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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4월 일본군 경운궁(慶運宮) 방화(放火) 중화전(中和殿) 태극전(太極殿) 소실(燒失)
 김민수_
 2013-07-12 15:41:26  |   조회: 3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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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4월 일본군 경운궁(慶運宮) 방화(放火) 중화전(中和殿) 태극전(太極殿) 소실(燒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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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왜국(倭國)이 명국(明國)의 요동(遼東)을 정벌하려 하니 그 길을 빌려 달라고 청했고 조선국(朝鮮國:1393-1897) 14대 국왕 선조가 대의(大義)로 매우 준엄하게 이를 거절하자 왜국(倭國)이 군사를 총동원하여 대대적으로 조선국(朝鮮國)을 침입(侵入)해왔다. 1592년 4월 13일 왜국(倭國)이 조선국(朝鮮國)을 침입(侵入)한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평안도 의주로 나라에 난리(亂離)가 있어 임금이 궁궐 밖으로 피하는 몽진(蒙塵)하였던 조선국 14대 국왕 선조가 조선국 도읍 한성(漢城)으로 환도(還都)한 후 추존 왕 덕종(德宗)의 맏아들이며 9대 국왕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사저를 국왕의 시어소(時御所)로 쓰면서 정릉동(貞陵洞) 행궁行宮)이 되었고 1608년 선조가 승하한 후 조선국(朝鮮國) 15대 국왕 광조(光祖:묘호 추상)가 이 궁(宮)에서 즉위하면서 궁호(宮號)를 경운궁(慶運宮)으로 명명(命名)하였다.1897년 경운궁(慶運宮)으로 이어(移御)한 대한국(大韓國:1897- )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10월 12일에 백악(白嶽:북악산)의 남쪽 황단(皇壇)에서 천제(天帝)에 천제(天祭)를 봉행하고 대한국(大韓國) 1대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에 등극하며 천하에 국호(國號)를 정하여 대한(大韓)이라 하고 1897년을 광무(光武) 원년(元年)을 삼는다고 천명하여 조선시대(1393-1897)에 이어 대한시대(大韓時代:1897년- )가 시작되었다. 1895년 이토 일본 총리의 명령을 받은 일본 군경에 살해된 왕후 민씨(閔氏)를 대한국(大韓國) 명성황후(明成皇后)로 추책(追冊)하고 왕태자(王太子)를 황태자(皇太子)로 책봉(冊封)하였으며 밝은 명을 높이 받들어 황태자(1919년 1월 고조 광무제 붕어(崩御) 후 2대 황제 등극한 순종 융희제)가 황제에게 축하 인사를 올리는 진치사의(進致詞儀),문무백관들이 황제에게 축하를 올리는 하표의(賀表儀)를 비로소 거행하였고 역대의 고사(故事)를 상고하여 특별히 대사령(大赦令)을 행하였다. 일본제국주의 총독부가 대한국을 불법 통치한 대한시대 대한광복운동기에 대한국 고조 광무제,순종 융희제의 묘호(廟號),제호(帝號)를 황제 추존 시 묘호,제호 올리는 예로 잘못 올렸으므로 대한국(大韓國)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순종 융희제(純宗 隆熙帝)의 묘호(廟號),제호(帝號)를 개상(改上)해야 한다.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대한국(大韓國)을 건국한 1897년 원단(圓壇)을 황단(皇壇)으로, 종묘를 태묘(太廟)로, 사직(社稷)의 신위판(神位版)을 태사(太社)와 태직(太稷)으로 격상하여 개칭하였으나 일본 제국주의 통감이 1907년 정미늑약 불법 늑결,대한국 군대를 강제 해산시킨 후 헤이그 특사(特使) 파견을 이유로 대한국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를 부정하며 황태자에게 조선 왕궁 창덕궁에서 대리청정을 명령하고 대한국(大韓國) 황궁(皇宮) 경운궁(慶運宮)의 한 서양식 전각 양관(洋館)의 전호(殿號)를 조선시대에 상왕의 궁에 승하시까지 한시적으로 사용한 일반 궁호 덕수궁으로 명명(命名)하였다. 1905년 11월 18일 일본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침탈하는 을사늑약의 불법 늑결로 1906년 일제의 통감통치가 시작된 후 1907년 일제 통감부에 의해 대한제국 1대 황제 고조 광무제가 황태자(2대 황제 순종 융희제)에게 조선국 왕궁 창덕궁에서 대리청정을 명령하였고 일제 통감부(統監府)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7월 19일 황태자의 대리청정 명령을 대한국 황제 고조 광무제가 불참하는 권정례(權停例)로 행하였으며 강제 퇴위된 고조 광무제는 경운궁(慶運宮)의 서양식 전각 양관(洋館)인 덕수궁(德壽宮)에 임어하였다. 대한제국 고조 광무제의 편전 겸 침전으로 사용된 경운궁(慶運宮)의 서양식 근대건축물인 덕수궁(德壽宮)은 대한제국 황실 궁내부가 1900년 착공하고 1909년 완공해 대한제국 고조 광무제가 덕수궁(德壽宮)으로 사용하였고 덕수궁(德壽宮) 1층은 상궁 처소·주방, 2층은 알현실·귀빈실, 3층은 침실·욕실 등 고조 광무제의 공간이다. 경운궁(慶運宮) 안의 양관(洋館) 덕수궁(德壽宮)은 대한제국 정부의 재정고문 영국인 브라운의 건의에 의하여 이루어졌고 영국인 기사인 하딩이 설계하고 건축 기사 심의석(沈宜錫)이 전체적인 공사를 감독했으며 1904년 이후 영국인 데이비슨이 덕수궁(德壽宮) 공사 감독을 맡았다. 완벽한 좌우 대칭의 덕수궁(德壽宮)은 고전주의 양식을 채택하였으며 이오니아식 기둥이 상부를 떠받치고 있다. 1907년 7월 황태자의 대리청정(代理聽政)은 일본제국주의 통감의 강박에 의한 것이며 대한국 황제 고조 광무제는 대한국 황궁 경운궁(慶運宮)에 1919년 붕어(崩御) 시까지 임어(臨御)하였고 황태자와 친일 내각(작위,은사금)이 조선국 왕궁 창덕궁으로 옮겨 간 것이며 일본 제국주의에 국권을 강탈당한 나라도 대한국이고 1945년 일본(日本)으로부터 국권을 회복한 나라도 대한국(大韓國)이므로 대한국(大韓國) 황궁(皇宮) 경운궁(慶運宮) 궁호(宮號)의 환원은 완전한 대한국의 광복을 위한 역사적 당위이다.

대한국(大韓國) 고조 광무제는 일본의 대한국 침략 전쟁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1904년 1월 23일 국외중립을 선언하였다. 일본 제국주의는 1904년 2월 8일 한반도에서 러일전쟁을 도발하고 대한국 한성(漢城)을 점령하여 황궁 경운궁을 무력을 동원하여 공격한 후 1904년 2월 23일 대한국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군사전략 요충지인 대한국 영토를 일본의 군사기지로 제공하는 갑진늑약(甲辰勒約:한일의정서)을 불법 늑결하였다. 일본은 러일전쟁의 승리를 위해 무력을 동원하여 1905년 2월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의 독도(獨島)를 비롯한 대한국(大韓國)의 군사 요충지를 불법 점령하였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한국을 강제 병탄(倂呑)하기 위하여 11월 9일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를 특사로 파견하여 일본군을 앞세워 을사늑약(乙巳勒約)의 불법 늑결을 대한국 정부에 강요했으며 11월 18일 불법 늑결된 을사늑약(乙巳勒約)에 대한국의 실질적인 주권을 행사하는 통치자가 일본 통감이라고 규정했다. 을사늑약(乙巳勒約)에 의한 여러 사무를 관장한 일본 통감은 일왕에 직속하고 외교는 일본 외무대신을 거쳐 내각 총리대신을, 기타 사무는 내각 총리대신을 거쳐 상주하고 재가를 받게 되었고 일본 통감은 대한국의 일본 관리 및 관청이 시행하는 업무를 감독하고 한국 수비군 사령관에 대하여 일본군(日本軍) 병력 사용을 명령할 수 있었다.1906년(광무 10) 2월 1일 일본제국주의 통감부가 설치되어 초대 통감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취임하여 한국 수비군을 통수하는 원수의 자격을 겸임, 1개 사단 규모 이상의 전시 편제 일본군(日本軍)을 주둔시키고 경찰기구도 강화시켜 나갔다. 일본인 경찰고문이 5명에서 678명으로 급격하게 늘었으며, 경찰 수도 1,851명에 이르게 되었고 헌병대도 강화시켜 경술늑약(庚戌勒約) 불법 늑결, 대한국 불법 병탄(倂呑) 이후 헌병경찰에 의한 무단통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반을 이루었다. 을사늑약(乙巳勒約) 불법 늑결, 일제 통감부(일제 총독부 전신) 설치 이후 대한국 국권 회복을 위한 한민족의 저항이 대한독립운동·계몽운동과 같이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전개되었으며 대한국 고조 광무제의 헤이그 특사 파견, 반일 상소, 자결이 계속되었다.

1905년 일본제국주의가 러일전쟁을 승리한 후 11월 18일 을사늑약(乙巳勒約)을 불법 늑결하고 1906년 2월 설치된 일본제국주의 통감부가 1907년 헤이그 특사(特使) 파견을 이유로 대한국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를 부정하며 일제 통감이 대한국 황태자에게 조선국 왕궁 창덕궁에서 대리청정을 명령하고 경운궁(慶運宮)의 한 서양식 전각 양관(洋館)의 전호(殿號)를 조선시대에 상왕들의 궁에 승하시까지 한시적으로 사용한 일반 궁호인 덕수궁으로 명명(命名)하였으나 1945년 8월 15일 대한국 광복 이후에도 이를 경운궁이 덕수궁으로 격하된 것으로 오인하여 그대로 두고 경운궁(慶運宮) 궁호를 환원하지 않았으므로 문화재청은 대한국(大韓國) 황궁(皇宮) 경운궁(慶運宮) 궁호(宮號)를 환원, 재지정해야 한다.1907년 일제 통감이 대한국 황태자에게 조선국 왕궁 창덕궁에서 대리청정을 명령한 후 반일 정미독립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자 일본제국주의 통감은 대한국(大韓國)을 불법 병탄(倂呑)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대한국 순행권자인 황제가 아닌 황태자에게 지방을 순행(巡幸:일제 통감부의 정치선전 쇼,황족 책봉,조약 체결 비준과 함께 대한국 황제의 고유 권한)하게 하며 황태자의 대리청정(代理聽政: 대리청정기간은 고조 광무제의 치세(治世),일제 통감부의 강박에 의한 것)이 아닌 황태자의 2대 황제(1919.1-) 즉위(고조 광무제가 황태자의 대리청정(代理聽政)을 명한 것을 이토 히로부미 일본 통감이 황제 양위로 조작)로 왜곡,선전하였다. 1623년 16대 국왕 인조가 경운궁(慶運宮)에서 즉위하였으며 1897년 2월 20일 대한국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가 러시아 공사관에서 대한국(大韓國) 황궁(皇宮) 경운궁(慶運宮)으로 이어하면서 대한국 황궁(皇宮)다운 장대한 전각들을 갖추게 되었다.

대한국(大韓國) 황궁(皇宮) 경운궁(慶運宮)은 1900년 궁장(宮墻) 공사가 완성되었고 1901년 경운궁과 경희궁,경운궁과 의정부(議政府)를 연결하는 운교(雲橋)가 가설·개통,1902년 중층의 중화전(中和殿)이 창건되었으나 1904년 일본제국주의가 러일전쟁을 도발하여 2월 8일에 일본 해군은 인천에서 러시아 군함을 격파하고 중국 여순항의 러시아 기지를 기습공격했다. 인천에 상륙한 일본군은 한성(漢城)으로 진주하여 대한제국 내 군사 전략요충지의 수용을 인정하는 갑진늑약(한일의정서) 조인을 강요했다. 한성(漢城)의 대한국(大韓國) 황궁(皇宮) 경운궁(慶運宮)을 공격, 방화(放火)한 후 간도로 북진하였고 4월 14일 일본군의 방화(放火)에 의한 대화재로 대부분의 전각(殿閣)이 소실(燒失)되어 1905년 이후 태극전(太極殿)·석어당(昔御堂)·경효전(景孝殿)·함녕전(咸寧殿)·대한문(일제 통감부 설치 직후인 1906년 음력 4월 대안문 수리공사 시작) 등 전각, 문이 중건되고 서양식 침전과 알현실인 양관(洋館) 덕수궁이 신축되었다. 1906년 4월 25일 중건도감(重建都監) 의궤 당상(儀軌 堂上) 이재극(李載克)이 아뢰기를, “경운궁(慶運宮) 대안문(大安門)의 수리를 음력 4월 12일로 길일(吉日)을 택하여 공사를 시작할 것을 상주(上奏)합니다.”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치되 아뢴 대로 거행하라.”하였다. 1906년 5월 1일 병오년(丙午年) 음력 4월 8일 중건도감(重建都監)에서 대한문 상량문 제술관(大漢門 上樑文 製述官)은 영돈녕사사(領敦寧司事) 이근명(李根命), 서사관(書寫官)은 종1품 윤용구(尹用求), 편액 서사관은 특진관(特進官) 남정철(南廷哲)을 주차(奏差)하였다. 경운궁 대안문(大安門)은 경운궁의 동쪽 문이자 정문이며 ‘크게 편안하다’는 뜻이다. 원래 경운궁의 정문은 다른 조선국 궁궐처럼 남쪽 문인 인화문이었으나 천제(天帝)에 천제(天祭)를 봉행하는 황단(皇壇)을 바라보는 대안문(大安門)이 정문 기능을 하게 되었다. 1904년 4월 14일 일본군의 방화(放火)에 의한 경운궁 대화재 소실(燒失),1905년 11월 을사늑약 불법 늑결 후인 1906년 일제 통감부 설치 후에 대안문을 수리하고 개칭하게 되었는데 개칭 사유는 알 수 없다. 대한문 상량문(大漢門 上樑文)에 “황하가 맑아지는 천재일우의 시운을 맞았으므로 국운이 길이 창대할 것이고, 한성(漢城)이 억만 년 이어갈 터전에 자리하였으니 문 이름으로 특별히 건다고 나와 있다. 한성을 수도로 정하며 새로 태어난 대한제국이 영원히 창대하라는 염원을 담은 말이다. ‘한(漢)’은 ‘하늘’,‘한수(漢水)’는 ‘은하수(銀河水)’를 뜻한다. 대한문 상량문(大漢門 上樑文)에는 대한(大漢)이란 정문을 세우니 고문(皐門: 궁의 바깥문)과 응문(應門: 궁의 정문)의 규모를 다 갖추었도다. 단청을 정성스레 칠하고 소한(霄漢)·운한(雲漢)의 뜻을 취하였으니 덕이 하늘에 합치하도다" 하였다.

대한국(大韓國) 황궁(皇宮) 경운궁(慶運宮)은 경희궁 사이에 어원(御苑) 상림원(上林苑)과 궁장(宮墻), 북쪽에 평장문(平章門)과 포덕문(布德門), 영국 공사관 쪽에 생양문(生陽門), 서북쪽에 영성문(永成門),회극문(會極門), 서쪽에 평성문(平成門),서남쪽에 용강문(用康門), 동쪽에 대안문(大安門), 남쪽에 인화문(仁化門)의 대문이 있으며 조하(朝賀)를 받는 중층의 정전 중화전(中和殿),고조(高祖) 광무제의 침전 함녕전(咸寧殿),고조 광무제가 등극한 태극전(太極殿), 편전 덕홍전(德弘殿), 어진을 봉안하는 선원전(璿源殿),황실 도서관 중명전(重明殿),접견실·연회장 정관헌(靜觀軒),고조 광무제의 접견실 구성헌(九成軒),환벽정(環壁亭),황태자가 대리청정을 시작한 돈덕전(惇德殿), 고조 광무제의 서양식 침전과 알현실인 양관(洋館) 덕수궁(德壽宮:연지(蓮池)),명성황후의 혼전(魂殿) 경효전(景孝殿),태조 고황제의 어진을 봉안한 흥덕전(興德殿),순명황후(純明皇后)의 혼전(魂殿) 의효전(懿孝殿), 주다례(晝茶禮)를 행한 효혜전(孝惠殿),순명황후(純明皇后) 민씨가 붕어한 석어당(昔御堂), 고조 광무제가 외국 사절을 접견한 준명당(浚明堂),어진(御眞)·예진(睿眞)을 봉안한 흠문각(欽文閣), 대한국 황실 사무와 근대적 광무개혁을 추진한 궁내부(宮內府),대한국 최고 군통수기관 원수부(元帥府)가 있다. 문화재청은 대한국(大韓國) 황궁(皇宮) 경운궁(慶運宮)의 궁전 지붕을 황와(黃瓦)로 번와(飜瓦)하고 1938년 일제 총독부가 신축한 일본미술관을 철거하여야 하며 1904년 4월 한성(漢城)에 주둔한 일본군의 방화(放火)에 의한 중화전(中和殿),태극전(太極殿) 소실(燒失) 이전을 기준으로 중층의 중화전(中和殿),태극전(太極殿) 전호(殿號) 환원,창덕궁 이건한 선원전(璿源殿),대안문(大安門) 원 위치 복원 및 금천교 권역 확장, 정문 인화문(仁化門),상림원(上林苑),운교(雲橋)를 원형 복원하고 국립고궁박물관은 러일전쟁, 갑진늑약(甲辰勒約), 을사늑약(乙巳勒約), 일본제국주의 통감부(統監府)를 올바로 설명하여야 한다.
2013-07-12 15: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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