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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5년 이후 조선국,대한제국의 도읍은 한성(漢城)
 김민수_
 2013-06-12 12:05:11  |   조회: 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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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5년 이후 조선국,대한제국의 도읍은 한성(漢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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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7년(고려국 문종 21)에 당시 양주(楊州)로 불리던 경복궁 지역에 남경(南京)을 설치했으며 1308년(충렬왕 34) 남경(南京)을 한양부(漢陽府)로 고쳐 고려국 후기에는 한양(漢陽)으로 불렀다.1393년 2월 15일 조선국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하늘의 명을 받고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정당하게 세워졌음을 세상에 널리 강조하고 고려국의 도읍인 개경에 대한 정치적 불안과 풍수지리설의 영향, 민심의 쇄신을 위해 천도(遷都)를 결정했다. 1393년에 조선국을 건국한 후 도읍지를 한양(漢陽)으로 정하고 1394년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설치하여 새 도읍의 도시 계획을 구상했다. 1394년 11월 26일에 남쪽에 한강이 있어 교통상 조운(漕運)이 편리한 한양으로 천도(遷都)를 하였다. 태조(太祖)는 궁궐을 중심으로 좌묘우사(左廟右社), 전조후시(前朝後市) 원칙에 따라서 도읍을 건설했다. 서쪽에 사직(社稷)을 완공하고 궁궐을 세운 뒤 그 동쪽에 태묘(太廟)가 완성됐다. 태조는 한양(漢陽)의 방어를 위하여 백악산(白岳山)·타락산(駝駱山)·목멱산(木覓山)·인왕산(仁王山)을 잇는 약 17km의 성곽을 쌓기 시작했다.





1395년 6월 6일 한양부(漢陽府)를 고쳐서 한성부(漢城府)로 개칭하여 조선국이 한양(漢陽)으로 부른 것은 2년밖에 안되며 1910년 일제가 개칭할 때까지 조선국,대한국 도읍의 명칭은 한성(漢城)으로 불렀고 한성부(漢城府)의 행정구역을 설정하였으며 한성(漢城)은 동·서·남·북·중부의 5부(五部)를 두고 그 밑에 52방(坊)을 두었다. 1396년 4월 19일 한성부로 하여금 5부(五部)의 방명표(坊名標)를 세우게 하였다. 동부 12방(坊)은 연희(燕喜)·숭교(崇敎)·천달(泉達)·창선(彰善)·건덕(建德)·덕성(德成)·서운(瑞雲)·연화(蓮花)·숭신(崇信)·인창(仁昌)·관덕(觀德)·흥성(興盛)이요, 남부 11방은 광통(廣通)·호현(好賢)·명례(明禮)·태평(太平)·훈도(熏陶)·성명(誠明)·낙선(樂善)·정심(貞心)·명철(明哲)·성신(誠身)·예성(禮成)이며, 서부 11방은 영견(永堅)·인달(仁達)·적선(積善)·여경(餘慶)·인지(仁智)·황화(皇華)·취현(聚賢)·양생(養生)·신화(神化)·반석(盤石)·반송(盤松)이고, 북부 10방은 광화(廣化)·양덕(陽德)·가회(嘉會)·안국(安國)·관광(觀光)·진정(鎭定)·순화(順化)·명통(明通)·준수(俊秀)·의통(義通)이며, 중부 8방은 정선(貞善)·경행(慶幸)·관인(寬仁)·수진(壽進)·징청(澄淸)·장통(長通)·서린(瑞麟)·견평(堅平)이었다.같은 해 9월에 성벽과 문루(門樓)가 완성되어 한성(漢城)은 주위에 견고한 성벽이 쌓여진 성곽도시가 됐다.1398년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정종이 즉위하면서 2년동안 도읍을 개경으로 환도하였으나 태종(太宗)이 즉위하자 곧 한성(漢城)으로 천도(遷都)하였다.





한성(漢城)은 궁궐,태묘,황단,사직단,선농단,선잠단,영희전,궐외각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도성(都城)이며 성문(城門)은 적의 침입을 막고 인마(人馬)를 출입시키는 방어시설물이다. 적의 침입을 방어할 수 있고 인마(人馬)를 출입시킬 수 있는 성문(城門) 기능을 한 한성(漢城) 4대문은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홍지문이다. 흥인지문(興仁之門)은 조선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으며 단종 원년(1453)에 고쳐 지었고, 현 흥인지문(興仁之門)은 1869년에 새로 지은 것이며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건물로, 지붕은 다포양식의 우진각 지붕인데, 그 형태가 가늘고 약하며 지나치게 장식한 부분이 많아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고 바깥쪽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반원 모양의 옹성(甕城)을 쌓았는데, 흥인지문(興仁之門)은 한성(漢城)의 4대문 중 유일하게 옹성(甕城)을 갖추고 있다. 돈의문(敦義門)은 1396년(태조 5) 도성(都城)의 2차 공사가 끝나고 4대문이 완성되던 때 처음 세워졌는데 석축 한 가운데에 무지개문을 크게 내고 축대 위에는 단층 우진각지붕집의 문루(門樓)를 세우고 둘레에 낮은 담을 설치했다. 돈의문(敦義門)은 1413년(태종 13) 폐쇄되고 그 북쪽에 서전문(西箭門)을 새로 지어 출입케 하였다가, 1422년(세종 4) 다시 서전문을 헐고 돈의문(敦義門)을 수리하였다. 그 뒤 돈의문(敦義門)은 보수하여 1711년(숙종 37)에 다시 지었으나, 1915년 일제 총독부가 철거하였다.





숭례문(崇禮門)은 1395년(태조 4)에 축조하기 시작하여 1398년(태조 7)에 완공되었고, 1447년(세종 29)에 개축하였으며 1479년(성종 10)에도 대규모의 보수공사가 있었다. 숭례문(崇禮門)은 중앙부에 홍예문(虹霓門) 을 낸 거대한 석축 기단 위에 섰으며, 문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 중층(重層)의 다포(多包)양식의 우진각지붕 건물이다. 석축 윗면에는 벽돌로 된 여장(女墻)을 돌려 동·서 양쪽에 협문(夾門)을 열었고, 지붕은 위·아래층이 모두 겹처마로 사래 끝에는 토수(吐首)를 달고 추녀마루에는 잡상(雜像)과 용두(龍頭), 그리고 용마루 양가에는 독수리머리를 올렸다. 북방 오랑캐의 침입을 1차로 방어하고 인마(人馬)를 출입시키는 성문(城門)인 홍지문(弘智門)은 적의 침입을 2차로 방어하는 창의문(彰義門) 밖 북한산(北漢山)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사천계곡(沙川溪谷)에 있고 조선 숙종 41년(1715)에 한성(漢城)을 방어하기 위해 세웠으며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 부른다. 홍지문은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이며 우진각지붕 건물이며 아치로 된 돌문 누각에는 숙종(肅宗) 친필의 홍지문(弘智門) 편액이 있고 아래에는 5간수문이 있다.





혜화문(惠化門)은 태조 5년 한성을 축조할 때에는 문 이름을 홍화문(弘化門)이라 하였으나, 성종 15년(1484)에 창경궁을 건축하고, 그 정문을 홍화문(弘化門)이라 하여 문 이름의 혼동이 일어나므로, 중종 6년(1511) 동소문을 혜화문(惠化門)으로 개칭했다. 동소문은 문종 원년에 경기 · 충청 · 전라도의 당령수군(當領水軍)을 동원하여 도성을 수축할 때 약간 수리하고, 그 이후 동소문은 순조 16년에 중수하고, 1869년에 보수하였다. 1928년 문루가 크게 퇴락하였으므로 문루를 헐어 버리고 홍예만 남았었는데 1994년 복원했다. 소의문(昭義門)은 돈의문과 숭례문 사이 서소문동에 위치하던 서남간문(西南間門)으로 시구문(屍口門)이며 창건 당시 문 이름을 소덕문(昭德門)이라 하고,지대가 낮기 때문에 태조 때 토성을 쌓았던 곳이며, 세종 4년에 이 것은 석성으로 개축하고 영조 14년(1738)에 소덕문(昭德門)의 석문 홍예(虹霓)를 개축하고, 1744년에 문루를 건축한 뒤 문 이름을 소의문(昭義門)으로 고쳤다.소덕문(昭德門)은 영조 20년에 재건함과 동시에 문 이름을 소의문으로 고쳐 대한제국에 이르렀으나, 1914년 일제 총독부가 철거하였다.





광희문(光熙門)은 수구문(水口門),시구문(屍口門)으로 태조 때에 한성(漢城)을 건축하면서 홍예(虹霓)와 문루(門樓)를 건축하는데 지대가 낮기 때문에 태조 때 토성을 쌓았던 곳이며 세종 때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광희문(光熙門)은 숙종 37년(1711) 도성을 수축(修築)할 때 새로 홍예(虹霓)를 건축하고 1720년에 문루를 건축하고 광희문(光熙門)이란 편액을 걸었다. 광희문(光熙門)은 언제 무너졌는지 알 수 없으나 석문만 남아 있었는데, 1975년 도성 복원공사로 석문을 수리하고 문루를 재건했다. 창의문(彰義門)은 태종 13년 폐쇄하고 사람의 통행을 금하였으나, 세종 28년 어명을 받아서 출입하는 외에는 닫으라 하고,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中宗反正)이 일어나던 날 혜화문과 창의문을 닫으라는 명령을 내려 창의문은 닫지 아니하고 열어서 사람을 통행시켰고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있던 날 즉 1623년 3월 13일 밤 홍제원(洪濟院)에 집결한 의군(義軍)이 창의문을 부수고 한성(漢城)에 들어와 혁명에 성공한 것을 영조 17년(1741)에 기념하기 위하여 창의문의 성문과 초루(廊樓)를 개건하고, 인조반정 공신인 정사공신(靖社功臣)의 성명을 새겨서 문루에 걸었다.





한성(漢城)의 중앙에 위치한 많은 사람이 구름 같이 모였다 흩어지는 거리라는 뜻의 운종가(雲從街)에 종루(鐘樓)가 있었고 운종가(雲從街)의 종루(鐘樓) 이름이 보신루(普信樓)이다. 한성(漢城) 흥인지문(興仁之門),돈의문(敦義門),숭례문(崇禮門),홍지문(弘智門),보신루(普信樓)의 명칭은 5상(五常)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넣어 지었다. 자격루(自擊漏)가 알리는 시보신호에 따라 보신루(普信樓)에서 파루(罷漏:새벽 4시에 33번)와 인정(人定:밤 10시에 28번)에 종을 울려 도성(都城)의 출입시각을 알려주었다. 밤 10시 인정(人定)에 28회 종을 치는 것은 28팔수(二十八宿)의 별자리에 밤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며 새벽 4시 파루(罷漏)에 33회 종을 치는 것은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다스리는 33천(三十三天)에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것이다. 2경(更) 후부터 5경(更) 전까지는 누구도 출입하지 못하며 순라군(巡邏軍)이 밤에 조족등(照足燈)을 들고 도성 안을 살피며 돌아다니는 야경(夜警)한다. 야간에 통행하는 사람을 체포하였을 경우에는 부근의 경수소(警守所)로 넘겨주어 순청(巡廳)에 가둔 후 이튿날 병조에 보고한다. 속임수를 써서 통행금령을 범하거나 뇌물을 받고 일부러 석방해준 경우에는 군법으로 처결한다. 순관(巡官)이 야간통행 금지시간을 위반한 자를 체포하였을 경우에는 그 인근의 경수소에 구류하였다가 이튿날 소관 기관에서 곤장을 친다.





보신루 동종(普信樓 銅鍾)은 1985년까지 보신루(普信樓)에서 제야(除夜)의 종을 칠 때 사용되었으며 조선국 세조 14년(1468) 주조(鑄造)한 보신루 동종(普信樓 銅鍾)은 명문(銘文)이 남아있어 주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중요문화재이므로 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하여 전시,교육홍보하여야 한다. 보신루 동종(普信樓 銅鍾)은 돈의문(敦義門) 안 현 서울시 중구의 정릉(貞陵) 터 옆에 있었던 신덕왕후의 원찰(願刹) 흥천사(興天寺)에 있었으나 흥천사가 폐사(廢寺)되자 의친왕부인 사동궁과 경시서 사이의 원각사(圓覺寺)로 옮겨졌다.국가의 안녕과 국왕의 평강(平康)을 비는 원찰(願刹)·국찰(國刹)인 원각사는 1467(세조 13)년 4월 초파일 10층석탑의 완공과 함께 낙성되었고 1488년(성종 19)에 화재로 소실되어 원각사지10층석탑(圓覺寺址十層石塔)과 원각사 창건의 내력을 적은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가 남아 있다. 보신루(普信樓)에서 파루(罷漏:새벽 4시)와 인정(人定:밤 10시)에 종을 울려 도성(都城)의 출입 시각을 알린 보신루 동종(普信樓 銅鍾)은 높이 3.18m, 무게 19.66톤의 큰 종으로 전형적인 조선시대 초기의 종 형태를 하고 있으며 음통(音筒)이 없고 2마리 용이 동종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동종(銅鍾)의 몸통에는 3줄의 굵은 띠를, 동종 입구 위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2줄의 띠를 두르고 있고 동종(銅鍾)의 연대를 알 수 있는 긴 문장의 글이 있다.
2013-06-12 12: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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