규장각(奎章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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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0년 11월 29일 이조에서 아뢰기를, “과거에는 종부시(宗簿寺)가 중앙에 있는 제군부(諸君府)에 예속되어 부중(府中)의 모든 물품을 겸장(兼掌)했었으나, 지금은 본시(本寺)가 따로 하나의 관청이 되어 오로지 규찰(糾察)을 관장하고 있으므로, 본부(本府)에는 소속된 관료가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중앙에 있는 제군부(諸君府)를 종친부(宗親府)라고 명칭을 고치고, 소속 관료를 설치하고 이를 전첨사(典籤司)라 하고, 전첨(典籤) 1인을 정4품으로, 부전첨(副典籤) 1인을 종5품으로 하되, 사무가 간단한 각 관청의 봉급 받는 관리 가운데서 같은 계급으로 겸임하게 하고, 녹사(錄事) 1인은 종8품으로, 부녹사(副錄事) 1인은 종9품으로 하되, 사무가 간단한 공신도감(功臣都監)의 승(丞)과 녹사(錄事) 1인씩을 전임(轉任)시키어 모든 사무를 관장하게 하옵소서.”하니, 세종이 그대로 따랐다.





1431년 6월 23일 이조에서 아뢰기를, “종친부(宗親府) 전첨사(典籤司)는 소속된 바가 없어서 고찰하여 포폄하는 곳이 없으니 이조에 붙여서 종부시(宗簿寺)의 예에 의하여 본시(本寺) 제조와 더불어 등제(等第)를 같이 의논하게 하옵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1433년 7월 8일 이조에서 아뢰기를, “종친부 서제(書題)는 종전의 수효 40에 10인을 더하여 50으로 정하고, 그 거관(去官)은 예전대로 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1454년 6월 10일 의정부(議政府)에서 이조(吏曹)의 정문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종친부(宗親府)의 낭관(郞官)도 포폄(褒貶)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청컨대 부마부(駙馬府)의 예(例)에 의하여 종친 2품 이상과 함께 의논하여 포폄하소서.”하니, 단종이 그대로 따랐다. 1455년 5월 2일 종친부(宗親府)에서 아뢰기를, “종1품관(從一品官)인 좌·우찬성(左右贊成)·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부마(駙馬)와 같은 것은 모두 조예(皂隷)가 2명인데, 오직 종친(宗親)의 종 1품만이 1명뿐이니, 청컨대 한 명을 더하도록 하소서.”하니, 정부(政府)에 의논하도록 명하였다. 정부에서 아뢰기를, “이 법은 육전(六典)에 기재되어 있으니, 마땅히 예전대로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1772년 5월 1일 영조가 종부시(宗簿寺)에 나아갔다가 걸어서 규장각(奎章閣)에 나아가 봉심(奉審)한 후 이어서 보각(譜閣)에 전배(展拜)하였다. 다시 대청(大廳)에 나아가 본시(本寺)의 제조를 인견하여 선생안(先生案)을 읽도록 명하고, 친히 종신(宗臣)들에게 강독(講讀)을 시험한 다음 제조 이하 원역(員役) 등에게 각각 차등 있게 상을 내려 주었다. 손수 시 1구를 쓰고 여러 신하들에게 임금이 지은 글에 화답하여 글을 지어 바치는 갱진(賡進)하도록 명하였다. 옛날 임진년인 1712(숙종 38)년 영조가 잠저(潛邸)에 있었을 때 종부 도제조가 되었었는데, 이제 구갑(舊甲)이 다시 돌아온 것도 또한 드물게 있는 경사라 하여 본시의 제조가 진찬(進饌)하기를 청하니, 영조가 태강(太康)을 깊이 경계하고, 또 대단한 가뭄 때문에 허락하지 않았다. 이날 추모(追慕)로 인하여 왕세손과 함께 본시에 나아간 것이었다. 이어서 육상궁(毓祥宮)에 나아가 승지에게 어제(御製)를 쓰도록 명하였다. 이어서 여(輿)에서 내려 뜰 가운데에서 부복하였는데, 여러 대신들과 유신들이 번갈아 힘껏 간청하니, 밤이 깊어 환궁(還宮)하였다.





1781년 3월 24일 정조가 하교하기를, “규장각(奎章閣)은 한결같이 종부시(宗簿寺)를 모방하였다. 대체로 종부시는 중국의 종정시(宗正寺)와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종정시는 우리 왕조의 종친부(宗親府)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종친부가 있는데도 또 종부시를 두었기 때문에 종정시의 일을 종부시와 종친부에서 나누어 행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규장각(奎章閣)을 설치하기 전에는 종부시가 자못 용도각(龍圖閣)의 제도를 본받아 종부시의 정(正)이 시신(侍臣)의 반열에 참여하였으며, 또 춘추관(春秋館)의 직함을 겸하였다. 그리고 청(廳) 앞에 월대(月臺)가 있는데, 이는 사헌부인 상대(霜臺)와 비견되는 것이어서 계청(啓請)하지 않고도 백성들에게 형벌을 사용하고, 언관(言官)이 아님에도 조정 진신(縉紳)들의 파직을 청할 수 있으며, 국조(國朝)의 도적(圖籍)·전장(典章)을 인쇄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주관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따라서 규장각이 어찌 이를 본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어필(御筆)로 된 규장각의 편액을 받들어 옮긴 뒤로는 사면(事面)이 남다르고 특별한 자별(自別)하여졌으니, 이런 등등의 의도(儀度)를 참작하고 고거(考據)하여 규장각의 제도를 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경들은 상의하여 품처(稟處)하라.”하였다.





1864년 4월 11일 흥인군(興寅君) 이최응(李最應)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종부시(宗簿寺)는 옛날 종정(宗正)의 유제(遺制)로서 1392년에 창설되었는데 처음에는 전중시(殿中寺)라 하였다가 종부시로 개칭되어 종친부(宗親府)와 서로 경위(經緯)가 되었는데, 일을 재량하여 처리하거나 규찰하여 바로잡아야 하는 책임은 사실 종친부보다 종부시가 더 중합니다. 선원(璿源), 수진(脺眞), 어제(御製), 신한(宸翰)을 모두 종부시에 보관하는 일이 열조(列朝)에 계속되다가 내각(內閣)으로 옮겼습니다. 본시(本寺)의 전호(典護)의 중요성과 사체(事體)의 특별함이 그전보다 약간 못해지기는 했으나 어첩(御牒)을 봉안하고 종적(宗籍)을 찬수(纂修)하는 것은 종전이나 마찬가집니다. 예전에는 도제조(都提調) 2원(員)을 두었고 그 뒤에 또 변경하여 단지 제조(提調) 1원을 두었고 시(寺)가 부(府)가 서로 겸하여 처리하던 사무가 드디어 나뉘어져 둘이 되었으니, 이것은 관사를 새로 세울 당시의 본의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또 보계(譜系)를 계속하여 편찬할 때면 중외(中外)의 종파(宗派) 자손들이 수단(修單)한 명단을 보고하는 일을 혹 종친부에서 하거나 혹 종부시에서 하니, 종법(宗法)을 엄정하게 하고 국체(國體)를 존중하는 도리에 있어서 이처럼 구차하고 어렵게 여기는 것은 부당합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이제부터 종부시와 종친부 두 관청을 합해서 하나로 만들되 제조는 감하(減下)하고 종친 당상(堂上)이 관장하게 하며, 정(正)의 자리를 하나를 참봉(參奉)으로 고쳐 종친 후예 중에서 차대(差代)하고, 정서 낭청(正書 郞廳)과 충의(忠義)는 본래 각각 2원이었는데 이제 1원으로 줄여 참봉과 함께 자벽과(自辟窠)로서 처음 벼슬하는 자리로 만들어 오로지 그 직책에 전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보록(譜錄)의 교정은 극히 중대한 일이므로 본시 안에 임시 관청을 설치해 온 것은 예로부터 그러했습니다. 이 것 역시 국성(國姓) 중에 문음무(文蔭武) 2품 이상의 관원을 차임하고 교정 당상(校正 堂上)은 대체로 승문원 제조(承文院 提調)의 규례를 따르면 모두 대단히 편리할 것입니다. 이 것으로 정식을 삼아 옛 제도를 다시 밝힌다면 종친 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 것에도 빛이 나고 관리를 임명하는 규정에도 어그러짐이 없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수렴청정하는 대왕대비인 동조(東朝)께 우러러 여쭈는 앙품(仰稟)하시어 속히 성명(成命)을 내리소서.”하니, 고조 광무제가 비답하기를, “종부시를 없애고 종친부에 합치자는 의견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들어온 지 오래되었다. 이와 같이 한 후라야 장애되거나 구차한 폐단이 없어지고 종친간의 화목해지는 좋은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일이 관제(官制)에 관한 일이니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하라.”하였다.







1865년 2월 20일 고조 광무제가 전교하기를, “내가 잠저(濳邸)에 있을 때 이미 종친부(宗親府)가 황폐하고 무너졌다는 것을 듣고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였다. 국조(國朝)에 융성했던 시절에야 어찌 이러하였겠는가? 본손(本孫)과 지손(支孫) 백대를 내려와 공족(公族)이 득실거렸을 것이다. 번성한 기상을 상상하면 붉은 옷을 입고 푸른 패옥을 찬 사람들이 찬란하게 자리를 메우고 화수(花樹)의 즐거움이 모두 이 종친부에서 있었을 것이니, 어찌 옥우(屋宇)를 수리하지 않고 이 지경이 되도록 놔두겠는가? 내가 즉위한 후로 중건을 하려고 하였으나 겨를이 없었는데, 우리 대원군께서 빨리 수리하여 모두 옛 모습을 회복하였으니 웅장하고 미려한 아름다움이 옛 날에 비해 낫다. 본궁(本宮)에 의대(衣襨)를 봉진(封進)하는 것은 옛 규례를 이미 회복하였으며 선원록(璿源錄)의 편집도 완성되어가니, 이 종친부가 백사(百司)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이로부터 자손들이 번성한다는 내용의 인지(麟趾)와 종사(螽斯)의 시(詩)가 유독 주(周) 나라에서만의 아름다움은 아닐 것이다. 천만년을 국가와 함께 번창할 것이니, 이 것이 내가 기원하는 심정이다. 종친부의 편액은 친히 써서 내리겠다.”하였다.
2013-08-01 08: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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