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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특수군 600명과 제3그룹, 남한접수원정대 200여명은 어디로 남한을 침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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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1-09 13:25:32  |   조회: 4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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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특수군 600명과 제3그룹, 남한접수원정대 200여명은 어디로 남한을 침투했나?

오늘(11/6)까지 <500만 야전군>에서 포착한 광수의 수가 무려 246명에 이른다. 금년 5월 5일부터 6개월간 발굴해 낸 숫자이다. 그렇다면 광수를 매월 40명 이상씩 발구해 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는 이들로부터 매우 중요한 정보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특수군 600명만 온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포착된 광수들을 정밀분석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들 246명 중에는 90여명의 군인광수 외에 또 다른 제3그룹, 즉 民-官 및 김일성가의 로열패밀리 150여명이 섞여 있었다. 그럼, 광주에서 찍힌 단체사진들 중에서 아직도 포착하지 못한 광수의 수를 감안하면, 5.18 당시 광주에는 북한특수군 600명 외에 다방면의 엘리트들로 구성된 또 다른 집단 200여명(추산)이 왔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800여명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남한에 침투했을까? 또한 그들이 몇 개월에 걸쳐 10~50명 단위로 축차적으로 침투하는 동안 한국의 군과 정보기관에서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니 한국의 휴전선 일대와 해안선 일대가 저들의 독무대였음을 알 수 있다. 이제부터 저들의 남침 경로를 알아보자.

위의 답을 찾기위해서 탈북군인들 16명의 수기를 묶어 발행한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자유북한군인연합/2009. 9)의 증언 내용과 2013년 5월 15일 채널A의 '김광현의 탕탕평평' 프로에 나왔던 전 북한특수군 출신 김명국(가명)의 증언을 예로 들어 살펴보고자 한다.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에 나오는 간첩 및 광수들의 현황

증언 1: 안창식 외 생환자 14명

증언 2: 공화국 2중 영웅 장중한

증언 3: 교도국 전신 17여단 출신, 채영희의 아버지/전사

증언 5: 제61저격여단 대대장 이봉원

증언 7: 군당조직부 지도위원과 정찰부장

증언 8: 일본담당 첩보원 마화숙(재일교포 가장 위장침투 3회)

증언 9: 친구의 사촌형과 팔목에 문신한 당위원회 지도위원

증언 10: 당원사단 출신 창고장

증언 11: 김형철 외 22명(5.18발발 후 땅굴(철원-충남/북-전북)로 침투했다가 복귀명령 받고 중도에 복귀함)

증언 12: 김영호의 아버지/전사

증언 13: 공화국 2중 영웅/중앙당 지도검역 부장

증언 14: 노동자지도원 동생(재일교포로 위장유학 간첩임무 수행함)

1, 해상 루트

가. 증언 1: 안창식 일행 11명은 1980년 11월 잠수함으로 목포로 가서 부마사태 때 선발대로 침투한 7명과 합류하여 무려8개월 동안이나 그들의 아지트에 은거하면서 작전을 수행하고, 7월 중순 께 동해안으로 가서 잠수함으로 복귀했다. 그들은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3명이 행방불명이 돼 모두 14명만 살아서 돌아갔다.

나. 증언 2: "나는 당중앙위원회의 위임을 직접 받고 내려온 사람이야. 네놈들이 어제 도끼로 죽인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어? 여기 있는 너희들 여단전체를 주고도 바꾸지 못할 사람이었어. 그 사람은 수십 번을 적후에 드나들면서도 머리털 한 오리 다치지 않던 사람이야. 남조선의 광주에서 적들과 힘들게 싸우면소도 조국이 준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돌아온 영웅이란 말이야 이놈들아. 네놈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크고 그후과가 막대한지 너희 부모들과 친척들이 평생 살 동안 고통을 느끼면서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당중앙위원회의 위임에 의하여 오늘 이 자리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이름으로 너희들을 모조리 처단한다"

그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권총을 꺼내 대대장과 중대장을 향해서 분노를 폭발하듯 공격적으로 탄창 하나를 다 발사하였다. 나머지 열 명에게는 무장한 보위소대원들 20명이 귀가 따갑게 총탄세례를 퍼부어 댔다. 남조선을 수십 차례씩이나 드나들면서 공을 세웠던 광주의 영웅은 이런 불우한 운명으로 해서 어릴 적 나이에 집을 떠나서 27년 만에 처음으로 밟아보는 고향 길을 끝으로 아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시멘트 콘크리트로 포장한 묘지의 높이는 1.5미터가 넘어보였고 묘지의 앞에 서있는 비석에는 중앙당에서 직접 새긴 문구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공화국 2중 영웅 고 장중한 동지는 1980년 5.18일, 남조선의 광주인민항쟁을 비롯해서 살아생전 당과 수령,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싸우다가 애석하게 전사하였다. 조국을 위해서 젊음을 바친 고 장중한 동지의 투철하고 고귀한 혁명업적은 조국의 미래와 더불어 후손만대에 영원히 전해질 것이다. 애석하게 전사한 장중한 동지에게 영광이 있으라!"

다. 김명국의 증언

1. 김명국의 프로필

1) 1961년 함경북도 회령 출생

2) 1977년 8월 26일 북한대남연락소(112훈련소) 아동훈련소에 입소

3) 1978년 10월경 간첩부대인 중앙당연락소(1010군부대) 2처 전투정찰부대에 배치됨

4) 1980년 5월 19일 광주에 남파되 작전수행

5) 1980년 5월 27일 북한으로 철수 중 북한군 포사격훈련장을 통과하다가 부상을 당함

6) 국기훈장 1급을 받고, 5.18영웅 대접을 받았음

7) 2003년까지 북한군 특전사 교관(중좌/중령)으로 복무함

8) 2006년 중국 밀무역 사건으로 북한 안전보위부에 체포되기 직전 가족과 함께 탈북함

2. 김명국의 증언내용

1) 1980년 5월 18일 야간훈련 중 철수명령 받음

2) 총탄 300발, 수류탄 2발, 권총, 카빈총 1정, 단도, 포승끈, 구급치료약 등 소지

3) 5월 19일 오후 4시경 대양리에서 전투조 50명 갱생지프차로 출발

4) 5월 19일 밤 9시경 황해남도 장연군 장산곶 북한대남연락소 기지에서 승선

5) 직속부대에는 3개조가 있었는데, 증언자가 소속된 1조는 12명, 2조도 12명, 3조는 15명, 나머지 10명은 16정찰에 배속된 남한 전문가들이다.

6) 그가 속했던 소조 12명 중 조장은 23세의 리상국 중위였고, 부조장은 22세의 한광호 소위였다. 기타조원들의 이름은 김일룡(21), 최길산(20), 황보석(21), 한철수(21) ----김명국(가명/19) 등으로 기억한다.

7) 증언자가 호위했다는 파견대장의 이름은 문제심.

8) 우리 나이 또래에선 5.18 사건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것은 상식화 돼 있다. 광주폭동에 참가했던 조장-부조장들은 모두 군단장급으로 승진했다.

9) 17여단, 61~63저격여단 등에서 차출됐으나 임무는 모두 달라. 정치공작조도 있고, 몽둥이질 잘하는 애들도 있었다.

10) 고기배로 위장(길이 20m, 추진기 4개, 시속 70km, 자체 폭파 가능)

11) 21일 새벽 2시경 전남 광주 앞바다로 잠입, 안내원 몇 명이 대장한테 와서 결과보고.("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였다는 것과 함께 트럭, 장갑차들을 노획하였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12) 2일간(22일까지) 광주 근교 야산에 잠복하여 북한과 무선교신을 하며 광주봉기의 추이를 살폈다.

13) 23일부터 26일까지의 작전은 증언내용에 없음(고의적 누락?).

14) 27일 새벽 북한으로 철수하기 시작. 아침 6시경 산 중턱에서 국군특전사와 교전 중, 증언자 자신이 공수대원 3명을 사살함.

15) 30일 새벽, 증언자 일행이 '문경고개' 근처에서 행군할 때 부조장이 여자에게 발각되어 죽여서 땅에 묻어 버렸다.

16) 6월 4일 밤 11시, 휴전선에 도착했다. 지뢰밭과 철조망은 정찰국 성원들이 앞서 나가면서 해제해 주었고, 휴전선을 넘고 보니 5일 아침 9시경이었다.(지역은 북한 강원도 판교군 지하리)

17) 북한군 포사격장에 들어갔다가 한참 훈련중인 포탄에 맞아 2명이 즉사하고, 본인은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18) 6월 15일 북한군 침투 총화(결산)가 김일성 부자의 참석 하에 평양에서 열렸다.

19) 남한에 침투되었다 살아서 귀환한 군인, 전사한 군인 모두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가 수여됐고, 분견대장 2명은 조선인민군 교도지도국(특수전 사령부) 작전부대에 승급되어 배치됐다. 김일성은 소좌급인 분견대장들에게 대좌의 군사칭호를 수여했다.

20) 조장들은 7명이 살아 돌아왔는데 모두 상좌로 승진시켜 각 군단 부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21) 조선인민군 1010군부대 전투원 김명국은 5월 전투공로로 조선로동당에 입당하였다. 목숨 바쳐 지휘관을 보위한 공로로 국기훈장 1급을 수여받았다. 참고로 국기훈장 두 개면 공화국 영웅 칭호와 맞먹는다.

22) 대남연락소 내부 규정에는 전우가 죽으면 흔적을 없애려고 땅에다 묻어 버리고, 마지막 남는 사람이 붙잡히면 자폭하게 되어 있다. 만약 전우가 부상당해 대오의 행군에 지장을 준다고 생각되면 죽여서 땅에 묻어 버린다. 자폭을 위해 옷 속에 여러가지 유형의 작은 물체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데 고성능 폭약 3kg이 터지는 위력과 맞먹는다.

23) 2006년 7월 남한에 입국하여 위와 같은 사실들을 증언하였지만, 당시 국정원 직원 이병영이 "그런 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고 협박했다. 그는 현재 분당에 살고 있다.

24) 문제심은 2006년 당시 국방차관급으로 출세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가 아는 남파부대들에서 270명이 남파되었다가 거의 다 죽고 살아 돌아 온 사람이 70명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했다.

2. 육상 루트

증언 5: "광주사태 때 전쟁이 날 뻔 했다. 김일성의 지시로 본격적으로 밀고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런 시점에서 광주사태는 중요했고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당시 인민군대는 광주와 남조선의 전역에서 신호가 오면 즉시 무력을 동원하여 전쟁을 하려고 계획했었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 군부가 우리의 활동에 대해서는 눈치를 못 채고 있었지만 공수부대들을 진압군으로 대거 투입하는 바람에 무장폭동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문제가 생각외로 불가능해 졌다. 남조선으로 드나들 수 있는 루트는 해상뿐만이 아니라 육지 쪽으로도 정교하게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고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광주에서 대학생들의 소요가 일어나기 이전부터 우리 쪽에서 남조선에 나가서 활동하는 특수부대 사람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고 보면 된다. 남조선에 침투하여 단기 소부대작전을 하던 사람들은 게릴라전의 전문가들이라고 말할 수 있고 광주에서 장갑차를 탈취하고 무기고를 습격한 것은 남조선 시민들이 아니라 다 우리가 한 일이었다." :

또한 그는 광주사태가 일어나기 훨씬 전에 북한군 특수부대인 60,61,62저격 여단에서 상당수의 소부대들이 남조선에 파견되어 있었고 61저격여단의 소부대를 인솔한 사람은 대대장 이봉원이라고 까지 구체적으로 증언하였다. (필자 주 : 나는 여기서 약100여 명의 특수군이 파견됐으리라 예상해 본다.) 광주사건에 남파되었다가 사망한 사람들의 비석은 강원도 김화(북한군 5군단 지역) 인근에 안치되어 있고, 61저격여단의 소부대를 책임지고 남파되었던 대대장 이봉원은 광주사건 이후 북한으로 귀대하여 김일성으로부터 공화국영웅칭호와 함께 '일당백'이라는 별도의 칭호를 받았으며< 태천 군관학교> 소장으로 승진했다고 하였다.

증언 9: 여기에는 두 가지 사례가 소개됐는데 하나는 친구의 사촌형이 전사했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팔목에 <문신비표>를 한 당위원회 지도위원의 얘기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일행 12명중 2명이 죽고, 3명이 행방불명이 돼 7명만이 살아서 돌아갔다 한다. 또한 부대에서 적후공작에 잘 익숙되고 훈련된 사람들은 수시로 남쪽에 나가서 종심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다"고 하였다.

증언 13: 그 공화국영웅은 제대하기 전까지 남조선에 세 번씩이나 침투해서 작전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 중 략 >

북한으로부터 새로운 지시가 떨어지면서 특수작전요원들은 시민들 속에 위장 침투하여 본격적인 살인 파괴활동을 조작하면서 광주시민들을 자극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광주인민봉기에서 죽은 사람들 중에 실제로 진압군에 맞아 죽은 사람은 얼마되지 않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북한에서 파견된 특수부대요원들에 의해서 무참하게 죽었다고 하였다. 또한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눈치를 채거나 이상한 기미를 보이기만 하면 그들은 두말없이 즉석에서 시체가 되어 처리되었다고 하였다.

<<시신 처리>>

공화국영웅의 말에 의하면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시체로 돌아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대부분 전투현장에서 죽은 즉시로 남조선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처리되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3. 해상-육상 루트

증언 5: 한편, 또 다른 지휘관은 개성에서 잠수함으로 서해안(인천?)까지 와서 서울의 삼각산까지 도보로 6시간 20분 만에 침투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광주사건에 참가하였던 '534와 신천복수여단' 등 부대들은 그때 당시에 북한군 특수부대들 중에서 가장 악명이 높았고 능력이 신비할 정도로 인정받는 최정예 게릴라 부대이기도 하였다고 밝혔다.

증언 10: 당원사단 출신 창고장 일행12명은 잠수함으로 서해안까지 와서 서울시내로 침투했다고 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퇴로에 한 명이 총상을 입어 그의 목에다 동료들의 수류탄을 걸어 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자폭시켰다는 것이다. 나머지 11명은 생환했다" 한다.

4. 땅굴 루트

증언 11: 이 사례는 좀 특이한 사례이다. 5.18광주작전에 투입될 소요인원은 사전에 이미 다 들어가 있었고, 김형철 일행 23명은 5.18발생 초에 강원도 철원에서 땅굴로 충북/충남(?) 어딘가 한적한 곳으로 나왔는데, 노부부가 그들을 맞아주었다고 하였다. 그들은 여러 조로 나누어 밤새 산을 타고 전라북도 접경을 넘었는데, 광주상황이 여의치 않아 갑자기 복귀명령이 내려와 돌아갔다고 한다.

5. 재일교포로 위장침투
증언 8: 북한에서는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남조선의 '김대중 선생'이라고 하면 통일을 위해서 적후에서 용맹하게 싸우는 투사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이다.

5.18사건은 북한이 남조선 사회를 혼라시키고 내부반란을 통한 국가전복을 획책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계획한 도발이다.

<<5.18의 목적>>

북한은 해방 이후부터 언제나 대남작전에 사용해 왔듯이 치밀하게 계산된 군사적 목적을 바탕으로 조작과 파괴 ,군중혼란과 혼선을 통한 이간질을 교묘하게 적용하여 세상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공산주의에 대한 방어장치가 없는 젊은 대학생들과 청년들을 돌격대로 내세워서 반정부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무장폭동의 방법으로 남한사회의 민주국가를 전복시키며 김대중을 위수로 하는 친북정권을 만드는데그 목적이 있다.

나의 외숙모는 15살에 당 기관에서 나온 두 명의 낯선 사람에게 훈련소로 끌려가 일본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전문적으로 일본말과 그들의 생활습성에 대해서만 교육받으면서 전문적인 일본담당 첩보원으로 길들여졌다. 훈련소에서 여성간첩 한 명을 키워내는 품은 남성 10명을 키워내는 것과 맞먹는 비용이 들어갈 정도로 그만큼 댓가가 크다고 하였다.

"오늘 아침에 발생한 사건에 대하여 사죄드립니다. --생략--
며느리가 될 마화숙 동무(간첩 또는 광수?)는 우리 조국이 가장 사랑하는 전사이며 어버이 수령님의 충직한 딸입니다."

외숙모는 결혼하고 한 달만에 평양으로 올라가 1978년에 대성무역상사 일본지사에 편입되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녀는 1981년 일본에서 귀국할 때까지 남조선에 일본인 신분으로 세 번 정도를 직접 다녀왔으며 조총련과 연계하여 남조선의 지하조직들에 일본으로부터 자금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증언 14: 5.18광주사태 당시에는 북한군 전 부대가 전쟁상태에 돌입해 있었고 우리부대도 진지에 나가서 전투식량으로 끼니를 떼우면서 신발도 못 벗고 대기상태에 있었다.

<<신천박물관>>

북한에는 광주사태에 참가했다가 돌아가서 공화국영웅칭호를 받은 사람들이 많이 생존해 있고, 제가 살던 곳에는 광주에서 죽고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영웅묘지가 있다. 현재 함경북도 청진시 천마산 마루에는 대남작전에 참가하였다가 사망한 전투영웅들의 묘지가 있다. 묘지 비문에는 '여기에 누워 있는 동지들은 1980년 5월, 남조선에 파견되어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해서 영웅적으로 싸우다가 산화하였다'는 식으로 내용이 적혀 있다.

노동지도원의 동생은 일본에서 제일교포 신분으로 남조선의 남쪽에 있는 지방대학에 유학생으로 위장침투해서 공부를 하면서 북한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이상 다섯 가지 사례에서 살펴 보았듯이 저들은 해상,육상, 땅굴 및 제3국 등 다양한 루트로 북한특수군 600명과 제3그룹 200여명을 분산 침투시켰다.

아래에 북한특수군 600명의 각 단위별,각 조별 가상침투 시나리오를 필자가 예상해 보았다.(제3그룹 200여명은 제외)

1. 10명 단위 14개 조 140명(증언 1, 9,10)

2. 20명 단위 7개 조 140명(증언 11)

3. 30명 단위 5개 조 150명(북한군 특수부대인61,62저격여단 병력/증언 5)

4. 40명 단위 3개 조 120명(정찰국71, 72, 73대대 병력/영등포구 이 모씨의 첫번째 증언)

5. 50명 단위 1개 조 50명(김명국의 증언/문제심 일행 50명)

필자의 견해로는 북한특수군 중에서도 산악 및 별도의 특수훈련을 받은자들만이 해상과 육상 및 땅굴로 침투하고, 그 외의 나머지와 제3그룹 200여명은 안전한 루트인 해안으로 선박과 잠수함을 타고 왔을 것으로 사료된다. 몇 달 동안 수백명이 육상과 땅굴, 해안으로 침투하였지만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정부 당국자들은 각성하여야 하며, '여적죄'에 대해선 공소시효가 없으므로 이제라도 당시에 국방과 해안선을 담당하던 자들을 철저히 추적하여 출국금지시키고 응분의 문책을 가해야 할 것이다.

2015. 11. 9
2015-11-09 13: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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