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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단(圓壇)은 곧 환구(圜丘)이다
 김민수_
 2013-04-25 21:04:33  |   조회: 2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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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단(圓壇)은 곧 환구(圜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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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4년 8월 21일 예조에서 아뢰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 시대 이래로 원구단(圓丘壇)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기곡(祈穀)과 기우(祈雨)를 행한 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경솔하게 폐할 수 없습니다. 사전(祀典)에 기록하여 옛날 제도를 회복하되 이름을 원단(圓壇)이라 고쳐 부르기 바랍니다.” 태조가 그대로 따랐다. 1398년 4월 21일 태묘(太廟)·사직(社稷)·원단(圓壇)과 여러 폭포가 떨어지는 바로 밑에 있는 웅덩이인 용추(龍湫)에 비를 빌었다. 4월 27일 원단(圓壇)과 산천(山川)에 비를 빌었다. 1401년 1월 20일 태종이 원단(圓壇)에 곡식이 잘 되기를 빌었다. 4월 30일 이 달에 가물었다. 태종이 근심하여 사신을 보내서 우사(雩祀)·원단(圓壇)·사직(社稷)에 비를 빌고 또 무당을 모아서 기도하였다. 1404년 1월 9일 농사가 잘 되기를 비는 원단제(圓壇祭)를 한경(漢京)에서 행하였으니 해마다 행하는 일이었다. 1405년 5월 8일 태묘(太廟)·사직(社稷)·원단(圓壇)과 명산 대천(名山大川)에 비를 빌었다. 5월 24일 좌정승(左政丞) 하윤(河崙)이 원단(圓壇)에 비를 빌고자 하여 이미 재계(齋戒)를 마쳤는데, 태종이 명하여 소환하고 술을 내려 주었다.







1405년 7월 7일 명하여 두 번째로 원단(圓壇)에 비를 빌었다.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적전(籍田)과 원구단(圓丘壇)은 고려국의 옛 것이오니 청컨대 신경(新京)의 단(壇)에 이를 행하소서.”하니 태종이 말하기를, “경내(境內)의 땅이 이 하늘 아래인데, 어찌 여기에 편안히 앉아서 신경(新京)에 요제(遙祭)할 수 있겠는가? 옛 원구단은 버려두고 신단(新壇)을 축조(築造)하여 이를 행하라.”하고, 좌정승(左政丞) 하윤(河崙)을 명하여 행사(行事)하게 하였다.1406년 1월 10일 호조 판서 이지(李至)를 보내어 원단(圓壇)에서 정월 첫 신일(辛日)에 그 해의 풍년(豐年)을 기원하던 나라의 제사인 기곡제(祈穀祭)를 지냈다. 7월 27일 옥천군(玉川君) 유창(劉敞)을 보내어 우사단(雩祀壇)과 원단(圓壇)에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윤7월 21일 명하여 원단(圓壇)·적전(籍田)·사직(社稷)·산천단(山川壇)·성황당(城隍堂)의 제사지내는 마당인 단장(壇場)과 난간과 동산인 난원(欄園)을 수리하게 하였다.1407년 5월 26일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성석린(成石璘)에게 명하여 원단(圓壇)에 제사(祭祀)하게 하였는데 제사는 행하지 않았으나 재계(齋戒)한 뒤에 비가 내렸다. 7월 8일 대신(大臣)을 나누어 보내어 원단(圓壇)·사직(社稷)·북교(北郊)에서 바를 빌었다. 태종이 재계청(齋戒廳)에서 나와 원단에서 제사를 행할 무렵 뜰에 내려가 지배(祗拜)할 때에 잠깐 비가 내렸다. 1410년 6월 25일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황희(黃喜)를 보내어 원단(圓壇)에 비를 빌게 하였다.







1411년 3월 17일 예조(禮曹)에서 원단(圓壇)의 제의(祭儀)를 올렸다. 예조에서 상서(上書)하기를,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지극히 공경하면 단(壇)을 묻지 아니하고 땅을 쓸고 제사(祭祀)한다.’ 하였고, 한(漢)나라 원시(元始) 연간(年間)의 의식에는, ‘상제(上帝)의 원단(圓壇)은 팔방형(八方形)인 팔고(八觚)이니, 직경(直徑)이 5장(丈)에 높이가 9척(尺)이라.’ 하였고, 당(唐)나라 고조(高祖)의 환구(圜丘)는 4층인 사성(四成)으로 되었는데, 한 성(成)의 높이는 각각 8척(尺) 1촌(寸)이고, 하성(下成)의 너비는 20장(丈)이며, 재성(再成)의 너비는 15장(丈), 삼성(三成)의 너비는 10장(丈), 사성(四成)의 너비는 5장(丈)이었습니다. 그리고 송(宋)나라 고종(高宗) 소흥(紹興) 13년에 환구(圜丘)를 수축(修築)하였는데, 그 단(壇)과 내유(內壝)의 장척(丈尺)은 모두 제도(制度)에 의하였으며, 중유(中壝)와 외유(外壝)는 지형(地形)에 따라 적당히 하였습니다. 태상시(太常寺)에서 수축(修築)한 환구(圜丘)는, 제1성(弟一成)의 종광(縱廣)이 7장이고, 제2성의 종광이 12장, 제3성의 종광이 17장, 제4성의 종광이 22장이며, 13폐(陛)로 나누어 매 폐(陛)마다 72급(級)씩이고, 매 1성(成)마다 12철(綴)이며, 세 개의 담 유(壝)로 되어 있는데, 제1의 담은 단(壇)에서의 거리가 25보(步)이고, 가운데 담 중유(中壝)는 제1의 담에서의 거리가 12보 반이며, 바깥의 담 외유(外壝)는 가운데 담에서 또 이와 같은 거리였습니다. 요단(燎壇)의 제도는 방(方)이 1장(丈), 높이가 1장(丈) 2척(尺)이며, 삼면(三面)으로 섬돌을 내었는데, 단(壇)의 남쪽 20보(步) 거리의 병지(丙地)에 있었습니다.





고려국의 고금상정록(古今詳定錄)에는 원단(圓壇)의 주위가 6장(丈)이고, 높이가 5척에, 12폐(陛)·3유(三壝)로 되어 있는데 매 유(壝)는 25보(步)이며 둘러친 담장 주원(周垣)에는 네 개의 문(門)이 있고 그 요단(燎壇)은 너비가 1장(丈), 높이가 1장(丈) 2척(尺)이며 지게문은 방(方)이 6척(尺)이었습니다. 송(宋)나라 철종(哲宗)이 재궁(齋宮)을 세우고 신하에게 이르기를, ‘청성(靑城)의 비용이 30여 만(萬)에다 공인(工人)이 또한 여기에 배(倍)나 된다. 이를 바꾸기를 가옥으로 한다면, 한 번의 수고로 영구히 편안하게 될 것이다.’ 하였으니, 그 비용의 생략이 많을 것입니다.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천지(天地)에 제사하는 소는 그 뿔이 고치나 밤과 같은 견률(繭栗)과 같아야 하며, 3개월을 두고 씻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삼가 원단(圓壇)의 제도를 살펴보면, 세대(世代)마다 각기 같지 않았습니다. 고려국의 고금상정(古今詳定)에는 원단의 주위가 6장(丈)으로 되어 있는데, 국조(國朝)에서 이것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리고 천황대제(天皇大帝)와 오방오제(五方五帝)의 신위(神位)가 모두 단상(壇上)에 있기 때문에 진설(陳設)과 작헌(酌獻)할 적에 돌아다니고 진퇴(進退)함에 있어 매우 좁아서 해로움이 있습니다. 청컨대 송(宋)나라의 제도에 의하고 고려국의 법을 참고하시어 단(壇)을 쌓으시되, 종광(縱廣)이 7장(丈)에, 12폐(陛)로 하고, 그 아래에 3유(壝)를 만들며, 둘레의 담 주원(周垣)에는 4문(門)을 내고, 단(壇) 남쪽 병지(丙地)에 요단(燎壇)을 쌓되, 너비가 1장(丈), 높이가 1장(丈) 2척(尺)으로 하고, 지게문의 방(方)은 6척(尺)으로 하소서. 그리고 또, 송나라의 제도에 의하여 신주(神廚)와 재궁(齋宮)을 지으시고, 예기(禮記)에 의하여 희생(犧牲)을 송아지로 쓰시되 3개월 동안 씻게 하여 이 것을 항식(恒式)으로 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그대로 따랐다.





1411년 10월 27일 다시 원단(圓壇)을 남교(南郊)에 쌓았다. 1412년 8월 7일 명하여 원단(圓壇)을 쌓게 하니, 예조(禮曹)의 아룀을 따름이었다. 1416년 6월 7일 다시 우사단(雩祀壇)과 원단(圓壇)의 제사를 행하였다. 좌의정 류정현(柳廷顯)에게 명하여 헌관(獻官)으로 삼았는데, 이 날 큰 비가 내렸다. 7월 15일 우의정(右議政) 박은(朴訔)에게 명하여 원단(圓壇)에 제사하였으니 비를 얻은 것에 보사(報祀)한 것이다. 9월 12일 원단(圓壇)·사직(社稷)·풍운뇌우(風雲雷雨)·선농(先農)의 여러 단(壇)에 재실(齋室)을 지었으니, 예조(禮曹)의 계문(啓聞)에 따른 것이었다. 또, 아뢰기를, “제삿날에 혹 비와 눈을 만나면 충호위(忠扈衛)로 하여금 임금이 거둥할 때 임시로 쉴 수 있도록 장막을 둘러친 악차(幄次)를 설치하여 행제(行祭)하게 하소서.”하고, 또 아뢰기를, “원단·풍운뇌우의 여러 단(壇)을 빌건대 예전 제도에 의하여 쌓고 담 밖 사방에 나무를 심고 각각 인정(人丁)을 정하여 지키소서.”하니, 모두 그대로 따랐다. 1417년 윤5월 5일 예조에서 태묘(太廟)·사직(社稷)·우사(雩祀)·원단(圓壇)에 기우(祈雨)하기를 청하니, 그대로 따랐다.





1423년 7월 3일 예조에서 계하기를, “지금부터는 원단(圓壇)·사직(社稷)·태묘(太廟)의 제사에 서계(誓戒)할 적에 모두 공복(公服)을 사용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세종이 그대로 따랐다. 1427년 6월 14일 세종이 원유관(遠遊冠)·강사포(絳紗布) 차림으로 근정전(勤政殿) 월대(月臺)의 막차(幕次)에 나아가 원단(圓壇) 기우제에 쓸 향과 축문을 친히 전하였다. 1428년 1월 4일 예조에서 계하기를, “일찍이 태묘(太廟)의 제사에 향악(鄕樂)을 연주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청컨대 원단(圓壇)과 사직(社稷)의 풍운뇌우제(風雲雷雨祭)·우사(雩祀)·선농(先農)·선잠(先蠶)과 석전(釋奠) 등의 제사에도 또한 향악을 쓰지 못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1430년 2월 19일 예조에서 의례상정소(儀禮詳定所)와 함께 의논한 봉상 판관(奉常 判官) 박연(朴堧)이 말하기를, ‘원단(圓壇)은 곧 환구(圜丘)이니 원단제(圓壇祭:환구제(圜丘祭))는 상제(上帝)에게 제사지내는 예(禮)입니다. 제후(諸侯)는 상시로 제사지내는 법이 없사온데 우리나라에서는 옛적부터 이를 행하였사오니 예(禮)가 아니었습니다.’하였다. 1457년 9월 1일 세자의 병이 오래도록 낫지 않으니 세조가 명하여 환구단(圜丘壇) ·태묘(太廟)·사직(社稷)에 기도하게 하였다. 1458년 1월 15일 친히 환구단(圜丘檀)에 제사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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