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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 유릉 대한국 황제릉 재지정,의친왕릉을 제후릉 능제로 격상해야
 김민수_
 2013-04-03 08:26:23  |   조회: 3101
첨부파일 : -
마사코,진,구를 이장하고 귀비 엄씨 묘(墓)로 개칭해야













http://blog.naver.com/msk7613













1897년 10월 12일 대한국(大韓國)을 건국한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1900년 황제의 아들인 황자(皇子)인 의친왕(義親王), 영친왕에게 친왕(親王) 책봉(冊封)하였다.1901년 9월 14일 영돈녕원사(領敦寧院事) 윤용선(尹容善)이 고조 광무제에게 황제국의 비빈(妃嬪)은 후궁의 벼슬인 후궁지관(後宮之官)이라고 하였다. 대한국 1대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명성황후 민씨와 비빈(妃嬪) 귀인 장씨, 귀비 엄씨, 귀인 이씨, 소의 이씨, 귀인 정씨, 귀인 양씨 등 총 6명의 후궁(後宮)과의 사이에 많은 황자(皇子)들이 있었다. 덕혜옹주는 고조 광무제와 귀인 양씨와의 사이에 대한국 황궁 경운궁에서 태어났다. 1925년 3월 24일 덕혜옹주(德惠翁主)에게 도쿄에서 유학하도록 명하였다.1926년 4월 8일 덕혜옹주(德惠翁主)는 순종 융희제의 환후(患候)가 극심하다는 것을 전달받고 영친왕과 함께 유럽 유람(遊覽)을 중단하고 돌아와 문후(問候)를 아뢰었다. 전제군주제(專制君主制)의 대한국(大韓國)은 1919년 1월 고조 광무제의 붕어(崩御)로 4월 민주공화제(民主共和制)의 대한국으로 전환되었으며 대한국 고조 광무제의 직계 후손은 황위 승계 1순위 의친왕의 후손인데 의친왕(義親王)과 10여명의 후궁 사이에 13황자 9옹주가 있다. 의친왕은 1893년 12월 6일 의친왕비(義親王妃) 김수덕(金修德)과 혼인하였으며 1900년 8월 의친왕(義親王)에 책봉(冊封)되었으며 1906년 대한국 육군 부장(陸軍 副將)이 되었고 대한적십자사 총재에 취임하였으며 대한국 최고의 훈장인 금척대훈장(金尺大勳章)을 수여받았다.











대한국 황태제(추봉) 의친왕(義親王)은 2대 황제 순종 융희제(1919.1-4)의 다음 서열로 황위 승계 1순위이었으나 1895년 일본 정부의 명성황후(明成皇后) 살해,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을사늑약을 불법 늑결하였고 1906년 설치된 일제 통감부의 방해로 황태제 책봉(冊封)이 되지 못하였고 1910년 8월 경술늑약 불법 늑결 이후에는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피하여 대한광복운동가들과 끊임없이 접촉, 교신하며 대한광복운동을 지원하였다. 일제 총독부는 대한국 황실 궁내부를 폐지하고 황족에 왕,공의 작위를 주어 일본 왕실에 불법 편입하였다.1911년 11월 33인의 민족지도자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의친왕을 망명하게 하여 대한광복운동을 활성화하고자 한 대동단(大同團)의 김가진(金嘉鎭),전협(全協)과 망명을 모의하였으나 대한국령 간도의 안동에서 일제 경찰에 발각되었지만 일본에 저항하여 배일 정신을 지켜내었다. 황태제(추봉) 의친왕(義親王)은 1948년 8월 15일 서울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사동궁에서 임어하다가 1955년 8월 서울시 종로구 안동궁에서 붕어(崩御)하였다. 고조 광무제의 친부인 흥선대원군을 조선국 국왕, 대한국 황제로 추존하고 대한제국 황실 황위 승계 1순위 황태제(추봉) 의친왕을 대한국(大韓國) 3대 황제로 추존하여 태묘(太廟)에 부묘(祔廟)하고 대한시대 대한광복운동기에 각 민족 집단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그 귀속과 정치 조직, 정치적 운명을 결정하고 타 민족이나 타 국가의 간섭을 인정하지 않는 민족자결(民族自決: self-determination)의 국제정세를 인식하고도 마사코와 혼인,일본군 중장 역임하고 유럽여행을 다니며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하지 않은 영친왕 신주를 거주(去主)해야 한다.











대한국(大韓國)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대한국 황족(皇族) 책봉권자로서 1897년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추책(追冊)하였으며 1907년 민영돈(閔泳敦)의 딸 민갑완(閔甲完)을 영친왕비(英親王妃)로 간택하였으며 1910년 8월 일본제국주의의 무력을 동원한 불법 침략에 의한 경술늑약(庚戌勒約) 늑결은 무효이고 1919년 1월 고조 광무제의 붕어(崩御)로 4월 중국 상해에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영친왕(英親王)은 대한국 1대 고조 광무제의 일곱째 황자이며, 어머니는 1895년 일본 정부의 명성황후 살해 후 득세한 명성황후를 모시는 시위상궁(侍衛尙宮)이었던 귀비(황제국 후궁 중 으뜸 벼슬) 엄씨이고 1900년(광무 4) 8월 영친왕(英親王)에 책봉되었으며 1901년 9월 14일 영돈녕원사(領敦寧院事) 윤용선(尹容善)이 고조 광무제에게 황제국의 비빈(妃嬪)은 후궁지관(後宮之官)이라고 아뢰었다.1907년 추봉 영친왕비(英親王妃) 민갑완(閔甲完)은 영친왕비(英親王妃)로 간택되었고 택일하여 가례를 올릴 예정이었으나 이토 일본제국주의 통감이 영친왕을 대한국 강제 병합의 볼모로 일본에 데려갔고 영친왕은 대한시대 대한광복운동기에 민족자결의 국제정세를 인식하고도 일제에 저항하지 않고 마사코와 혼인하여 유럽여행을 다녔으며 영친왕비(英親王妃)로 간택된 민갑완(閔甲完)은 영친왕과의 가례를 기다렸으나 일제의 방해로 영친왕비(英親王妃)로 책봉되지 못하였다.













1910년 8월 일제의 불법 침략에 의한 경술늑약(庚戌勒約) 늑결 이후 1912년 동제사(同濟社) 조직, 1914년 대한광복군 정부 수립,1915년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 결성,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조직, 1918년 신한청년당 결성 등 대한국광복운동이 조직화되고 파리강화회의에 대한국의 독립(獨立)을 청원하자 일제 총독부가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를 독살(毒殺)했다. 전제군주제(專制君主制)의 대한국(大韓國)은 1919년 1월 고조 광무제의 붕어(崩御)로 4월 민주공화제(民主共和制)로 전환되었으며 대한국 황족의 책봉권자인 고조(高祖) 광무제는 1907년 민갑완(閔甲完)을 영친왕비(英親王妃)로 간택하였고 영친왕비(민갑완) 9등 적의는 1907년 영친왕비(英親王妃)로 간택된 후 영친왕과의 가례를 위해 다른 대한국 황족의 적의와 함께 궁내부 직조과(宮內府 織造課)에서 제작되었다.1910년 8월 일제의 침략에 의한 경술늑약(庚戌勒約) 늑결은 불법 무효이고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민주공화국으로 전환되어 대한국 황제는 영친왕비(英親王妃)를 책봉(冊封)한 사실이 없었고 대한국 황제의 치세(治世:순종 융희제의 대리청정 기간은 고조 광무제의 치세)는 1919년 4월에 끝났다.1921년 3월 31일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1897-1919),명성황후(明成皇后)를 태묘(太廟)의 18실에 부묘(祔廟)하며 부묘대제(祔廟大祭)를 행하였다.









심청색 이화문(李花紋) 적의(翟衣)는 대한국 황족 책봉권자인 고조 광무제가 책봉(冊封)한 황후(皇后), 황태자비(순명황후,순정황후)와 의친왕비(김수덕)가 착용한 대한국 황실 대례복이며 대한국 황실 의례를 폐지하고 궁궐, 황단, 궐외각사, 한성을 철거한 일본제국주의 총독부가 조직적인 대한국광복운동에 위기의식을 느껴 일본 왕족 마사코에게 착용시킨 후 정치선전용 영상을 촬영한 적의는 1919년 대한국(大韓國) 고조 광무제의 붕어(崩御)로 대한국이 국상(國喪)중인 1919년 일본 교토에서 제작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대한국 황제가 책봉(冊封)한 대한국 황족이 아닌 일본 왕족 마사코를 일본으로 송환하고 영친왕비(英親王妃:추봉) 민갑완(閔甲完)을 영친왕릉에 합장(合葬)해야 하며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대한국 황실 연표에 1대 고조 광무제(1897-1919.1),2대 순종 융희제(1919.1- ), 황태제(皇太弟:추봉) 의친왕(이강) 대한국 3대 황제 추존, 영친왕비(英親王妃:추봉) 민갑완(閔甲完)으로 바로 기술하여야 하며 심청색(深靑色) 이화문(李花紋) 12등(十二等) 황후(皇后) 적의(翟衣)를 착용한 명성황후(明成皇后) 초상을 전시하고 영친왕비(추봉) 사진을 민갑완으로 교체하고 심청색 자두꽃(오얏꽃) 문양, 이화문(李花紋) 9등 적의(翟衣)를 대한국 황태자비(순명황후,순정황후)와 의친왕비(김수덕)가 착용한 대례복으로 바로 전시 설명하여야 한다.















대한국(大韓國) 황제릉(皇帝陵) 홍릉(洪陵)은 1대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와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 閔氏)의 동원이실합봉릉(同原二室合封陵)이며 명성황후(明成皇后)는 1897년 11월 21일 청량리 천장산에 안장됐다가 1919년 1월 21일 대한국 1대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가 붕어(崩御)하자 3월 4일 경기도 남양주 금곡으로 이장해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와 함께 합장하였고 1,4,7,10월 상순의 4시(四時),정조절(正朝節:원일(元日)),상원(上元),중화절(中和節),중삼절(重三節:삼짇날),한식절(寒食節),단오절(端午節),유두절(流頭節),칠석절(七夕節),중원(中元:백중),중추절(中秋節:추석),중구절(重九節),하원(下元),동지절(冬至節),납향절(臘享節)의 영절(令節), 초하루와 보름의 삭망(朔望)에 친제(親祭)를 봉행했다. 대한국(大韓國) 초대 고조 광무제와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 閔氏)의 능인 홍릉(洪陵)은 명(明) 태조의 효릉(孝陵)을 본받아 능역(陵域)을 조성하였으며 신도(神道)를 중심으로 좌우에 어도(御道)가 설치되어 참도(參道)가 3개의 단으로 되어 있고 월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침전(寢殿)의 정면에 설치되어 있어 황살문과 직선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석물이 참도와 침전 사이에 배치되어 있고 문석인, 무석인,기린,코끼리,사자,해치,낙타,말이 순서대로 참도(參道)의 양쪽으로 정렬하고 있다. 수복방(守僕房), 재실(齋室), 비각, 망료위(望燎位)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진입부에 원형의 연못인 영천(靈泉)에 원형의 섬이 있다.







대한국(大韓國) 2대 황제릉 유릉(裕陵)은 대한국 2대 순종 융희제와 순명황후 민씨(純明皇后 閔氏) 그리고 순정황후 윤씨(純貞皇后 尹氏)의 능이며 1897년 10월 12일 대한국(大韓國)이 건국되고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가 황제로 등극함으로써 명(明) 태조의 효릉(孝陵)을 본받아 능역(陵域)을 조성하였다. 一 자형의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寢殿)을 세웠으며 황살문까지 문석인·무석인,기린·코끼리·해치·사자·낙타·말의 순으로 석수(石獸)를 세웠다. 능침(陵寢) 주변에는 화문(花紋)을 새긴 병풍석(屛風石)과 난간석(欄干石)이 둘러져 있고 중앙에 혼유석(魂遊石)과 사각 장명등(長明燈)이, 양 옆에는 망주석(望柱石)이 새워져 있으며 황살문과 침전의 바깥 공간에는 어정(御井)이 남아 있다. 서울시,경기도,강원도에 소재한 조선시대(1393년-1897년) 505년 동안 존속된 조선국 25대 국왕과 왕후 및 사후 추존된 국왕과 왕후의 릉 및 대한제국시대(1897년-1919년) 황제릉을 조선국 왕릉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하였는데 문화재청은 조선국 10대 국왕 연조(燕祖),15대 국왕 광조(光祖),26대 국왕 흥선헌의대원왕의 묘호(廟號) 추상 및 왕릉 능제 격상, 의친왕릉과 영친왕릉의 제후릉 능제 격상, 영친왕릉에 추봉 대한국 영친왕비(英親王妃) 민갑완(閔甲完)을 합장(合葬) 및 대한국 황제가 책봉한 대한국 황족이 아닌 마사코,진,구를 이장, 영휘원을 귀비(황제국 후궁 중 으뜸 벼슬) 엄씨 묘(墓)로 개칭하고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제 의친왕을 3대 황제 추존, 의친왕릉의 능제를 황제릉으로 격상하고 능호를 부여하여야 하며 조선국 왕릉 및 대한제국 황제릉을 구분하여 재지정하고 교육홍보하여야 한다.
2013-04-03 08: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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