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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궁(慈壽宮) 자수원(慈壽院) 정업원(淨業院) 인수궁(仁壽宮) 인수원(仁壽院)
 김민수_
 2013-05-18 14:45:30  |   조회: 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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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궁(慈壽宮) 자수원(慈壽院) 정업원(淨業院) 인수궁(仁壽宮) 인수원(仁壽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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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0년 3월 22일 문종이 무안군(撫安君)의 예전 집을 수리하도록 명하고 이름을 자수궁(慈壽宮)이라 하였으니, 장차 선왕(先王)의 후궁(後宮)을 거처하도록 함이었다.6월 6일 세종(世宗)의 후궁(後宮)이 빈전(殯殿)에서 자수궁(慈壽宮)으로 옮겨 들어갔다.6월 18일 병조(兵曹)에 “자수궁(慈壽宮)의 두 빈(嬪)이 출입할 때에는 오장(烏杖)을 잡은 자 20명을 쓰고, 두 귀인(貴人)이 출입할 때에는 10명을 쓰라.” 전지하였다.1451년 3월 28일 사헌부(司憲府)에서 아뢰기를, “이제 혜빈(惠嬪)이 사는 곳을 따로 세우니, 바깥 사람이 모두 불당(佛堂)이라 합니다. 이미 궁(宮) 북쪽에 불당을 세웠는데, 지금 또 세우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비록 공인(工人)을 시키지 아니하고 승려들이 시켜 짓는다고 하나, 진관사(津寬寺)의 역사(役事)를 아직 마치지 못하였는데 토목의 역사가 잇따르니, 청컨대 멈추게 하소서. 하물며 선왕(先王)의 후궁(後宮)은 한 집에서 함께 사는 것이 마땅한데, 이제 따로 한 집을 마련해 살게 하면 그 친족이 드나들면서 와 보는 자가 어찌 없겠습니까? 궁금(宮禁)을 엄하게 할 수 없으니, 대체(大體)에 또한 어떠합니까?”하니, 문종이 말하기를, “선왕의 후궁을 자수궁(慈壽宮)에 같이 있게 함이 마땅하나, 혜빈이 본래 병이 있는데, 부모의 상사(喪事)인 대고(大故)를 지난 뒤로부터 그 병이 더욱 중하여 여러 후궁과 같이 있는 것이 마음에 미안하기 때문에 영풍(永豐)의 집 곁에 스스로 집을 하나 샀는데, 내가 두어 간 집을 짓게 하여 편히 있도록 한 것뿐이다. 혹 한 간에 부처의 화상을 설치하는 것은 본디 승려의 집에서 하는 일인데 어찌 금할 수 있겠느냐? 비록 자수궁에 있을지라도 이를 하지 않겠는가? 이 집을 불당(佛堂)으로 만든다고 함은 심히 무리(無理)한 말이다.”하였다.





1456년 12월 6일 이날 밤에 자수궁(慈壽宮)에 불이 났는데, 궁인(宮人)이 모두 경복궁(景福宮)으로 옮겨 들어가고 재추(宰樞) 등이 모두 모여 불을 껐으나, 끝내 멸하지 못하였다. 세조가 후원(後苑)에 나가 바라보고 주서(注書) 정은(鄭垠)에게 명하여 선온(宣醞) 10병을 가지고 불을 끄는 재추에게 내려 주게 하였다. 1457년 5월 22일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태종 대왕(太宗大王)의 후궁(後宮)의 의빈궁(懿嬪宮)이란 칭호를 없애고, 청컨대 자수궁(慈壽宮)과 수성궁(壽成宮)의 예(例)에 의거하여 영수궁(寧壽宮)이라 일컫게 하소서.”하니, 세조가 그대로 따랐다. 1457년 9월 8일 승정원에 전지하기를, “과부(寡婦)와 외로운 여자들이 대개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는데, 여승이란 실로 궁박(窮迫)한 무리들이다. 그래서 내가 다시 정업원(淨業院)을 세우고 이곳에 모여 살게 하여 이들을 구제하려고 한다. 또 다리를 절어서 보행할 수 없는 자도 지극히 궁하고 불쌍한 자이다. 삼각산(三角山)의 들에서 살며 걸식(乞食)하는 의뢰(依賴)할 곳 없는 기민(飢民)들은 어찌 그 생명을 이어 가겠는가? 내 뜻을 몸받아 포치(布置)하도록 하라.”하였다.1472년 6월 16일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이제 전교를 받으니, 장의동(藏義洞)의 냇물을 끌어서 경복궁(景福宮)으로 흘러 들어오게 하는 것의 편리 여부를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였는데, 신 등이 관상감 제조(觀象監提調)와 더불어 영추문(迎秋門) 안의 냇물을 살펴보니, 이는 곧 대궐(大闕) 안의 명당(明堂)의 물이라 그 흐름을 끊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장의동의 냇물을 아울러 흘러 들어오게 하면 여름달 장맛비가 올 때에는 범람하고 둑을 들이받아 대궐의 정원을 파손할 염려가 있습니다. 청컨대 자수궁(慈壽宮) 동쪽의 냇물을 끌어서 영추문(迎秋門) 수구(水口)에 흘러 들어오게 하는 것을 정지하여, 명당의 수맥(水脈)을 보존하게 하소서.”하니, 성종이 그대로 따랐다.1485년 5월 9일 승정원(承政院)에 전지(傳旨)하기를, “어제 근빈(謹嬪)을 자수궁(慈壽宮)에 옮겨 거처하게 하고, 명칭을 따로 정하고자 하였으나 그대들이 옳지 않다고 하였다. 내가 반복해서 생각하여 보았으나 근빈이 거처하는 궁을 일반적으로 자수궁이라고 하는 것이 마음에 미안하다.”하고, 인하여 이름을 창수궁(昌壽宮)이라고 지어 주었다.





1545년 12월 19일 원상 윤인경(尹仁鏡) 등이 아뢰기를, “인종의 후궁 정씨가 아직까지 궁궐 안에 있는 것은 신들도 미편하게 여겨 항상 아뢰려고 하였으니, 대간의 아룀이 과연 합당합니다. 정씨는 죄인 이유(李瑠)의 처형이어서 궁궐 안에 있을 수가 없는데, 더군다나 흉악한 무리의 초사(招辭)에 여러번 나온 경우이겠습니까. 대간의 아룀을 따르시어 빨리 궁에서 내보내소서. 그러나 사제(私第)로 보내지 말고 자수궁(慈壽宮)이나 인수궁(仁壽宮) 등 공처(公處)로 내보내는 것이 합당합니다.”하니, 명종이 답하기를, “정씨는 이미 조정의 뜻을 알고 공처로 나갔다.”하였다. 12월 29일 정원에 “인종(仁宗)의 후궁(後宮) 숙의(淑儀) 정씨(鄭氏)가 자수궁(慈壽宮)에 나가 있으니 일체의 공상(供上)을 진배(進排)하라.” 전교하였다. 1549년 11월 8일 사간원 대사간 구수담 등이 차자를 올렸다. 그 대략에, “정업원(淨業院) 터에다 인수궁(仁壽宮)을 짓도록 명하여 목석(木石)을 운반하는 사이에 지칠 대로 지쳐서 백성들의 목숨이 거의 끊어질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임금이 재난을 당하여 백성을 돌보는 뜻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선왕의 후궁이 거처할 곳으로는 자수궁과 인수궁이 있어 비록 질병이나 사고가 있더라도 이피(移避)할 만한데 또 감히 이같은 일을 하여 불우(佛宇)를 중수하는 길을 여십니까? 어려운 때에 사치한 공사를 하는 것이 이에 이르렀으니 이는 모두가 정치에 방해가 되는 큰 요인들이므로 신들이 입다물고 있을 수 없어 감히 의견을 개진하는 것입니다.”하였는데, 명종이 답하기를, “비록 인수궁과 자수궁이 있기는 하지만 후궁이 질병을 앓게 될 경우에는 반드시 그 곳으로 이우(移寓)한다. 그러므로 시녀 이하는 비접해 있을 곳이 없어 혹 여염에 나가 있기도 하니 어찌 사체(事體)에 방해로움이 없겠는가. 윤허하지 않는다.”하였다.





1554년 10월 30일 자수궁(慈壽宮)에 종루(鐘樓)와 나한전(羅漢殿)을 지었다. 11월 13일 사헌부 대사헌 윤춘년 등이 상차하여 자수궁에 종루 및 나한전을 창건하는 일을 논하니 “그 전에는 인왕산(仁王山) 기슭에 인가가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통행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인가가 있으므로 사람들이 서로 오가며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기에, 일찍이 해사로 하여금 담장을 쌓도록 했었는데 광할한 데라서 공역(功役)이 적지 않기 때문에 실현하지 못했었다. 마침 올 여름에 인종의 후궁이 여러 달을 거기에 가서 지내다가 와서는 아래를 내려다보는 상황을 말하므로, 자전께서 이로 인해 적간(摘奸)하도록 했었는데 과연 하는 말과 같았다. 또 비가 새어 곧 무너지게 된 곳이 있으므로 곧 개수(改修)하도록 해야 하고 또 누각을 세워 환히 바라다보이는 데를 막아야 하므로 해사로 하여금 하게 한 것이다. 이는 곧 선왕의 후궁이 사는 데로서 비가 새는 데를 수리하지 않을 수 없어서이고, 부처를 위한 집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답하였다. 홍문관 부제학 정유길(鄭惟吉) 등이 “지난번에 승려 선기(仙氣)가 성균관에 들어가 보우(普雨)의 죄악을 호소했었는데도 전하께서 단지 선기가 외람하게 학궁에 들어간 죄만 다스리고, 끝내 보우의 방종한 짓을 한 상황은 묻지 않으셨습니다. 이번에 자수궁 안에다 종루와 나한전을 창건하느라 바야흐로 명분도 없는 역사를 거행하고 있으니 토목 공사의 소리가 도성 안에 잇달아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보우 때문에 간언을 거절하셨습니다. 또 자수궁은 선왕의 후궁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여승들이 뒤섞이어 있을 데가 아닌데 지금 나한전을 세우고 있으니, 이는 전하께서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경복궁 역사는 비록 거처하시던 자리를 중수한 것인데 어찌하여 큰 역사가 겨우 끝나자 공장(工匠)들을 갑자기 다른 곳으로 옮겨, 선왕 때에는 없었던 것을 전하 때에 창건하시는 것입니까? 저 허탄한 불교는 능히 나라를 망칠 수도 있고 가정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으로서, 양종을 설치하고 선과(禪科)를 복구하고 정업원을 중창하면서부터 승려들의 기세가 이미 크게 신장되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우두머리 승려 보우(普雨)를 보호하느라 옥사를 처결하던 선왕들의 성규(成規)를 폐지하고, 종루와 나한전을 새로 세워 선왕의 후궁을 승려들과 섞어 놓았습니다. "상차하였다.





1557년 1월 23일 명종이 전교하였다. “어제 아침 경연에서 양사가 모두 자수궁(慈壽宮)의 수리는 부당하다는 것으로 아뢰었으나 자수궁의 수본(手本)을 보건대 서쪽 행랑채가 모두 퇴락해서 사람이 거처할 수 없다고 했으니 선공감 관원은 살펴본 다음 속히 군인(軍人)을 정하라. 나무와 돌은 내수사에 이미 준비되어 있다.” 1563년 6월 2일 명종이 전교하였다. “자수궁(慈壽宮)을 새로 짓고 인수궁(仁壽宮)을 수리하는 곳을 적간(摘奸)하니 질질끄는 일이 많이 있다 한다. 엄히 감독할 일을 해조에 말하라.” 내관(內官)을 보내어 적간하고 이 전교가 있었다. 사신은 논한다. 자수궁이 비록 선왕의 후궁을 위해 세웠다지만 실은 재(齋)를 올리고 부처를 모셔 복을 비는 곳으로 삼았으니 속임이 매우 심하다. 오늘날 좌도(左道)가 바야흐로 성하여 여승이 모두 모였는지라, 자수궁 하나만 있어도 족히 선왕의 후궁이 거처할 수 있는데도 또 새로운 궁을 지어서 부처를 받드는 장소를 넓히니 현혹됨이 심하다. 현종이 신축 2년 정월에 도성 안에 있는 두 니원(尼院)을 철거하였다. 전에 현종이 승니(僧尼)들이 교화를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하여 ‘승니들을 모두 환속(還俗)하게 하라.’고 하교하였다. 그런데 대신과 옥당이 갑자기 거행하기 어렵다고 아뢰자 현종이 명을 내려 도성 안의 자수원(慈壽院)과 인수원(仁壽院) 두 곳을 철거하게 하여, 나이 젊은 자는 속인으로 돌아가게 하고 늙은 자는 성 밖으로 내쫓았다. 그리고 헐어버린 불사(佛寺)의 재목으로 학궁(學宮) 및 무관(武館)을 수리하게 하였다. 대체로 불교는 신라 때에 비롯되어 고려 때에 성하였고, 우리 조선조에 와서도 다 제거하지 못하였는데, 이때 와서 시원하게 물리쳤으니, 수천 년 동안 없었던 쾌거였다. 명을 내려 중외(中外)의 음사(淫祀)를 금하고 내탕고의 면포를 내려 한성의 수용(需用)을 보충하였다.





1661년 1월 5일 정태화(鄭太和)가 진언하기를, “지난번 승니(僧尼)들을 환속시키라는 하교는, 그 의도는 매우 훌륭합니다만 그 중에는 갑자기 거행하기엔 곤란한 것도 없지 않습니다.”하니, 현종이 이르기를, “나 역시 다시 생각해 보니 필시 소요가 일어날 걱정이 있을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외방은 우선 천천히 하고 도성 내의 두 니원(尼院)을 먼저 혁파하는 것이 어떻겠는가?”하자, 태화가 아뢰기를, “이는 역대 제왕들이 하지 못하던 훌륭한 조치입니다. 성상께서 만약 과단성 있게 시행하신다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이 니원이 언제 창설되었는지 알 수 없는데, 전부터 의탁할 곳 없는 늙은 후궁들이 니원에 많이 거주하고 있고, 선왕조 때의 후궁도 나가 살고 있는 자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 만약 갑자기 혁파하게 되면 이들이 돌아갈 곳이 없게 되니 도리어 염려가 됩니다.”하니, 현종이 이르기를, “궁중에 오래 전에 늙은 박 상궁(朴尙宮)이란 자가 있었는데, 선조조에 은혜를 받은 후궁이었다. 늙어 의탁할 곳이 없자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 자수원(慈壽院)에 나가 살기 수십 년이었는데 수년 전에 이미 죽었고 지금은 살고 있는 자가 없다.”하였다. 현종이 이에 도성 내의 두 니원의 혁파를 명하고 40세 이하의 비구니는 모두 환속시켜 출가(出嫁)하게 하고, 그 나머지 늙어서 돌아갈 곳이 없는 자들은 모두 도성 밖 니원으로 내보냈으며, 나이가 넘은 사람도 환속하려는 자는 허락하라고 하였다. 또 예관에게 명하여 자수원에 가서 열성(列聖)의 위판을 모셔 내다 봉은사(奉恩寺)의 예에 따라 바로 정결한 곳에 파묻게 하였다.2월 12일 우참찬 송준길이 양 니원(尼院)을 혁파한 것을 하례하였으며, 자수원(慈壽院)의 옛터에 북학(北學)을 창건하고, 헐어낸 목재와 기와는 봉은사(奉恩寺)에 주지 말 것을 청하니, 상이 따랐다. 그 뒤에 예조가 아뢰기를, “북학을 신설하는 데는 학관(學官)을 차출하는 외에 노복을 나누어 주고 유생을 먹여 주어야 하는 등의 일을 미리 헤아려야 거행할 수 있습니다. 해당되는 각 관아로 하여금 품의하여 조처하게 하소서.”하였는데, 구애되는 일이 많아 끝내 시행되지 않았다.





1664년 윤6월 14일 현종이 정원에 비망기를 내리기를, “궁녀가 병으로 나가 있는 질병가(疾病家)를 설치하는 것은 단지 내외를 엄하게 하고 임금이 거처하는 궁궐인 궁금(宮禁)을 중하게 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일이 비록 하찮고 긴요하지 않으나 말세에 궁금이 엄하지 않게 되는 것은 다만 이로 말미암는다. 그래서 우선 담당 내관으로 하여금 수본(手本)을 보내 다시 설치하게 했던 것이다. 이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닌데, 지금 말이 임금을 능멸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한 내관, 한 하리가 왕복하며 한 말을 가지고 바로 임금을 이토록 의심하니, 아, 위아래가 막힌 것이 어찌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어찌 하나의 하찮은 일로 인하여 이토록 수모를 겪어야 한단 말인가. 질병가를 다시 설치하는 일을 즉시 정지시키도록 하라.”하였다. 이보다 앞서 인수(仁壽)와 자수(慈壽)의 두 니원(尼院)을 혁파하여, 자수원의 것은 재목과 기와를 성균관에 내리어 학사를 수리하는 데에 쓰게 하였고 인수원의 자재는 옮겨다가 질병가를 짓도록 하였다. 질병가라는 것은 궁인 가운데에 질병이 든 자를 거처하게 하는 집이다. 조종조로부터 이 집을 설치해 두었었는데 중간에 폐지했던 것이므로 지금 다시 설치하려는 것이다. 내시(內侍) 윤완(尹完)이 그 일을 주관하였는데 자수원이 질병가에 가깝고 인수원이 성균관에 가까워 현종이 그 섬돌을 편리에 따라 바꾸어 쓰게 하였다는 것으로, 호조의 아전을 시켜서 관관(館官)에게 말을 전하게 하였다.1689년 10월 18일 우의정(右議政) 김덕원(金德遠)이 숙종에게 차자(箚子)를 올리기를, “일찍이 조종조(祖宗朝)에 자수원(慈壽院)이 있어 폐출(廢黜)된 후궁(後宮)과 내인(內人)이 의탁하는 곳으로 삼았는데, 지금의 궁녀가 병으로 나가 있는 질병가(疾病家)가 바로 그 옛 터입니다.” 하였다.
2013-05-18 14: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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