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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불당(內願佛堂) 내불당(內佛堂) 내원당(內願堂)
 김민수_
 2013-05-18 16:08:49  |   조회: 2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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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불당(內願佛堂) 내불당(內佛堂) 내원당(內願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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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9년 8월 23일 전에 태조께서 속설로서 전하는 석가여래가 세상에 살아 있을 때에 이에서 나온 사리(舍利) 네 개와, 두골(頭骨)과 패엽경(貝葉經)과 가사(袈裟) 등을 흥천사(興天寺) 석탑 속에 두게 하였는데, 세종이 내시 김용기(金龍奇)에게 명하여 밤에 석탑에서 옮겨다가 왕실에서 부처를 공양하며 불도(佛道)를 닦는 내도량(內道場)인 내불당(內佛堂)에 두게 하고, 그 대신 석가여래 두골에서 나온 사리 네 개를 탑 속에 두게 하였다. 8월 30일 세종이 말하기를, “태조께서 석탑 안에 두었던 사리는 일찍이 내불당(內佛堂)으로 옮겨 왔었는데, 내가 그 것을 모두 진상하여 바치려 하오. 만일 모두 바치지 아니하면, 이 것은 하늘을 기망하는 것이 될 것이오.”하였다. 9월 7일 이명덕·원민생·원숙을 보내어서 황엄을 청하여 문소전(文昭殿)의 왕실에서 부처를 공양하며 불도(佛道)를 닦는 내도량(內道場)인 내불당(內佛堂)으로 오게 하여 석가여래의 사리 4개와 조선국에서 고른 사리 5백 50개를 내어보이니, 황엄이 볼 때마다 머리 위로 들어 예배하여 공경함을 극진히 하고, 인해서 부처에게 공양하여 승려에게 시주할 것을 청하고 사리를 받들고 태평관으로 돌아갔다.1420년 8월 11일 직제학(直提學) 성개(成槪)·신장(申檣)·급제(及第) 최흥효(崔興孝)를 명하여 금으로 법화경(法華經)을 내불당(內佛堂)에서 쓰게 하니, 대비의 발원(發願)을 미루어 이룩하여 드리는 것이었다.





1451년 4월 14일 전 5위(五衛)에 속한 종7품의 무관직(武官職)인 부사정(副司正) 정안종(鄭安宗)이 상언(上言)하였다. “신이 근년에 남방에 물러가 산림(山林)에 엎드려 살다가, 이제 한성에 이르러 나라의 운명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던 궁 안의 불당(佛堂)인 내원불당(內願佛堂)을 보니 궁궐과 문소전(文昭殿) 뒤에 자리잡고 있으니, 그 불사(佛舍)를 지은 바가 나라를 위한 계책으로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唐)나라 일행(一行)이 지은 경위령(京緯令)에 이르기를, ‘불교의 사찰과 도교의 사원인 사관(寺觀)을 성 곁이나 성의 앞과 좌우에 세우는 것은 근심이 없으나, 성의 뒤에 세우는 것은 내려온 형세가 맥(脈)을 손상하므로 아주 이롭지 못하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불사(佛舍)가 혈(穴)로 들어오는 정맥(正脈)에 자리잡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神)이 앞에 있고, 불(佛)이 뒤에 있어 용(龍)을 다투고 주(主)를 다투는 것은 역대의 풍수가인 산가(山家)도 또한 금기(禁忌)하던 것인데, 하물며 이는 한 곳에 아울러 자리잡고 있으니 옳다고 하겠습니까? 신은 그것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해와 달이 함께 운행할 수 없고, 추위와 더위가 함께 있을 수 없는 것은 도리가 각각 달라서 형세가 반드시 그렇게 되는 때문인데, 더구나 신도(神道)와 불도(佛道)는 다른데, 한 와혈(窩穴)에 함께 있는 것이 옳겠습니까? 신은 엎드려 바라건대 불사(佛舍)를 옆의 혈로 옮겨서, 각각 그 분수를 편안하게 하여 그 도리를 지키게 하였으면 합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태묘(太廟)는 인륜(人倫)의 대전(大典)이고, 궁궐은 국가의 중기(重器)이며, 노·불(老佛)의 도(道)는 그 유래가 멉니다. 천하의 일에는 반드시 그 요체(要諦)가 있으니, 경중대소(輕重大小)와 완급선후(緩急先後)를 성감(聖鑑)으로 재결(裁決)하소서.”





1454년 1월 3일 집현전 부제학(集賢殿 副提學) 김구(金鉤) 등이 상서(上書)하였다. “신 등이 생각하건대 내불당(內佛堂)이 임금이 승하하신 부모를 생시(生時)와 같이 섬기기 위하여 특별히 지은 태묘(太廟) 외의 별묘(別廟)인 원묘(原廟)를 위압(威壓)하여 아침 저녁으로 종 소리·북 소리·석가여래(釋迦如來)의 공덕(功德)을 찬미하는 범패(梵唄)의 소리가 신위(神位)를 진동하여 신(神)들을 평안히 모시지 못하니, 선조(先祖)를 받드는 도리에 어그러짐이 있습니다. 또 흉칙하고 더러운 물건을 궁궐인 궁금(宮禁) 가까이에 두니 오로지 한 때의 통분(痛憤)일 뿐만 아니라, 후일에 헤아리기 어려운 후회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처음에 불당(佛堂)을 지은 것은 본래 나라의 복(福)과 이익을 구(求)하려는 것이었으나, 창건하여 세운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문종(文宗)께서 왕세자인 저부(儲副)로 계실 때 잇달아 나쁜 종기에 걸려서 거의 치료할 수가 없었으며, 세종(世宗)께서 병환이 위독하여 기도하였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어서, 몇 년 안에 잇달아 국상(國喪)을 당하였습니다. 또 근일에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있어서 개국(開國) 이래로 이와 같은 참상(慘狀)이 있지 않았습니다. 지난 번에 술사(術士)가 음양(陰陽)의 좋지 않게 여기어 피하거나 꺼리는 구기(拘忌)하는 것에 의거하여, 태묘(太廟)와 사직을 침노(侵擄)하여 핍박(逼迫)하는 침핍(侵逼)한다고 말하여 여러 번 개운하지 못하고 번거로운 번독(煩瀆)하여 마지 않았는데,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있은 이래로 스스로 증명이 되었음이 지극하다 하겠습니다. ‘불당(佛堂)을 혁파하지 아니하고는 이 궁궐을 다시 막을 수가 없다.’고 하는데, 한성과 지방에서 이 말을 듣는다면 여러 사람들의 의논이 흉흉(洶洶)하여 위태로워하고 두려워하지 아니함이 없을 것입니다. 관상감(觀象監)에서 일식(日食)·월식(月食)을 관장하는 술자(述者)의 말은 비록 족히 믿을 것이 못되나 ‘태묘와 사직을 침핍한다.’고 말하니, 신자(臣子)로서 이를 듣고 차마 그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만일 그것이 증험이 없다면 참으로 국가의 다행이겠으나, 만약 그것이 헛된 말이 아니라면 어찌 천만세(千萬世) 태묘 사직과 신민(臣民)들의 한(恨)이 되지 아니하겠습니까? 이것으로써 말씀드린다면 불당은 마땅히 혁파하여야 하며, 조정(朝廷)에 있는 신료(臣僚)들도 누군들 ‘옳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 임금의 마음인 신충(宸衷)에서 결단하여 뒷 날의 후회를 끼치지 말도록 하소서.”하니 단종이 명하여 대신(大臣)에게 의논하게 하였다.





1월 9일 좌사간(左司諫) 성삼문(成三問)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생각하건대, 불당(佛堂)을 헐어버리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음양풍수(陰陽風水)는 나라에서 폐지할 수가 없는 것이라면 그 설(說)에는 취(取)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의논하는 자들이 술자(術者)의 말을 눈짓으로 말하고서 뜻을 두지 않으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사람의 자식이 있어 이러한 무격(巫覡)이 근거가 없으면서도 어떤 일이 부모에게 이롭지 못하다고 말하기에 이른다면 효성스런 아들이나 어진 사람이 일찍이 뜻을 굽혀서 이를 위하여 재앙을 물리치고 복(福)을 비는 기양(祈壤)하지 않음이 없는 것은 진실로 마음에 참기 어려운 바가 있어 그 지극함을 쓰지 아니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말한다면 일이 태묘·사직에 관계가 있는데도 이를 위하여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 가(可)하겠습니까? 이것이 헐어버리지 아니할 수 없는 첫째입니다. 이제 승려들이 거주하는 바가 태묘인 청묘(淸廟)를 임압(臨壓)하고 그 소변을 보는 수선(溲旋)하는 곳이 도리어 왕궁(王宮)의 문보다 높으며, 범패(梵唄)의 소리가 아침 저녁으로 어소(御所)를 시끄럽게 하는데, 성상께서 어찌 싫어하지 않으시고 들으시겠습니까? 만약 혹시 싫어하지 않으신다면 후일의 폐단이 깊이 염려스러울 것입니다. 이 것이 헐어버리지 아니할 수 없는 둘째입니다.옛 날 신라(新羅)·고려(高麗)에서도 모두 내불당(內佛堂)이 있어서 후세(後世)에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일이 있기에 이른 것은 처음에 삼가지 못하였기 때문이니, 어찌 금일의 남의 실패한 것을 거울삼아 자신을 경계하는 은감(殷鑑)으로서 마땅히 미리 염려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헐어 버리지 아니할 수 없는 셋째입니다. 전후에 말한 자가 한둘이 아니었으나 전하께서 따르지 않으시고 대신들도 뜻을 두지 않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 뜻을 두어서 빨리 명령을 거두소서.”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1457년 10월 15일 세조가 법석(法席)을 왕실에서 부처를 공양하며 불도(佛道)를 닦는 내도량(內道場)인 내불당(內佛堂)에서 베풀었다. 1459년 4월 8일 불경(佛經)을 소리내지 않고 속으로 읽던 독경(讀經)의 모임인 간경회(看經會)를 내불당(內佛堂)에서 베풀었으니, 부처의 생일(生日)을 위해서였다. 1462년 1월 24일 세조가 표범이 백악산(白岳山)에 있으면 비와 눈이 내린 뒤에는 반드시 그 자취가 있을 것이라 하여,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과 행 상호군(行上護軍) 조득림(趙得琳)에게 명하여 추적(追跡)하게 하였다. 조득림이 아뢰기를, “신이 내불당(內佛堂) 북쪽에 이르니, 개고기가 땅에 버려진 옆에 표범이 있었습니다.”하였다. 1464년 4월 15일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이 병세가 위독하니, 세조가 명하여 내불당(內佛堂)에서 기도(祈禱)드리게 하였다. 1466년 9월 28일 한계희(韓繼禧) 등이 중궁(中宮)의 명령을 받들어 공작명왕(孔雀明王)으로 하여금 재앙을 없애고 병마를 덜고 목숨을 오래 살게 하도록 베푸는 공작기도재(孔雀祈禱齋)를 내불당(內佛堂)에서 베푸는데, 김수온(金守溫)과 강희맹(姜希孟)을 임금의 명을 받들고 태묘나 능소(陵所)에 향을 가지고 가서 분향하는 행향사(行香使)로 삼았다.





1468년 9월 27일 예종이 전교하기를, “불경(佛經)에 기양하는 술법이 없는가? 그 것을 한계희(韓繼禧)에게 물어 보라.” 하니, 도승지 권감(權瑊)이 즉시 한계희와 의논하여 아뢰기를, “청컨대 소격전(昭格殿)에서 별에 제사지내는 초제(醮祭)를 행하고 왕실에서 부처를 공양하며 불도(佛道)를 닦는 내도량(內道場)인 내불당(內佛堂)에 도량(道場)을 열어 신에게 제사하여 재앙을 없애고 행복을 비는 양도(禳禱)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1469년 1월 6일 예종이 족질(足疾)이 있은 지 오래 되어도 낫지 아니하여, 목멱산(木覓山)과 백악산(白岳山)·한강(漢江)·원각사(圓覺寺)·복세암(福世菴) 등에 기도(祈禱)하게 하였다. 도승지 권감(權瑊)은 또한 향(香)을 받아 가지고 내불당(內佛堂)으로 갔다. 7월 13일 기우 초제(祈雨 醮祭)를 소격전(昭格殿)에서 행하고, 또 기우 불사(祈雨 佛事)를 내불당(內佛堂)·흥덕사(興德寺)에서 베풀었다. 11월 28일 예종의 병이 위급하므로, 좌부승지(左副承旨) 한계순(韓繼純)과 우부승지(右副承旨) 정효상(丁孝常)을 내불당(內佛堂)에 보내어서 기도하게 하였다.





1470년 2월 11일 이보다 먼저 사재감 정(司宰監 正) 임사홍(任士洪)이 상소하여 내불당(內佛堂)을 파(罷)하기를 청하였는데, 이 때에 이르러 원상(院相)에게 보이고 인하여 성종이 전교(傳敎)하기를, “처음에 세종(世宗)께서 조종(祖宗)을 위하여 내불당을 창건하였는데, 그 때에 간하는 자가 매우 많았고, 술자(術者)도 또한 주산(主山) 내맥(來脈)에 불우(佛宇)를 지을 수 없다고 말하여 뜻에 거슬려서 죄를 얻은 자까지 있었으며, 불당을 지은 뒤로부터 국가에 한 가지 경사(慶事)가 없고 변고가 겹치었었다. 노산(魯山) 때에 혜빈(惠嬪)이 또한 말하기를, ‘모름지기 불당을 옮겨야 한다.’ 하였었는데, 지금 임사홍의 상소를 보고 전날 술자의 말이 거짓이 아닌 것을 다시 깨달았다. 지금 불당을 옮기고자 하는데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하니 신숙주 등이 말하기를, “윤당합니다.”하였다. 이에 정인지(鄭麟趾)·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구치관(具致寬)·홍윤성(洪允成)·윤자운(尹子雲)·임원준(任元濬)·서거정(徐居正)·이극증(李克增)을 명하여 한성부 당상(漢城府 堂上)과 풍수학 관원(風水學 官員)과 함께 불당을 지을 만한 곳을 살펴 정하게 하였다. 2월 12일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 등이 와서 아뢰기를, “지금 내불당을 지을 만한 곳을 살피니 장의동(藏義洞) 화약고(火藥庫)의 예전 터가 좋습니다.”하였다.





1482년 7월 24일 성종이 호조(戶曹)에 전지(傳旨)하기를, “대왕 대비의 명령인 의지(懿旨) 가운데에, ‘세종(世宗)께서 광효전(廣孝殿)의 유의(遺意)로 인하여 처음으로 문소전(文昭殿)을 세우시고, 또 내불당(內佛堂)을 창건하시어 승인(僧人)들을 골라 입접(入接)하게 하시고 그 출입(出入)을 금하시며 관(官)에서 공궤(供饋)를 지급하게 하셨다. 지금 한재(旱災)로 인하여 승인들의 공궤를 반으로 감(減)하여 지급하니, 내불당은 다른 절의 예(例)와는 달라서 승인들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어 사사로이 양식을 준비하기가 어려우며, 조종조(祖宗朝)에도 문소전(文昭殿)의 제사를 지내고 제사상에서 물려 낸 음식인 퇴선(退膳)한 소찬(素饌)으로 쓰는 각종 나물인 소물(素物)을 모두 주었는데, 중간에서 폐한 지가 이미 오래 되었으니 아울러 예전대로 주는 것이 마땅하다. ’고 하셨으니, 모두 의지(懿旨)에 의하여 시행하라.”하였다. 1486년 6월 25일 승정원(承政院)에 전교(傳敎)하기를, “대궐 안에서 더럽거나 어지러운 것을 쓸고 닦아서 깨끗하게 하는 소제(掃除)를 맡은 자를 조라치(照剌赤)라 하는데, 원각사(圓覺寺)와 내불당(內佛堂)에서 소제하는 자도 조라치라 부르므로 이름이 서로 혼동되니, 이 뒤로는 두 절에서 소제하는 자를 조라치라 부르지 말라.” 하였다.







1502년 6월 9일 10대 국왕 연조(묘호 추상)가 전교하기를, “새로 난 음식을 사당에 올리는 천신(薦新)하는 미곡(米穀)과 소물(素物)을 지금부터 왕실에서 부처를 공양하며 불도(佛道)를 닦는 내도량(內道場)인 내불당(內佛堂)에 보내지 말라.” 하였다. 1504년 7월 29일 전교하기를, “장의사(藏義寺)의 부처는 승려들을 시켜 8월 15일 전에 모조리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고, 정업원(淨業院)·안암사(安庵寺)의 여 승려인 니승(尼僧)은 다 한치형(韓致亨)의 집으로 옮겨 살게 하고, 내불당(內佛堂)은 흥천사(興天寺)로 옮기고, 향림사(香林寺)의 부처는 회암사(檜巖寺)로 옮기라.”하였다.
2013-05-18 16: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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